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장맛비가 갠 날, 골목길에서 접촉사고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지구대 큰 거울 앞에서 선크림을 바르며 간만의 태양 빛에 대비하던 A는 현장으로 출동했다. 주택가 골목 교차로에서 승용차 두 대가 충돌했다. 운전자 남녀가 각각 서 있다. 여자의 차는 벌써 길옆으로 이동시켰지만, 남자의 경차는 그대로다. 현장을 보존하고 확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행히 여자는 자신이 과속했음을 인정한다.
“제가 주문이 밀렸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가다가 그만...”
근처에서 장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자는 주문 전화가 밀려 과속을 했다며 실수를 인정한다. 다행히 여자의 차에 블랙박스가 있어 보험회사에 넘기도록 권유하고 **화재 출동 요원을 기다린다. 그런데 여자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먼저 도착한다.
“어쩌다 그런 거야? 조심했어야지”
여자의 남편은 화를 내는 건 아니지만 아쉬움이 석인 목소리로 부서진 범퍼를 살펴보며 말한다. 잠시 후 출동한 보험회사 출동 요원이 현장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은 뒤 자신의 고객인 여자의 자동차 열쇠를 찾는다. 여자는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땅바닥만 바라보며 그 말을 듣지 못한다. 그러자 여자의 남편이 여자에게 재촉하듯 묻는다.
“자기야! 열쇠 어딨어?”
“.....”
웬일인지 여자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자기야! 차 키 찾으시잖아”
다시 재촉하는 남편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렇다고 화가 난 것은 아니다.
“차 안에 있다니까”
뒤늦게 대답한 여자의 낮은 목소리는 처음 A가 도착했을 때와 많이 달랐다.
여자는 자신의 실수로 사고가 나고 경찰까지 출동한 것에 대해 아주 미안해할 만큼 예의가 있는 사람이었다. 상대 운전자에게도 최대한 미안한 표정과 행동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자기 남편에게 보이는 표정과 말투는 싸늘하게 식어 있다.
뭔가 변했다.
A는 뜨거운 여름날 접촉사고가 짜증스럽긴 해도 여자의 태도가 변한 게 더운 날씨 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순찰차 안에서 A는 옆자리 후배에게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정답을 맞히지 못했어... 남편이”
“예?”
뭔 소리인지 몰라 후배가 되물었다.
“마누라가 괜찮은지부터 먼저 물어봤어야지. 마누라 얼굴은 안 보고 차부터 살펴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