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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Jul 17. 2021

우리 아이 좀 혼내주세요

 야간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여자와 초등학생이라기엔 작아 보이는 아이가 쑥스러운 듯 지구대를 찾았다. 모자지간인 두 사람은 뭔가 심각한 일이 있는 듯 얼굴이 어두워 보였는데 의외로 사정은 간단했다. 아이를 출입문 앞에 세워두고 혼자 들어와 조용히 말하는 여자는 아들이 도벽이 심해 찾아왔다는 것이다. 무인 아이스크림점에서 그냥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먹는 행동이 자꾸 반복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구대에 찾아와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에게 아이에게 겁을 좀 줘 달라는, 이를테면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는 지은 죄가 있기는 한지 출입문 앞에서 삐쭉거리며 이쪽 실내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태호였다.

 20여 년 전 내가 비교적 젊은 경찰관이었을 때 휴일 경찰서 현관에서 당직 근무를 서던 날이었다. 현관 앞 저만치 계단에서 어떤 젊은 엄마가 아들로 보이는 아이와 실랑이하는 것이 보였다. 아이 엄마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경찰서 건물로 오려고 하고 아이는 큰 소리로 울면서 가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는 것이었다. 아이가 워낙 큰 소리로 울었기 때문에, 또 누가 봐도 모자 관계로 보였으므로 나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가 여유가 있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었다. 

 “얘가 자구 도둑질을 하니까 유치장에 가둬 주세요”

 아이 엄마의 말치곤 과격했다. 그러니까 그때도 아이 엄마는 자기 아들이 도벽이 있다며 아이를 혼내주기 위해 경찰서의 권위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고등학생만 되면 아니 중학생만 돼도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을 그 허약한 권위를, 아직 순진해서 경찰관을 동경하면서도 지은 죄 없이도 덜컥 겁내는, 그 순진한 아이의 훈육에 아이 엄마는 그 권위를 얄팍하게 이용하려 했다. 당시 경력이 미천하던 젊은 나는 적당히 그 젊은 엄마의 무지한 훈육에 동조했었다. 아이에게 유치장으로 가자며 적당히 손을 잡아끌며 거의 자지러질 듯 우는 아이에게 꽤 강력한 충격요법을 시행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을 무렵, 동료로부터 자기 아들이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아들이 어릴 때 경찰서에 가자며 충격요법을 주었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형사팀에 근무했던 동료는 아들에게 도벽이 있다며 아빠가 근무하는 경찰서에 잡아간다며 수갑까지 써가며 겁을 주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학생이 돼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가 걱정돼 전문가로부터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그때의 트라우마가 아이에게 남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

 “태호 엄마! 아이가 그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거기엔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엄마는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해도 아이의 편이 돼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태호 엄마보다 훨씬 나이를 먹어버린 나는 태호 엄마에게 지금 하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하고 근거 없는 것인지에 대해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오늘 일이 어쩌면 아이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성장 과정 내내 아이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아이의 편이란 믿음을 깨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덧붙였다.

 무엇이든 권위란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것인가 생각해 본다. 어쩌면 모든 권위는 아무런 근거가 없을지 모른다. 그 권위를 가진 주체는 그럴 만한 자격이 없을뿐더러 그럴 의도도 전혀 없는데 우리의 필요 때문에 우리 스스로 그것을 부여하고 그걸 종교처럼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가진 해악에 대해 사려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고 말이다. 인공지능이 인간 바둑의 대가를 이기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때론 우리가 얼마나 무지하고 심지어 무식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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