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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Jul 20. 2021

이상한 이웃

강박

 아무래도 지구대에 다시 가봐야겠어. 이래는 더 몬 산다. 이래 살다 가는 내가 병들어 죽을지 모른다. 위층 애들 뛰는 것도 내사 이해하려 했었는데 그것들 내한테 하는 거 봐선 더 봐줄 것도 없다. 한번은 요 며칠 전에 문 열고 나가니까 그 집 남자가 2층에 서 있는 거야. 아무리 내가 저들한테 뭐라 캤다 해도 사람을 봤으면 인사를 할 줄 알아야지. 쌩하니 고개를 돌리더라고. 그러니 애들을 제대로 가르치겠나. 애새끼들은 지 멋대로 뛰고 애미애비는 아무 소리도 안 하니까 집구석 꼬라지가 제대로 돌아가겠나. 참 한심스럽다. 밑에 층에 사는 할머니가 잔소리 좀 했다고 저래 쳐다도 안 보고 사니 참 인간들 몬된 것들이다. 

 근데 이상한 건 말이다. 저것들이 어떻게 우리 집에 몰래 들어와서 가스렌지 뒤에 그 끈적끈적한 것들을 발라놓고 갔는지 모르겠단 말이다. 내가 분명히 열쇠를 위아래로 잠가 놓았는데 저것들이 무슨 수작을 부려서 왔다 간 게 틀림없다. 이걸 분명히 순경들한테 말을 해야겠다 말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왔다 간 순경들은 내한테 무슨 망상증이 있다고 자꾸 카는데 내가 무슨 그런 게 있겠냐 말이냔 말이다. 내가 박복해서 IMF 때 이혼하고 애들 델꾸 산다고 고생하고 살긴 했어도 이때까지 남한테 해코지 한번 하지 않고 살았는데 왜 내한테 그런 게 있겠냐 말이다. 여기 이사 온 것도 딸애가 저 가까운데 살면 좀 낳지 않겠냐 해서 온 건데, 막상 와보니 딸년도 저 살기 바빠서 이제 내 얘긴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 나이에 내가 자식들한테 짐 되지 않으려고 그냥 살긴 한다마는 내사 서운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내 할 말은 해야겠다. 엄마가 이 나이에 이래 혼자 사는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으냐 말이다. 엄마가 말을 하면 그래도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위층 저것들이 창문으로 무슨 약을 뿌리는 게 분명하다. 지난번 베란다에 내놓은 꽃들이 한 번에 다 말라 죽었잖아. 걔들이 그렇게 한 번에 죽을 리 절대 없다. 분명히 저것들이 무슨 약을 뿌린 거다. 내 참다 참다 더는 못 참을 거 같아 오늘 낮에 지구대 갔었잖아. 근데 그 순경 하나는 내한테 반말을 해가면서 자꾸 가라고 그러잖아. 내가 그렇게 차근차근 얘기를 다 해줬는데 그 무슨 뭐라카드라? “의심만 갖고 수사를 할 수 없다”라고 그러면서 나를 내쫓았잖아. 서럽다. 참 서럽다. 내 나이 먹고 혼자 사니까 이런 수모를 당한다. 지들이 하는 일이 원래 그런 건데 내 나이 먹고 혼자 사는 늙은이라고 이래 무시하고 내 말을 듣지도 않으려 한다. 어쩌면 위층 사는 것들이 지구대에 먼저 다녀갔는지도 모를 일이야. 지난번에 내가 전화해서 순경들이 왔다 간 걸 위층에서도 분명히 봤을 거란 말이야. 저것들이 내가 눈치채고 순경들을 부르니까 그새 손을 썼을지도 몰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들이지. 저것들이. 맞아. 오늘 낮에 지구대에 갔을 때 그 순경이 나를 그래 무시한 걸 보면 분명히 맞다. 그렇지 않고선 그놈들이 그렇게 나를 박대할 순 없다. 그래…. 어쩐지 그 순경이 내한테 막을 화를 내면서 함부로 의심하면 죄짓는 거라 그랬잖아. 그놈이 분명 돈을 받았을 거야. 위층 놈들 참 영악하다. 영악해. 저것들 쿵쿵 소리 내는 것도 그냥 애들이 뛰는 게 아니다. 저건 분명 나를 못살게 하려고 뭔가를 갖다 놓고 소리를 내는 거다. 어쩌면 큰 망치를 갖다 놓고 바닥을 내려치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무슨 기계를 갖다 놓고 일부로 윙 소리를 내는 거다. 그렇지 않고선 어째 그런 소리가 그래 계속 날 수 있냔 말이다. 내 분명히 내일 다시 지구대에 가야겠다. 가서 그 젊은 순경 놈 혼을 내놔야겠다. 또 내한테 망상 어쩌고 하는 소릴 하기만 하면 내 절대 가만있지 않을 테다. 어데 젊은 놈이 어른한테 그런 소리를 해. 내일은 꼭 담판을 짓고 와야지. 이래는 절대 몬 산다. 위층 것들 니네들이 아무리 똑똑한 척 해봐라. 내도 절대 당하지만 않을 테다.      

