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런던살이
그동안 주말에는 평일 동안 시달린 에너지를 보충하려고 집에 거의 누워만 있었는데, 평일 저녁도 여유 있게 쓸 수 있게 되다 보니 요새는 주말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를 계획하는 게 일상의 소소한 낙이 되었다.
이번 주말에는 테이트 모던을 다녀왔다. 두 달 전 백수였던 시절, 쿠사마 야요이 Infinity mirrors티켓을 사뒀었는데 언제 7월까지 기다리냐 불평했던 게 무색하게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달이 지나 그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전 회차 매진인 와중에 Memebers hour에 딱 두장 남아있는 거 겨우 구했던 소중한 티켓인데 리마인드 메일이 안 왔다면 까먹고 못갈뻔했다..ㅋㅋ 쿠사마 야요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무려 일요일 아침 아홉시에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가야 하나 싶었지만 아침 일찍이라 줄 안 서고 금방 보고 올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개인적으로 쿠사마의 땡땡이 호박 모티브를 정말 극혐해서 도대체 왜 인기 있는 작가일까 항상 궁금했는데 이번 전시는 어째서 이렇게 난리들인지 이해 갈 만큼 넘 예뻤다. 근데 전시물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2분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이제 조금 사진 찍고 둘러볼만 하니 나가라고 해서 아쉬웠다...
일 년 동안 락다운 핑계를 대고 운동이랑 담을 쌓고 살았는데 인생 최고 몸무게를 나날이 경신하고 있어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한국인 러닝 크루에 가입했다. 혼자서도 의지만 있다면 공원 가서 뛰면 되겠지만 요새 혼자서는 동기부여가 잘 안되어서 강제로 몸을 움직일 계기를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나 혼자 페이스 뒤처져서 민폐면 어쩌나 했는데 준비운동 같이 하고 각자 한 시간 동안 가능한 페이스대로 뛰고 다시 모여서 정리 운동하고 헤어지는 모임이라서 부담 없어서 좋았다. 꾸준히 다시 달리면서 예전 6분 초반대 페이스로 돌아가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새 취미 겸 운동으로 발레를 시작했다. 예전에 유연성을 길러보려고 요가랑 필라테스를 배워본 적도 있었는데, 요가는 재미가 없고 필라테스는 할 때마다 자꾸 손목하고 어깨를 다쳐서 포기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뻣뻣하게 살다간 나중에 늙어서 몸이 다 굽어버릴 것 같아서 유연성 위주의 운동을 찾아보다가 발레도 자세 교정하는데 도움이 되고 코어 근육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서 용기를 내서 시작해보았다. 한시간이라 크게 부담되지 않는 수업이겠거니 했는데 내 몸에 이런데도 근육이 있었구나;; 라는걸 깨달을 수 있었던 빡센 한시간이었다ㅠㅠ 발끝을 바깥으로 향해서 서는 턴아웃 자세를 제대로 하는데만도 온몸에 힘을 줘야 하고 발끝까지 제대로 포인을 줘서 다리를 뻗으려면 온갖군데서 관절 꺾이는 소리가 나서 그동안 나는 정말 몸을 쓰레기같이 써왔구나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_ㅠ 그래도 음악에 맞춰서 몸 움직임에 오롯이 집중하다 보니 뭉친 근육과 함께 스트레스까지 풀리는 기분이라 뿌듯했다. 앞으로 꾸준히 해서 토슈즈를 신어보는 로망을 꼭 현실로 이뤄보고 싶다.
저번 주말의 가장 큰 이벤트를 꼽으라면 단연코 UEFA였을 것.. 저번 주 수요일 이후부터는 거의 다들 일을 손에서 놓은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두가 들떠있는 게 랜선 너머에서 느껴질 정도였던 데다 이번에 잉글랜드가 우승하면 추가 공휴일을 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어서 축알못인 나도 급 열심히 응원했었다ㅋㅋ 축덕인 우리 그룹 헤드가 월요일에 늦게 출근해도 좋으니 결승전은 꼭 보라고 해서 몇 년 만에 축구경기를 풀로 챙겨보았다. 승부차기 못하기로 유구한 역사가 있는 잉글랜드인지라 아쉬운 결과였지만, 네이티브 잉글랜드인 말에 따르면 중요한 축구경기에서의 패배하는 것이야말로 찐 잉글랜드 DNA를 완성하는 것이라며 쿨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튼 요새는 평일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열심히 놀면서 인생 통틀어 가장 워크&라이프 밸런스가 잘 잡힌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마 훗날 또 풍파가 몰아닥치는 시기가 찾아오면 이 때를 내 인생의 리즈시절이라고 기억하며 그리워하지 않을까 싶다. 부디 이런 평화로운 일상이 당분간은 이어졌으면...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