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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Jul 23. 2021

온유와 평안

 6월의 마지막 날, 이른 더위가 강변의 둔치 위로 제법 강렬하게 내리고 있을 때 준현은 순찰차를 타고 가다가 그 남매를 얼핏 보았다. 경찰 생활 20년 차인 준현은 그곳 근무가 두 번째이기 때문에 대충 외모만 봐도 외지인인지를 감으로 구분할 정도였다. 더욱이 그들이 걷고 있는 도로는 외지에서 동네로 들어서는 초입이었다. 그들이 준현의 눈에 띈 것은 더위에도 긴팔 옷을 입고 있는 것, 전형적인 노숙 풍이라 할 수 있는 이런저런 보따리를 들거나 끌고 있던 것, 그리고 얼굴빛이 검게 그을려 보였던 것을 달리는 순찰차에서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다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차를 세울 수 없었기도 했지만, 특별히 문제가 없는 이상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평소 근무 수칙 때문에 그냥 스치듯 지나가며 그들을 본 것이지만 노숙자가 없는 작은 시골 동네에 그들의 출현이 작은 파문처럼 밀려오는 걸 준현은 마음 한구석에 느낄 수 있었다. 

 달이 바뀌고 7월 첫 근무는 야간이었다. 인구 3만에 불과한 작은 동네에 그야말로 ‘작은영화관’이 개관하고 그 옆에 목재 데크를 설치한 작은 공원도 생겼는데, 그곳에 노숙자로 보이는 남녀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모두 각자의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그곳, 공사를 이제 막 끝내 마치 새집 냄새라도 날 것 같은 그곳, 하지만 ‘비가림’ 천정만 있을 뿐 사방은 바람이 다 통하는 데크 위에 남녀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골판지 상자 안에 무언가를 만지고 있었고 남자는 조금 떨어져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어떤 집 거실의 저녁 모습을 그대로 떼어내 그곳으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였다. 마치 연극의 무대처럼 말이다.

 “이곳 분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준현은 자연스럽게 말을 걸려 했다.

 “......”

 여자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준현을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여기는 아주 좁은 시골 동네라서요. 낯선 분들이 계신다고 해서 확인 좀 하러 왔습니다”

 아무리 자연스럽게 말을 걸려 해도 준현은 자신이 입은 제복 때문에 그 자연스러운 대화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을 금방 깨닫고 순순히 그곳에 온 목적을 여자에게 털어놓았다.

 “아...제가 여기서 감자를 삶았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보다. 이제 그러지 않을게요.”

여자는 금지된 행동을 하다 발각된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감자를 삶았다고 해서 온 게 아니라 두 분 신원만 확인하면 괜찮습니다.”

 골판지 상자 안에 작은 버너와 냄비를 넣고 바람을 피하며 감자를 삶던 여자는 황급히 냄비를 꺼내려했지만, 준현은 그 문제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주민등록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산나물 축제장에서 전부 잃어버렸어요.”

 “아! 신분증을 잃어버리셨다고요?”

 “예, 여기 오기 전에 산나물 축제장에 있었는데 깡패들이 저희 짐을 다 가져가 버렸어요.”

 “그럼 주민등록번호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

 “괜찮습니다. 신원확인만 되면 그냥 갈게요. 말씀해 주세요.”

 “박...온유에요”

 “주민등록번호도 말씀해 주세요.”

 “65--------”

 약간의 경계가 있었지만 이를 풀어 보려는 준현의 애씀을 여자가 인정했는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겨우 말해주었다. 준현은 여자의 이름이 약간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옆에 남자분도 말씀해 주세요”

 “우리 동생은 잘 몰라요.”

 “아~ 친동생이신가요?”

 “예, 제 친동생이에요. 저희는 우리밖에 없어요.”

 준현은 노숙자 커플일 거라 예상했지만 그들은 의외로 남매라고 했다. 그냥 남매라고만 해도 될 텐데 굳이 하늘 아래 둘밖에 없다는 취지로 말하는 여자의 말투가 인상 깊었다. 

 “박...평안”

 자기 이름을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하지만 눈을 맞추지 못하고 준현과 자기 누나인 여자와의 대화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이상했다. 

