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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Aug 06. 2021

무더위 또는 피서

반려견

1. 짐승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허연 털북숭이가 갑자기 달려들어 깜짝 놀랐다. 곱게 빗질된 녀석의 털로 보아 꽤 사랑받으며 크는, 아니 함께 사는 골든 레트리버 견종 같았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던 아내는 그 고급스러워 보이는 짐승 앞에서 반사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외마디 비명처럼 말했다.

“줄을 짧게 잡아주세요”

 예상치 않은 커다란 짐승을 마주친 아내는 단지 놀라는 것 이상의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젊은 견주는 여전히 느슨하게 목줄을 붙잡은 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짧게 잡은 거예요”

 아내만큼 개에 공포가 없는 나로서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견주가 저만치 멀어지면서 내뱉은 한마디로 인해 나는 곧 전투 모드로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견주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 출입문을 나서면서 자기 가족에게 마치 그런 말을 했던 우리를 조롱하듯 ‘웃기네’라고 말했다. 그 짧은 순간 저들을 불러 세워 싸움을 걸을 것인지 조용히 넘어갈 것인지 수만 번 마음의 진자가 요동쳤다. 내 나이와 이웃 사람들에게 비칠 내 모습과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나에 대한 평판과 그 외에도 수많은 이유로 그만두긴 했지만 노여움은 엘리베이터를 내리고 집에 들어올 때까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그냥 넘어가진 않겠다고 말이다.     


2. 반려견

바닷가에 놀러 가려고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다. 지하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반려견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과 배려도 없는 그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골든 레트리버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서 견주에게 충성과 최선을 다하는 견종으로 유명하다. 더욱이 평소 미용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나의 자식과 같은 반려견은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품위가 있어 보인다. 물론 견종에 따라 사나워 외출 시 목줄뿐만 아니라 반드시 입마개도 해야 하는 종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나의 반려견에게 그런 맹견과 같은 시각들 던질 때마다 나는 사회에서 나의 자식이 억울한 오해를 받는 것 같아 진심으로 속이 상한다. 오늘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리려는 순간 만난 여자는 자기 혼자 지레 겁을 먹고 나의 반려견에게 적대감을 표시했다. 모르는 사람도 보기만 하면 친근감을 표시하려고 꼬리를 흔드는 나의 반려견의 순수함을 그렇게 짓밟다니 마치 어린 동심을 파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말이다. 개는 유일하게 인간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는 개체다. 유전적 추적으로도 개가 다른 포유류와 분화된 것은 최소 3만 년 전이고 적어도 문명이 출범한 이후 인간은 줄곧 개와 함께 해왔다. 우리 사회도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식용으로 개를 취급하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세계적으로 망신을 살 일이 아닐 수 없다.      


3. 사건

개 목줄 때문에 다툼이 있다는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꽤 커 보이는 골든 레트리버 견주와 아파트 주민이 다투고 있었다. 주민은 지하 1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그 개 때문에 깜짝 놀랐다며 견주에게 목줄을 짧게 잡으라고 한마디 했는데 견주는 목줄을 안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며 서로 다투고 있었다. 주민은 자신이 목줄을 짧게 잡아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웃긴다는 식으로 조롱한 견주를 상대로 이웃에 대한 예의가 없다며 비난하고 있고 견주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유명한 자기 반려견이 그렇게 위험한 짐승 취급을 당한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도 경찰이 개입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길든 짧든 목줄을 했고 그런 목줄을 한 개가 잡종 개 취급을 받든 아니면 인간에게 유익한 도움을 주는 우수한 종자 취급을 받던 어쨌든 경찰이 개입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 건 이웃 간 배려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건전한 성인이라면 갖추어야 할 매너이거나 동물, 특히 반려견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 정도는 갖고 인간이 그 반려견으로부터 얻는 효용을 이해할 줄 아는 융통성이기 때문에 출동한 경찰이 그곳에서 그걸 그 사람들에게 도덕 선생처럼 가르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양측은 서로 잘했다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언쟁을 계속했다. 이런 상황에선 어느 정도 지켜보다가 양측 다 계속 고집 피우시면 둘 다 경범 스티커를 발부하겠다고 별 효과도 없는 협박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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