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는 병원에서 시작된다 - 병원에서 배운 '나'를 치료하는 방법
2025년 1월 코피가 멎지 않는 환자가 병원으로 찾아왔다. 새벽 3시, 어둠을 뚫고 달려가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장비도, 약제도 모두 열악했다. 수혈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 대량 출혈을 막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맡기는 '전원'이었다. 같이 온 보호자들의 표정을 기억한다. '코피로 사람이 어떻게 되겠어?'라는 표정. 하지만 목 뒤로 넘어가는 피의 양을 본 나는 최악의 상황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는 심장에서 직접 나오는 압력을 그대로 간직한 경동맥에서 피를 받게 된다. 코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혈관이 터지면, 적절한 처치 없이는 순식간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무엇보다 출혈의 위치가 좋지 않았다. 큰 혈관이 터진 후방출혈, 길고 긴 거즈를 코 맨 뒤쪽까지 밀어 넣어야 했다. 출혈로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와중에도 거즈를 넣는 고통은 뼈가 아리도록 느껴질 터였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막아 놓고, 수술을 기다려야 했다. 20군데가 넘는 병원에 전화했지만, 이 새벽 시간 환자를 받아 주는 병원은 없었다. 환자는 점점 하얗게 질려가고, 나도 식은땀을 흘리며 더해진 긴장감에 차가워졌다. 계속되는 전화에 휴대폰만 뜨거워질 뿐이었다. 결국 대한민국 북단에서 대전에 있는 병원까지 훑고 나서야 받아 줄 병원을 찾았다. 구급대원만 보낼 수 없어 환자와 같이 구급차에 올랐다... https://n.news.naver.com/article/654/0000103244?lfrom=memo
감사하게도 환자 분은 잘 회복하셨고, 한 기자분과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질문은,
"왜 이렇게까지 환자를 책임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나요?"였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가장 솔직한 답변을 했다.
"한 번에 해결하지 못해서.. 환자에게 미안해서요." 말을 하면서도 울컥했다. 이 마음이 정말 맞았던 것 같다. 군의관이 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치료의 옵션은 상당 부분 제한되게 되었다. 환자 1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학병원과 같이 여러과의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군 병원은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다른 병원들과 마찬가지로 분명 취약한 점이 있다. 가장 약한 부분에서, 가장 약한 시간에 마주쳤던 환자였다. 마음과 다르게 잘 해결이 되지 못할 때는 언제나 환자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내가 아닌 정말 실력 좋은 다른 의사가 보았다면 결과가 달랐지 않을까?'를 항상 생각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인턴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때는 전문의가 된 지금보다는 작은 판단들과 술기였지만, 환자에게 고통을 줄 때면 마음이 괴로웠다. 그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 왔다.
그 마음이 약해질 때면 초보의사의 이야기를 써놓았던 내 책 '의사가 되려고요'를 보기도 한다. 정말 놀랍게도 내 기억에 없어진 나의 이야기가 쓰여있다. 책을 읽으며 다시 그때로 돌아가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는다.
감사하게도 2021년 나왔던 이 책이 '나의 하루는 병원에서 시작된다'로 재출간하게 되었다. 배려해 준 출판사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덕분에 코로나 시기에 못했던 출간 강연회도 하게 되었다. 괴로운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로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성장도 너무나도 중요했다. 5월 24일 강연회에서는 그 과정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30명 이상 참가해야 개설이 가능하다고 한다... 얼마나 모일지 모르겠다.
혹시 강연을 들어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구글폼을 작성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