 “주민등록번호도 말씀해 주시겠어요?”

 “69년 *월 **일.....”

 “우리 동생은 잘 몰라요”

 남자는 겨우 생년월일만 말했다. 어쩐지 말투가 어눌하다고 생각했는데 얼른 여자가 끼어들었다. 남자는 몸집이 커 보이고 머리가 여자보다 두 배는 커 보였지만 여자가 말할 때 잠자코 듣기만 할 뿐 순한 어린아이 같았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여기에 어떻게 오시게 된 건가요?”

 준현은 동료에게 두 사람의 인적 사항을 건네며 눈짓으로 조회를 해보라고 시늉하고 다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두 사람은 인근 시군의 산나물 축제 행사장에서 지내다가 이리로 왔다고 했다. 날씨가 덥기는 했지만 그들의 몰골과 단출하나마 여행 보따리는 그들이 내내 노숙을 해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의 주민등록번호 뒷번호를 모르기 때문에 조회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터였다. 준현은 대화가 끊어지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계속 질문을 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 건가요?”

 “감자만 먹어요. 저흰 계속 감자만 먹었어요.”

 여자는 골판지 상자에서 작은 휴대용 가스버너와 그 위에서 지금까지 끓여왔던 것으로 보이는 냄비를 보여주었다. 냄비 뚜껑을 열자 커다란 감자 두 알이 삶아져 있었다. 

 “아니 계속 감자만으로 식사를 해결하셨단 말인가요?”

 “.....예”

 여자는 좀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준현은 그 소리를 듣자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자와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주변에 민폐를 끼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의 꾀죄죄한 행색만큼 궁색한 냄비에 삶은 감자만 먹고 산다는 말에 동정심을 느꼈다.

 “고향은 어딘가요?”

 “전북 **이요.”

 “그곳에 가족들은 없나요?”

 “엄마 아빠는 돌아가셨어요. 하늘 아래 저희 둘밖에 없어요.”

 여자는 다시 세상에 자신과 동생만 남았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밝았다. 여자도 어느새 경찰관인 준현에게 경계심을 푼 것 같았다. 그때쯤 동료는 준현에게 주민등록상 신원이 확인됐음을 말해주었다. 남자는 지적장애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여자는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한눈에 봐도 노숙자로 보이는 외모를 빼고는 말이다.

 “여기서 계속 주무실 건가요?”

 “예, 그럴게요”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여자분인데 이렇게 한뎃잠을 주무신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 하는 말인데요.”

 준현은 여자에게 노숙을 피할 방법을 주선해 주겠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여자는 한사코 괜찮다며 가능하면 그곳에서 그렇게 얼마간만이라도 지내겠다고 했다. 그곳 동네가 그 무렵 ‘인구늘리기’에 굉장히 민감해 있으므로 그 ‘늘리기’에 협조를 해주고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만 하면 한 사람당 월 60만 원씩 120만 원이 나올 것이고 그렇다면 월세 20만 원짜리 방을 하나 얻어도 감자보다 더 나은 것을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준현의 제의에도 여자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아요.”

 여자는 완고하게 거절을 표시했다. 준현은 그들이 위험하거나 주변에 민폐를 끼칠 사람이 전혀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날씨마저 본격적인 더위를 앞두고 있어서 그들의 한뎃잠은 호조건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준현이 멀찌감치 떨어져 기다리는 동료를 두고도 금방 돌아가지 않고 계속 여자와 대화를 이어가려 했던 것은 왠지 그들의 노숙 여행에 어떤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교회 같은 곳에 가면 괜찮지 않을까요?”

 준현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봤다.

 “아~~ 아니에요. 교회에는 가고 싶지 않아요.”

 여자는 나중에 생각해 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호하게 가고 싶지 않다고 표현했다. 그때까지 대답했던 것 중 가장 큰 목소리였다. 그때 준현은 그들의 이름이‘온유와 평안’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혹시 두 분 이름이 교회에서 지은 것 같은데 맞나요?”

 “예, 맞아요. 목사님이 지어주신 것이에요.”

