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4등급 이하면 어떻게 살아요?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친구와 오랜만에 약속을 잡았다. 4년 만인가... 그동안 만나자고 만나자고 해도 도저히 서로 시간이 되지 않아 보지 못했었다. 이 친구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연락을 했다고 한다. 내가 일부러 피하는 건가 싶었다고 한다. 반가운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야 살아있었네! 얼마만이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반긴다. 마치 어제 학교에서 만난 것만 같았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나' 와 같은 진지한 고민을 하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어렸을 적 철이 없었지만 이 친구는 뭔가 성공할 것이란 느낌이 들던 친구였다. 그러나 서로 같은 고민을 했지만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친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내가 줄 수는 없었다.
주차장에 차를 놓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광장에 나가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스크를 썼는데도 너무나도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아직도 짧은 머리, 같이 야구를 하면서 키웠던 건강한 팔까지 그대로였다.
"oo아! 여기야!"
친구가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은 고등학교 시절 그 앳된 얼굴에, 크고 작은 풍파를 겪어 성장한 어른을 보았다. 눈물이 찔끔 고였다. 그 친구의 눈에도 같은 눈물이 고인 것을 보았다. 그리고 서로 크게 부둥켜 안아서 등을 토닥였다. "고생했다."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첫마디는 얼굴을 보자마자 느껴진 경험의 흔적들에 대한 따뜻한 위로였다.
술잔을 놓고 앉아 그동안 하지 못한 쌓였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었다. 이 친구는 훨씬 성장해 있었고, 나는 벌어보지 못한 큰돈과 성공을 이미 이루어냈었다.
"민규야 나도 정말 많이 힘들었었다. 죽으려고 고민도 했었는데, 꼭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더라고."
대기업에 들어갔다 스스로 나온 이야기, 식당을 차렸다가 코로나로 인해 크게 망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파란만장한 스토리들에 친구가 너무나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 나 이제는 꿈이 있어. 우리 직원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꿈은 직업이면 안된다는 명강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성공하는 것은 정말 별개의 이야기라는 것을 내 친구를 통해 증명한 것 같았다.
인서울에 목숨을 건 아이들이 많다. 3등급 이내의 점수를 받기 위해서 아등바등 공부한다. 사실 그렇게 해도 전국 상위 23%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77%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학교에서 요새는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애초에 잘못되었다. 아이들은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 모른다.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을 얻고 성공한다는 것은 정말 옛말이 되었기에, 공부하는 것보다는 눈앞의 일확천금을 쫓아다니는 것이 부지기수가 되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의 존엄함을 지키고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성적을 맞춰서 온 친구들이 있다. 본인의 업을 눈앞에 두고도 퇴근에만 목말라하는 어린 친구들이 불쌍해 보인다. 학교는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공부 잘하면 잘 산다는 고리타분한 옛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음이 부자가 되도록 알려줘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 법, 스스로 노예가 되는 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닌가 반성해야 한다.
취기가 서로 올라 예전 같이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헤어졌다. 이 친구가 운영하는 가계에 꼭 가볼 계획이다. 나도 더 성공한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