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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Jul 14. 2021

산장모텔

 다빈이를 찾은 건 **산 숙박지구, 지금은 한물가서 주로 인근 공사 현장 노무자들에게 달방을 주는 모텔방이었다. 다빈이가 몇 년 전 지적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알게 됐다는 윤지가 대여섯 살 많은 남자와 지내고 있었는데 그곳에 다빈이가 얹혀 있었다. 특이한 건 그 방에는 다빈이 말고도 같은 나이의 여자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러니까 남자 하나에 20대 초반의 여자들 셋이 한방에서 지내고 있던 것이다. 그것이 겸연쩍었던지 윤지의 남자인 용우는 좀 일어나 보라는 말에도 한사코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인근 시간 반쯤 거리의 도시에서 접수된 가출인 사건의 대상자인 다빈이의 휴대폰 위치가 우리 관내에 나타난 건 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접수 내용은 20대 초반의 여성 그리고 지적장애가 있는 다빈이가 1월 말에 집을 나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지적장애인, 그러니까 좀 모자라는 아가씨가 가... 아니 실종됐는데 기지국 위치가 이곳으로 나와서요. 혹시 모텔에 투숙했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나는 기지국 주변 유력한 모텔에 찾아가 가출인이라고 말하려다가 얼른 ‘실종’이라고 말을 고쳤다. 모텔 업주에게 협조를 구하려면 단순 가출보다는 무게감이 실리는 단어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었지만 지적장애가 있는 젊은 여성의 가출은 실제 실종에 준하는 사건으로 봐야 할 필요성도 있다며 그 사소한 거짓말을 마음속으로 합리화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여기는 지금 달방 쓰는 사람들밖에 없어….”

 모텔 업주는 관광객 손님은 없고 인근 공사 현장 노무자들이 달방을 쓰고 있는 곳이라며 젊은 손님은 오지 않는다고 했다. 모텔 업주의 말은 경찰관이 모텔을 뒤지고 다니는 것이 못마땅해 그런 것 같지는 않았고 실제로 그래 보였다. 한때 수학여행의 메카로 명성을 날리던 곳이었지만 더는 국내, 그것도 명산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교는 없었다. 관광객들 역시 바닷가 콘도나 펜션을 찾을 뿐 한물가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숙박 단지를 찾지는 않았다.


“저희가 경험해 봤는데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모바일 채팅으로 꼬드기면 남자가 있는 곳으로 오기도 하더라고요”

 다시 한번 모텔 업주에게 협조를 부탁하고 공사장 인부들이 있는 방이라도 확인을 해야겠음을 고지했다. 역시‘실종’이란 선의의 거짓말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그 숙박 단지만큼 늙었을 모텔 주인 남자는 당연히 협조해야 한다면서 인부들이 달방을 쓰는 호수를 불러주었다. 열댓 개가 넘었는데 두어 개는 부부가 쓰고 있다고 해서 제외했다. 마침 겨울비가 오는 날이어서 대부분 인부가 하루 공치고 달방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거나 티브이를 보면서 방안 가득 담배 연기를 채우고 있었다.      


“주임님! 문이 감겨 비어 있는 방을 제외하곤 전부 확인한 거 같습니다”

 같이 출동했던 후배는 경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친구답게 제법 꼼꼼하게 방을 확인했다. 


“이상하네. 분명히 기지국 위치가 셀값이라면 여기가 맞는데...”

 나는 그 모텔을 나서면 건너편 산장모텔의 간판을 바라봤다. 기지국 셀값의 위치라면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배제할 순 없는 위치였다. 산장모텔의 업주는 여자였다. 업주가 여자라면 여성의 실종 사건에 대해 협조를 구하기가 더 쉬울 터였다. 역시 업주는 달방 손님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이전의 모텔처럼 열댓 개 이상의 달방을 일일히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방문을 열었을 때 확 끼쳐 오는 담배 연기 냄새 내지는 칙칙한 홀아비 냄새가 나를 덮어쓸 상황이 자신 없었다.      


“김순경! 다빈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봐! 그리고 현관문에 귀를 대고 벨 소리가 나는지 들어보자”

 나는 다빈의 휴대폰이 진동이나 무음이 아닌 벨 소리일 것이라고 단정 짖고 좀 간편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3개 층의 전 객실을 그 같은 방법으로 수색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한군데 모텔을 더 수색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제 스스로 실종이라고 설정했던 사건의 종별을 ‘가출’로 다시 복원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가출한 성인의 발견을 위해 숙박업소의 객실을 일일이 확인할 순 없는 노릇 아니냐며 수색 중단을 스스로 합리화하며 철수할 타이밍 말이다. 결국 가출자를 찾지 못했지만 내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내가 모텔 업주에게 ‘실종’이라고 말한 것은 대상자가 지적장애가 있다니까 가능하면 대상자를 찾아 실종 가능성, 그러니까 성인 남자의 꼬드김에 빠져 그곳에 와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찾아보려는, 공무원 개인으로서의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이고 그것이 경찰업무의 매뉴얼, 그러니까 꼭 그렇게 하도록 규정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약간의 찝찝함을 남겨 두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사무실로 돌아왔다가 다빈이가 산장모텔 211호에 있다고 다시 상황실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퇴근 시간 무렵이었다. 일이 꼬이려면 늘 그렇게 꼬인다. 하필 퇴근 시간 무렵, 그러니까 교대하기 직전에 발견되는 것이다. 상황실에서는 대상자를 발견할 수 없다는 나의 보고에 가출 사건이니까 더 이상 수색을 중단하고 철수하라고 지시를 해놓고도 자기들도 뭔가 찝찝하니까 계속 다빈이에게 전화를 시도했던 모양이었다. 다빈이가 웬일인지 마침내 전화를 받아 통화가 됐는데 산장모텔 211호에 아는 언니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우선 산장모텔 업주인 여자를 만났다.     