“여보세요?”

“응 제부! 전화 잘 받았다. 내다. 처형이다. 내 오늘 경찰서에 좀 가야 하는데, 제부 나랑 같이 좀 다녀오자.”

“무슨 일입니까?”

“아니 어저께 우리 빌라에 사는 이웃집 남자가 나한테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하면서 막 화를 내고 인상을 쓰는 기다. 그래서 경찰이 왔었는데 내 혼자 산다고 얕잡아 보고 무시하더라. 그래서…. 오늘 다시 경찰서에 가려 하는데 제부 니가 좀 같이 가줘야겠다.”

“아이…. 참 처형도 이웃하고 조용히 잘 지내야지. 또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내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 우리 빌라 옆 공터 있잖아. 거기에 고양이들이 자주 오길래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 밥 준 그것밖에 없다. 근데 2층에 사는 남자 있잖나? 자치위원장이라고. 그놈이 내한테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막 화를 냈다 안카나. 내가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이제 겨우 60이나 된 놈이 그러면 안 되잖아…. 그래 경찰서 가려고”

“처형! 이따 제가 가긴 가겠지만 이젠 좀 조용히 삽시다. 왜 만날 이웃집과 자꾸 다툽니까?”

“쓸데없는 소리 마라! 어쨌든 오후에 좀 와라!”     

제부의 전화 통화 목소리가 이젠 날 귀찮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구대에서도 내가 혼자 사는 여자라고 얕잡아 보는 것 같으니 제부라도 데려가야겠다. 가서 확실히 말해야겠다. 제부랑 같이 가면 내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될 테니까 지난번처럼 무시하진 못할 거다. 내가 IMF 때 이혼하고 혼자 애들 키웠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내가 깨달았다. 여자가 혼자 살면 주변에서 무시하기 마련이더라. 그러니까 지구대 순경 놈들도 나를 무시하지. 내가 그렇게 무시 받을 사람이 아니란 걸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내가 지금 핫바지 같은 사람이라도 남편이 있었다면 우리 빌라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무시하진 않았을 끼다. 내 그동안 받은 설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아주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지난번에 내가 2층에서 너무 쿵쿵 뛴다고 얘기했을 때 2층 남자하고 여자가 했던 말을 보면 나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알 수 있다. 아니 노인이 시끄럽다고 말을 하면 젊은 연놈들이 “예, 조심하겠습니다.”라고 해야지, 싸가지없는 것들이 한다는 말이 뭐 낮에 집에 사람이 없었는데 무슨 소리가 났겠냐구? 아니 소리가 들리니까 내가 시끄럽다고 하지, 없는 소리를 내가 만들어 저들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그리고 사람이 없어도 윙하고 기계 돌리는 소리가 난다고 하니깐…. 저것들이 하는 말이 낮에 돌아가는 건 냉장고밖에 없는데, 그럼 냉장고도 꺼놓고 다니란 말이냐고? 저것들이 낮에 사람이 없다는 거 다 거짓말이다. 아니면 몰래 살금살금 기어들어 와 일부러 쿵쿵 소리 내는 게 분명하다. 아래층에 늙은 여자 혼자 사는 거 알고 무시하고 저러는 거다. 냉장고 소리도 일부러 크게 나게 만든 게 틀림없다. 그놈의 기계 소리 때문에 아주 내가 살 수가 없다. 아무도 없는 낮에는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분명히 나를 미치게 하려고 위층에서 내는 소리가 틀림없다. 



