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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Aug 29. 2021

아주 흔한 장면

가정폭력

 새벽 2시가 얼마 안 남은 시간, 준희는 오늘 밤 웬일로 조용히 넘어가는구나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용한 밤이란 있을 수 없는 일,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도착하니 부부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식당은 불이 꺼져 있었다. 경찰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신임 순경 준희는 잠겨 있지 않은 출입문을 열며 안에 있는 사람에게 불을 켜 달라고 요청했는데, 혼자 있던 남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특이한 건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대뜸 반말했고 심지어 “뭐 하는 놈들이야”라며 마치 자신이 대단한 권력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신고내용에도 부인인 여자는 이웃집으로 피신해 있다고 했으므로 일단 준희는 남자를 남겨두고 이웃집으로 가보았다. 여자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여자는 겁에 질려 자기표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여서 마치 어린아이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어렵사리 더듬더듬 이어진 여자의 말에 따르면 남자는 식당에서 사용하는 육수용 긴 국자를 휘두르고 뜨거운 국물이 담긴 뚝배기와 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를 여자에게 끼얹으려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자는 사건 처리에 대한 의사가 명확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25년 동안 그렇게 살아온 자신을 살짝 책망하기도 했다. 함께 출동한 선배는 상습 가정폭력임을 눈치채고 여자를 안정시키며 설득했다. 


 “아마 오늘도 그냥 넘어가시면 남편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겁니다.”

“피해자가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남편은 계속 그래도 된다고 생각할 겁니다”

“가정폭력 사건은 형사처벌만 하는 건 아니고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해서 상담 명령도 내릴 수 있습니다”


  여자가 우선 옷가지나 자동차 열쇠가 있는 가방도 못 챙겼다고 하므로 일단 사건 현장인 식당으로 가자고 요구했지만, 여자는 남편의 보복이 두렵다며 주저했다.


 “옆에 경찰관이 있는데 뭔 걱정입니까?”


  반신반의하는 여자를 데리고 현장으로 되돌아갔을 때 여자의 말대로 테이블 위에는 보통의 국자보다 훨씬 긴 육수용 국자, 뚝배기, 그리고 펄펄 끓던 물로 인해 아직도 김이 나는 주전자가 있었고 여자의 핸드폰은 박살 난 채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사건의 그림이 준희의 머릿속으로 빠르게 그려졌다. 


  여자에게 우선 짐을 챙기라고 하고 준희는 남자에게 신원확인과 같은 기초조사를 진행했다. 남자는 여전히 반말로 권위적이고 심지어 위압적인 태도로 협조하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남자가 여자를 때릴 듯 덤벼들었다. 하지만 있을 수 있는 경우의 수로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준희는 남자를 쉽사리 제압할 수 있었다. 남자가 욕설하며 극렬하게 저항했지만 50이 넘은 술 취한 남자는 어렵지 않게 바닥에 제압됐고 선배는 현행범으로 체포한다는 말을 고지했다. 


  남자가 인근 지역의 기초의원을 지낸 인사라는 것은 지구대에 도착해서 알게 됐다. 그사이 남자는 경찰서 누구누구 등 과장급 인사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자신이 권력자인 척 과시했다.


 “너희들 가만두지 않겠어.”


  남자는 ‘쌍팔년도식 자기 과시’를 했다. 너무 시끄러워 지구대에 남자를 더 둘 수 없어 일단 수사팀에 인계하고 준희와 선배는 여자와 마주 앉았다. 


 “25년을 참고 살아오셨다고 했는데 남편이 정말 한 번이라도 변한 적이 있었나요?”

“사모님을 때리면 안 되는 사람으로 인식시켜 줘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법의 도움을 받는 방법뿐입니다”

 

 선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여자를 설득하고 준희는 옆에서 현장 사진을 정리했다.


 “사실은 남편이 지역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람이라 체면 때문에 도저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어요”

“작년에는 제가 도저히 살 수 없어 별거를 요구했는데 남편이 유서를 써놓고 죽겠다며 집을 나간 적도 있어요”


  두 사람의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 좋았다. 여자는 남편이 인근 지역에서 기초의원으로 활동했고 지역사회에서 유지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발설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가정에서 남자는 술만 먹으면 여자를 때리거나 위협하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고 했다. 실제로 자고 있는 여자의 목에 칼을 들이대거나 높은 절벽으로 억지로 데려가 밀겠다고 위협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작년에 남편이 음주운전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고 했다. 한마디로 가장 안 좋은 경우의 남자로 보였다.


 “남편은 먼저 폭력으로 위협하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위협을 하는군요”

“사모님은 폭력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자신이 자살하겠다는 위협이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네요”

“더 이상 폭력과 위협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셔야 합니다”


  여자는 어렵게 마음을 먹고 진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25년 만에 처음 해보는 것이라 했다. 중간에 연락받고 달려온 25세의 아들은 어머니에게 이혼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고 여자는 눈물을 흘렸다.


  사건 처리를 마치고 날이 세기 전 무거운 눈꺼풀에 힘겨워할 무렵 수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남자가 유치장에 들어가기 전 현장에서 경찰관에게 폭행당했음을 주장하니 당시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보고서를 써 달라는 요구였다. 


  준희는 당시 남자가 극렬하게 저항하고 제압하지 않으면 여자를 추가 폭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 물리력을 써서 남자를 체포했고 그 과정은 부인인 여자가 옆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써서 발송했다. 그때 졸고 있는 줄 알았던 선배가 잠꼬대인 듯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저런 타입은 아침에 술 깨면 아무 소리도 못 할 인간이야”

“게다가 지가 의원 출신인데, 쪽 팔려서 뭔 소리를 하겠니? 설령 경찰에게 맞았다고 하더라도 말 못 할 걸”


  밤사이 이 정도 사건 하나 처리했다면 조용한 편이다. 어느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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