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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Aug 10. 2021

아내의 실종

양치기 소년

새벽 한 시가 넘을 무렵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사실 바닷가를 관할하는 그 경찰서에는 그런 신고가 잦은 편이었다. 하지만 대개 실종은 일방적인 집착이거나 납치는 지나친 연정일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그런 신고는 실제 실종이나 납치로 밝혀지는 경우보단 그 경찰서가 누구나 동경하는 수려한 경관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이 변해 제 발로 여행을 떠난 연인을 실종 또는 납치라는 스토리텔링으로 되찾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그날 경찰이 도착했을 때 바닷가 펜션 촌 소나무 숲에 서 있던 남자는 경찰이 도착한 걸 미처 보지 못하고 대답 없는 아내의 전화에 음성메시지를 남기고 있었는데 거의 눈물에 가까운 호소로 돌아올 것을 간청하고 있었다. 모든 건 자기 잘못임을 고백하며 그 어떤 잘못이나 허물도 다 관용할 듯한 태도였다. 그런 남자가 경찰을 마주하자 태도가 돌변했다. 아내의 실종보단 신고 후 10분이 다 돼서야 현장에 도착한 경찰공무원의 불성실한 태도를 문제 삼는 게 더 급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대한민국 경찰이 원래 이런 건가요? 지금 신고한 지가 언젠데 이제야 오는 겁니까?”

“오늘 주말이라 신고도 많고…. 이곳이 관할이 좀 넓어서 그렇습니다.”

“당신들 이 문제에 대해 나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     

 공무원을 많이 상대해 봤다고 주장하는 30대 중반의 남자는 아내와 둘이 여행을 왔다고 했다.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잔을 했고 별일 아닌 문제로 아내와 다퉜다고 했다. 그 별일에 대해선 밝히기를 거부했는데 갑자기 아내가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아내를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투로 봐선 그건 부탁이나 구조 요청이 아니라 명령이나 지시에 가까웠다. 경찰은 아내의 인상착의를 묻고 전에도 그곳에 와본 적이 있는지를 물으며 말끝에 혹시 아내가 싸우고 잠깐 피해 있으려고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닌지 슬쩍 물었다. 

“당신 우리 마누라 오늘 밤에 잘못되면 책임질 거야?”

“아! 예~ 알겠습니다.”

 남자의 고성에 경찰은 더 말을 섞어봤자 득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경찰은 출동 전 남편의 최근 112신고 이력을 이미 확인했는데 오늘 말고도 비슷한 신고 이력이 여러 번 있었다. 아무튼 그곳 지리도 모르는 아내가 울면서 갑자기 사라졌는데 낯선 곳을 헤매다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남자의 논리였다. 문제는 그 논리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는데 아내를 걱정하는 남편으로서의 입장이 아닌 민원인으로서의 입장으로 이미 자신의 논리와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아내가 실종되기까지 원인과 배경 설명 없이 자신이 실종이라고 주장하면 경찰은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이 아내를 찾아 자신 앞에 데려다주게 돼 있다는 신념을 가진 것 같았는데 더 큰 문제는 경찰도 그 남편의 신념을 달리 반박하기가 애매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의 실종이라는 중차대한 사태를 눈앞에 두고도 출동 시간이 늦은 것에 대한 핀잔을 충분히 주고받았고 남편은 그 과정에서 손상된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 같았다. 처음 경찰이 온 것을 모르고 보였던 비굴하기까지 했던 보이지 않는 아내에 대한 태도와는 사뭇 달라져 매우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당당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실종됐다던 아내는 경찰의 전화를 곧바로 받았고 실종이란 말에 코웃음을 치며 남편과 관계 개선을 해보려고 여행을 왔지만,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 자기가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며 “그 인간 전화는 일부러 받지 않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눈앞에서 경찰이 자기 아내와 통화하는 걸 대충 목격한 남자는 다시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런 남자에게 경찰은 한마디 남기고 돌아섰다.

“부인은 잘 있다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 거랍니다”

 "야! 너네들! 우리 마누라 오늘 밤 잘못되면 너네들이 책임질 거야?

 돌아서는 경찰을 향해 남자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경찰은 남자를 향해 한번 뒤돌아보더니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혀를 차고는 한마디 던졌다.

“마누라한테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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