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대하여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나를 마지막에 두게 만들 때

by 지혜

〈다정하지만 흐리지 않는 사람〉 두 번째 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망친다.
처음에는 그 마음이 선의라고 믿는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고, 괜히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고, 내가 조금 참으면 지나갈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스스로도 쉽게 속는다.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이 배려인지, 두려움인지 잘 구분하지 못한 채.


나 역시 오랫동안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나 때문에 분위기가 깨졌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예민하다는 평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웃어넘겼고, 굳이 말하지 않았고, 가능한 한 상대의 사정을 먼저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보다 불편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 더 애썼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선한 마음 그 자체보다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흔들리는 상태. 거절해야 할 순간에도 괜찮다고 말하게 만들고, 불편한 농담 앞에서도 애써 웃게 만들고, 이미 지친 마음을 이끌고도 한 번만 더 이해해 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하게 만드는 태도. 겉으로 보기엔 다정하지만 안쪽에서는 자꾸 자신을 뒤로 미루는 습관이다.


이 콤플렉스가 까다로운 이유는 겉모습이 제법 아름답기 때문이다.
양보하고, 이해하고, 맞춰주는 사람은 대체로 좋은 평을 얻는다. 함께 일하기 편하고,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고, 문제를 크게 키우지 않는다. 세상은 그런 사람에게 자주 호의를 보낸다. 아니, 호의처럼 보이는 편리함을 준다. 그러니 더더욱 알아차리기 어렵다.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서 사랑받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다루기 쉬운 사람이라서 환영받는 것인지.


돌이켜보면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마음은 배려처럼 보였지만 자주 자기 소모로 이어졌다.
싫다고 말하면 멀어질까 봐, 선을 그으면 차갑게 보일까 봐, 불편하다고 말하면 유난스러운 사람이 될까 봐. 그런 걱정들은 늘 그럴듯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지켜낸 관계 안에서는 오래 편안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내 안에는 늘 작은 피로가 쌓였다.


가끔은 뒤늦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는 웃어놓고 집에 돌아와서야 기분이 상했다는 걸 인정하는 밤들이 있었다. 왜 또 그냥 넘겼을까. 왜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그런데 그 화의 방향을 잘 들여다보면 상대만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경우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한 실망이기도 했다. 내 불편을 가장 가볍게 여긴 사람이 결국 나였다는 사실. 내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의 본질은 착함이 아니라 불안일지도 모른다.
좋게 보이고 싶은 마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 관계에서 밀려나고 싶지 않은 마음. 물론 누구나 그런 두려움은 있다. 문제는 그것이 내 선택의 기준이 될 때다. 내가 정말 원하는지보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먼저 생각하고, 내 기준보다 상대의 감정을 더 우선에 두는 순간 관계의 중심은 서서히 나에게서 멀어진다.


좋은 사람인 것과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태도에 가깝고, 후자는 이미지에 가깝다. 태도는 상황에 따라 단호해질 수 있지만 이미지는 늘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사람은 자주 무리한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불가능한 부탁 앞에서도 애매하게 웃고, 이미 넘어진 마음을 일으켜 세워 다시 상대를 이해하려 든다. 그 과정에서 정작 자신에게는 몹시 불친절해진다.


나는 이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무조건 좋은 말로 듣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가끔은 그 말의 뜻을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것이 내 진심과 태도를 봐준 말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별다른 불편을 주지 않았다는 뜻인지. 지나치게 빨리 얻는 좋은 평판에는 때로 경계가 필요하다.


물론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버린다고 해서 일부러 모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되 나를 마지막에 두지 않는 것. 배려하되 무조건 감수하지 않는 것. 부드럽게 말하되 뜻은 흐리지 않는 것. 나는 이제 그 정도의 균형이야말로 성숙한 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예전보다 조금 나아진 것이 있다면, 모든 불편을 다 설명하려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안 되는 일은 안 된다고 말하고, 내키지 않는 자리에는 애써 이유를 길게 붙이지 않고, 반복되는 무례 앞에서는 웃음으로 덮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매번 자연스럽지는 않다. 때로는 선을 긋고도 돌아와 한참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그 어색함이 나쁜 사람의 증거는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늦게라도 나를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에 더 가깝다는 것을.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서 조금 벗어날수록 신기한 일이 생긴다.
모든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더 정확하게 나를 대한다. 가능과 불가능이 분명한 사람, 무조건 참지 않는 사람, 필요할 때는 조용히 선을 그을 줄 아는 사람 앞에서 관계는 의외로 더 선명해진다. 물론 어떤 사람은 떠난다. 하지만 대개 그런 관계는 내가 계속 나를 줄여야만 유지되던 관계였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좋은 사람이 되라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그 말 자체는 틀리지 않다. 다만 그 문장을 조금 고쳐야 할 필요는 있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함부로 자신을 잃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누군가를 배려하되 스스로를 소모하지 않는 사람.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되 내 마음의 경고도 무시하지 않는 사람. 나는 이제 그쪽이 훨씬 어렵고, 훨씬 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기보다, 내 기준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정하되 휘둘리지 않고, 친절하되 무너지지 않고, 이해하되 나를 버리지 않는 사람.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나빠지는 일이 아니라 비로소 내 쪽으로 조금 돌아오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전 01화다정함만으로는 나를 지킬 수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