“211호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부부가 쓰는 방이 있다고요”

 다빈이가 남자가 있는 방에 있을 거라고 단정 짓고 부부가 쓰는 달방은 원천적으로 배제했는데 실수였다. 업주가 말한 ‘부부’는 다빈이와 비슷한 20대 초반의 부부였다. 심지어 부인은 다빈이보다 어린 스물두 살에 불과했는데, 다빈이가 몇 년 전 복지시설에서 알게 된 친구, 윤지였다. 그 방은 인근에 사는 윤지의 엄마가 스물두 살 윤지의 소꿉장난 같은 불안불안한 결혼생활을 위해 업주에게 선불을 치르고 얻어 준 방이라고 업주는 설명했다. 결국 그 방은 가출팸이었다. 몸은 어른이지만 아직 마음은 중학생 혹은 그보다 더 모자랄 것 같은 ‘아이어른’들의 가출팸이었다.      


 다빈은 집으로 가지 않겠다고 완강히 고집을 피웠다. 지적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점으로 봐선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보호조치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더욱이 ‘가출팸’의 방주인 윤지와 젊은 남편도 좀 모자라 보일 뿐 나빠 보이지 않았고 다빈이 말고도 또래 여성이 한 명 더 있는 상황에서 다빈이의 강제보호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신고 접수자인 다빈이의 이모와 전화 통화 후 나는 다빈이를 반드시 설득해서 데리고 내려가야 하는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다빈이가 집을 나간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신고까지 해서 찾으려던 이유가 바로 어제 다빈이의 아버지가 사망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문제는 다빈이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면서도 귀가를 완강히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데려와 달라는 인간적 호소와 완강히 귀가를 거부하는 지적장애 3급 여성 사이에서 나는 순간 딜레마에 빠졌다. 차라리 강제보호 조치의 요건을 충족하면 더 쉬울 걸 그렇지도 않으면서 인간적인 딜레마에 빠지는 이런 류의 사건이 가장...그러니까 더럽다. 쉽게 말해 잘해야 본전이다. 다빈이는 완강했다. 집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 고집을 부렸다.     

 곤궁에 빠진 나는 L을 떠올렸다. L이라면 무슨 말을 했을까? 다행히 평소 L이 쓰곤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집에 가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 잘 들여다 봐봐 다빈아”

 사실 별 기대 없이 뭐라도 던져보자는 심정에서 했던 말인데 의외로 효과가 있는 거 같았다. 순간 다빈이가 뭔가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하는 거 같았다. 그순간 나는 다빈이의 마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다빈이에게 우선은 그 소식, 자체가 심적 부담, 그러니까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지능이 모자라는 다빈으로서는 우선 그 스트레스를 피하고 보자는 반응이었겠다 싶은 생각이 그때 어느 정도 확신으로 다가왔다.      


“다빈아! 집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아저씨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L이 잘 쓰던 말을 다시 흉내내며 조심스럽게 다빈이에게 마지막 공을 넘겼다. 그리고 마침내 다빈이가 실마리를 제공했다. 몇 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많이 놀랐는데 그때도 가족들이 다빈이에게 할머니를 지켜주지 못했음을 야단쳤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돌아가면 분명히 가족들이 자신을 야단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족들이 야단칠 것이라는 것은 다빈이의 수준에서 제시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집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의 실체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커다란 부담감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다빈아! 아저씨도 너보다 훨씬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누구나 부모님은 자신보다 먼저 죽기 때문에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야!”

 이제 나의 작전은 다빈이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내내 이불을 덮고 누워 있던 방주, 윤지의 젊은 남편인 용우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야! 일단 장례식에는 다녀와!”

 좀 모자란 녀석들에게도 나의 쩔쩔매는 설득이 조금은 갸륵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지켜만 보던 윤지도 나중에 다시 올 수 있지 않냐며 말을 거들었다. 결국 다빈이는 일단 아버지의 장례식엔 참석하고 다시 윤지 패밀리의 가출팸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지적장애 아이들도 다 생각이 있고 오히려 더 순수하다고 말했던 특수교사 L의 말이 그때 떠올랐다. 왜냐하면 방을 나서는 다빈이를 바라보는 윤지, 용우, 그리고 또 하나의 가출녀 세 사람의 눈빛은 세상 누구보다도 다빈이를 가장 많이 걱정하는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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