단편소설집
나는 광장에 앉아 있다. 초여름 날씨치고는 햇볕이 너무 뜨거웠다. 노래패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모이게 하려고, 더위에 지친 이탈자를 막아보려고 10여 분전부터 운동가요를 이어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성능이 나쁜 앰프 탓에 그들의 노래는 갈가리 찢겨 흩어져 나왔고 짜증만 부채질할 뿐이다. 우리들 -광장에 모여 있는 나를 포함한 백여 명의 학생들은 급속도로 기다림에 지쳐가고 있다. 이것은 목마름의 감정일까? 아직도 나는 단언할 수 없고, 표현할 길도 막막하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학생들이 불꽃잎이 되어 떨어지는 상황, 그 소리 없는 열병이 우리들의 의식에 서서히 삼투되고 있다. 어떤 명분으로도, 어떤 이데올로기로도 제 몸을 사르고 추락하는 젊음을 설명할 수 없고 제재할 수 없으며 정당화하기 힘들다. 그것은 마치 진화하기에 너무 늦어버린 산불처럼 나름대로의 논리와 질서, 힘을 갖추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 그 친구는 사회과학관 위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남긴 서류봉투를 소지하고 있다. 봉투 속에는 그의 머리칼, 손톱과 발톱의 일부, 그리고 부모와 학과 동기생들에게 남기는 유서, 정치군인들을 고발하는 장문의 고발장들이 들어 있다. 어째서 그가 나를 택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말없이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고갯짓을 천천히 한 뒤 돌아섰었다. 안개가 자욱했던 그날 아침이었다. 나는 그가 남긴 신체의 일부, 유서 따위가 든 서류봉투를 품은 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차츰 혐오스러워짐을 느낀다. 그리고 뜨거운 아스팔트 광장 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착각에 숨쉬기가 버거워진다.
꼭 이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고 나는 그에게 한 마디쯤은 물었어야 했다. 제재의 몸짓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말은, 몸짓은 보였어야 했다.
집회가 시작된다. 이제 광장에는 2백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오른팔을 절도 있게 쳐올리며 구호들이 삼창되고 사회과학관 건물에 나붙은 대형 걸개그림이 더운 바람에 퍽퍽 소리를 내며 꿈틀댄다. 교문 쪽에는 벌써 전경 몇 개 중대가 쑥색의 장벽을 두텁게 쌓고 있다. 리플릿이 낭독되고 구호가 삼창되었으며 몇몇이 마이크를 들고 격앙된 어조로 정권타도의 정당성을 부르짖는다. 나는 내내 호흡곤란을 겪는다.
집회가 끝나간다. 장엄한 음악이 앰프를 타고 흘러나온다. 계단 위에 도열하고 서 있던 집행부들이 양편으로 갈라서면서 공간이 마련된다. 사회과학관 옥상 위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강렬한 태양 광선 때문에 그 모습은 검은 실루엣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싸늘한 공포가 가슴 저 밑바닥에서 밀려온다. 그는 전혀 지체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불꽃이 살아 오른다. 불꽃에 휩싸인 그는 거의 움직임을 멈추고 있다. 비명과 공포의 신음이 극에 달했고, 불꽃에 휩싸인 채 움직임을 멈추고 있던 그가 휘우뚱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추락한다. 시너의 냄새가 코를 찔렀고 눈을 시리게 한다. 탕-, 하는 충격음이 고막을 때린다.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을까. 광장의 어디선가 여학생의 날카로운 비명이 비수처럼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