“말씀 좀 물으러 왔습니다.”

“예,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제부한테 대답하는 저놈 그때 나한테 반말하던 그 순경 놈이잖아. 너 이놈 오늘 한번 혼 나봐라. 내가 이렇게 떡하고 제부를 데리고 다시 나타날 걸 몰랐지? 우리 제부가 어제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니놈들이 나를 무시했던 거 모두 싹 따져 물을 테니까. 뭐 나한테 망상이 어쩌고저쩌고했던 놈들 한번 혼나봐라.      

“저희 처형이 요 아래 빌라에서 혼자 사시는데요. 어제 이웃 주민들하고 좀 싸웠던 모양이에요. 그것 때문에 저한테 억울하다며 확인 좀 해달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아~ 최금자 할머니 제부 되십니까?”

“예, 저는 저 너머 **리 살고요. 오늘 처형이 같이 좀 가 달라고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최금자 할머니가 요새 지구대에 좀 자주 오는 편이에요. 아무튼 어제는 집 앞 공터에서 길고양이들 밥 주는 문제로 이웃 주민들과 다툼이 좀 있었는데요. 주민들 입장에서는 사료도 아닌 생선 찌꺼기 같은 것을 밥으로 주니까 도둑고양이들이 자꾸 집 앞에 꼬이고 그러다 보니까 비위생적인 문제가 생기니까 할머니한테 고양이 밥을 주지 말 것을 요구하는데, 할머니께선 계속 고집을 꺾지 않으셔서 저희가 출동했었고요. 결론은 우리 경찰이 개입할 문제는 아니지만, 공동주택이니까 이웃 간에 불편한 일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희 처형이 혼자 오래 살다 보니까 신경이 좀 예민해져 있긴 한데 이웃 사람들도 그렇고 지구대에서도 자기를 무시한다고 저한테 같이 좀 가서 물어봐 달라고 해서 오늘 온 겁니다.”

“아이... 저희가 최금자 할머니를 무시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전혀 그런 일 없습니다. 다만 할머니는 계속 고양이 밥을 주시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는 상황에서 할머니께 그만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니까 서운해서 그러는 모양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저희 처형이 오래전부터 우울증이... 아니 아무튼 죄송합니다.”

“사실 최금자 할머니가 지구대 몇 번 찾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이상하긴 했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웃집 사람들이 자기 집을 드나들었다거나 위층에서 이상한 약을 뿌려서 화초들이 다 죽었다면서 이웃을 의심하시는데 그 정도 의심만 갖고 저희가 수사에 착수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번호키와 열쇠 잠금장치까지 이중으로 잠갔는데도 이웃이 몰래 들어왔다가 갔다는데 참... 말이 통하지 않더라고요.”

“예,.... 그렇긴 하죠. 이거 죄송합니다.”

“저희는 괜찮지만, 가족들이 할머니 모시고 정신보건센타라도 좀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쉿! 작게 말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처형이 그 말만 하면 펄쩍 뜁니다. 자기를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고.”

“더 방치하면 더 안 좋아지실 것 같은데…. 큰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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