 그때 준현은 확실히 깨달았다.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제의는 물론 종교단체 같은 곳의 도움조차 그들이 거절한 데는 분명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준현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여자에게 건넸다. 그리고 감자만 먹고 지냈다는 여자가 우유라도 한번 사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지구대로 돌아왔다.

 그 뒤로도 그들의 노숙은 계속됐다. 하지만 5일에 한 번 열리는 장터 상인들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들과 관련된 신고는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장터 대장간 아저씨는 불쌍하다며 2만 원을 건네기도 했고 어떤 할머니는 손수 밥을 지어 갖다 주기도 했다고 대장간 아저씨는 말했다. 그렇게 그들의 노숙은 있는 듯 없는 듯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무렵 스멀스멀 기미를 보이던 장마였다. 처음에 그들이 비가림 천정이 있던 ‘작은영화관’ 공원 데크에서 신고가 있었다는 말을 들어선 지, 하천 둔치로 거처를 옮기기까지 했던 터였다. 다행인 것은 오일장 할머니들과 얼굴을 익혔는지, 어떤 날은 날이 굳을 것 같으니까 초저녁부터 할머니들이 내어준 몽골 텐트 아래에 목제 팔레트를 두고 그 위에 골판지를 깔고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순찰차를 타고 가다 멈춰 서 준현이 물었을 때 장터 할머니들이 그곳에서 자라고 허락해 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비만 피한다고 해서 한여름 장맛비 속에 한뎃잠이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밤새 모기와 싸워야 하고 바닷가 이상기후로 밤새 기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준현과 후배는 몇 동 없는 아파트 단지의 재활용 쓰레기 집하장을 돌며 헌 이불이 있는지 뒤지고 다녔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준현과 후배는 얼마 전 후배가 일본 자전거 여행을 가면서 구매했던 작은 텐트를 남매에게 가져다주기로 했다. 조잡하기 그지없는 싸구려 중국산이었지만 가볍고 펼치고 접는 것이 간편해 길 위의 노마드 삶에는 딱 이었다. 다행히 여자도 흰 이를 드러내며 좋아했다. 노숙 생활을 하면서도 공중화장실에서 자주 이를 닦던 여자의 모습이 그때 떠올랐다. 

 그렇게 한 달쯤 남매의 노숙 생활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다만 한여름 본격적인 무더위를 앞두고 한낮의 땡볕과 어둡고 두꺼워 보이는 남매의 겉옷이 문제일 것 같았다. 하천 둔치나 장터를 지날 때면 그 남매가 생각나 준현은 한 번씩 둘러보곤 했다. 멀리서 꼼지락대는 모습만 봐도 조용히 잘 지내는 것 같았지만 은근히 마음이 쓰였다. 그러던 중 이틀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젠 궁금하기에 이르렀다. 제일 빠른 소식통이 장터 대장간 아저씨였다. 

“군청 공무원이 5만 원인가 쥐여주고 보냈어”

한 이틀만 있어 보면 오고 가는 사람이 뻔한 작은 동네였다. 남매의 노숙 생활은 금방 소문이 났고 군청 복지과 공무원까지 나왔던 모양이었다. 공무원 역시 준현이 처음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제안을 했었을 것이다. 아마 복지시설 입소 제안이었을 것이다. 역시 남매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고 한다. 공무원의 반복되는 제안에 결국 여자는 다른 동네로 갈 것이라며 최종 선언을 했고 내심 반가웠던 공무원은 얼른 차비까지 챙겨 줬다고 했다. 몸만 컸지, 어린애와 다름없는 모자란 동생을 데리고 누나가 세상을 살아가기엔 노숙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준현은 그때 생각했다. ‘인구늘리기’에 관심 많은 관청에 적당히 협조하고 수급자 수당을 받아 월세방을 얻어 사는 것도, 복지 담당 공무원이 제안하는 복지시설에 입소하는 것도, 자신들의 이름을 지어 준 교회에서 보살핌을 받는 것도 어쩌면 지능이 모자란 커다란 남동생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몸집 작은 누나에게는 노숙만도 못한 것일지 모를 일이었다. 준현은 덩치가 커다란 남자의 모습과 그 커다란 덩치가 힘겨워 보이던 조그만 여자의 모습이 계속 눈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이 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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