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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Park Jan 27. 2023

1. 첫 비행, 그리고 두 번째 첫 비행

첫 비행을 하기 전에 나는 첫 비행날짜를 평생 기억할 줄 알았다. 

첫 비행을 끝마치고서 나는 그 비행기의 고유번호를 평생 기억할 줄 알았다.


 불행하게도 난 벌써 그날이 언제였는지, 무슨 비행기를 탔는지는 사진첩을 뒤져야 알아야 할 정도로 그 기억이 희미해졌다. 나는 내 동기들 누구보다도 비행에 더 열망이 있었고 누구보다 더 추억에 연연하는 사람인데 왜 기억하지 못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도 부정적인 답이 아님에 안심했다. 첫 비행보다는 내 비행자격증의 첫 발을 내디딘 자가용 면장 시험, 즉 두 번째 첫 비행이 그 추억을 덮어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리솔로, 그러니까 이제 나 혼자 비행을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시험에 합격하여 처음으로 혼자 비행한 날. 처음으로 야간비행을 한 날. 처음으로 혼자 다른 공항에 내린 날. 처음으로 계기비행을 해 본 날. 처음으로 구름 속을 뚫고 간 날. 처음으로 비를 뚫고 비행한 날. 처음으로 제트기를 하늘에서 가까이 만난 날. 처음으로 전투기 앞에서 이륙했던 날. 이 모든 것들이 내 첫 비행의 감동을 ‘덮어쓰기’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그래도 ‘처음’의 의미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퇴색시키기란 쉽지가 않다. 지금도 그 두 번째 첫 비행의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면장을 따기 위한 시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지는데, 첫째는 지상수업의 필기시험, 둘째는 영어구술평가, 그리고 마지막은 직접 비행을 하는 실기시험이다. 보통 필기시험은 한참 전에 미리 합격을 해놓고 구술평가 (우리는 오랄체크라고 말한다)와 비행시험을 운이 좋으면 하루 만에 보고 그게 아니라면 하나씩 나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리솔로와 달리 자가용 면장을 따기 위한 오랄체크의 분량은 엄살을 조금 보태서 어마어마한 수준인데, 물리, 수리, 역학, 기상, 지질, 공학, 항공법 등등 체크해야 할 범위가 아주 많다. 그래서 이 자가용 면장의 오랄체크는 우리들의 암묵적인 첫 고비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몇몇의 동기들이 먼저 자가용면장을 따 놓은 시기라서 나는 크게 긴장을 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날씨였다. 체크 전날, 스케줄을 확인하고 체크 당일의 날씨를 확인했는데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시정도 좋고 비도 안 오고 모든 게 좋았는데 문제는 바람이었다. 거대한 380이나 747도 거센 바람 앞에선 한낱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조종사들은 바람에 살고 바람에 죽는다. 이제 겨우 프리솔로를 마치고 자가용 면장을 따려고 하는 나에게 프로펠러 하나 달린 4인승 2000파운드(약 900kg) 짜리 경비행기가 감당하기엔 고개가 갸우뚱하는 그런 바람이었다. 한 스테이지에서 두 번 연속으로 탈락하면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가차 없는 이곳에서 도박을 걸기엔 약간 무리수인 그런 바람이었다. 결국 나는 오랄체크만 보고 비행은 미루기로 결심을 하고 오랄체크를 보러 갔다.


 오랄체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아리송한 질문들이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고 마무리가 되어가는 중에 체커가 나에게 Go or No Go를 물었다. 이 Decision Making 역시 조종사에게 필요한 아주 중요한 능력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나는 No Go를 넌지시 던졌는데 체커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물었다. 


- 너 비행계획 다 짰어? 

- Yes 

- 날씨 봤어? 

- Yes 

- 너 Personal Cross wind limit 넘어? 

- No but almost. 

- 그럼 Go. 대신에 가까운 공항으로 가자. 


이렇게 해서 마음의 준비를 60%밖에 하지 않았던 나는 결국 비행까지 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자가용 면장의 비행체크 개요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1. 조종능력 2. 비상상황 대처능력 3. 다른 공항으로까지의 비행 4. 도중에 또 다른 공항으로 목적지 변경 5. 교신능력 등을 비행 중에 체크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종능력 중에 이륙 3종류, 착륙 3종류를 정확히 수행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 시험에서 탈락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착륙에서 실패한다는 점이다. 우리를 죽도록 괴롭혔던 Short Field Landing을 나는 졸지에 내 한계에 가까운 측풍이 부는 날씨에 시도를 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Short Field Landing은 쉽게 말해 내 비행기의 바퀴가 활주로에 있는 1000ft foot marker에 정확히 닿게 하여 착륙하는 조종술이다.


  

[바로 저기 Aiming point가 내가 말하는 foot marker다]


 계류장에 나가 착잡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점검하고 있는데 체커가 와서 이것저것 묻는다. 이건 뭐냐 저건 뭐냐 이건 무슨 역할이냐 저건 왜 저기 달려있냐 등등. 그렇게 비행기로 들어와 착잡한 마음으로 시동을 걸고 브리핑을 하고 출발했다. 비행은 순조로웠다. 그녀가 원하는 이륙방법으로 이륙을 하고 옆 공항으로 가면서 항법계산기로 바람에 따른 연료 소모량, 기수 방향, 고도에 따른 출력조절 등등을 브리핑하면서 내 머리와 손발은 바쁘게 움직였다.


  

[대충 이런 종이에 시시각각 변환된 정보나 시간을 기입한다. 시험비행 중에 iPad는 쓰지 않는다.] 


이제 다른 공항으로 목적지를 변경하여 또다시 새로운 계산값을 도출하고 말해주니 이제 항법 관련 체크는 무사히 넘기고 착륙을 테스트하는 단계가 왔다. 우리가 항상 연습하는 메인공항은 바람이 애매하니 옆의 다른 공항에서 착륙을 하자고 하여 그곳으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접근 브리핑을 한다. 착륙은 세 종류를 통과해야 한다. Normal Landing, Soft Field Landing, 그리고 대망의 Short Field Landing. 


 나는 일단 Normal Landing을 한다고 말하고 활주로를 향해 접근했다. 좋아. 하던 대로 하자. 바람을 이겨보자. 바람은 오른쪽에서 세게 불고 있어. 오른쪽으로 윙 로우를 만들자. 여태까지 수없이 연습했잖아. 300ft. Stabilized. Flaps 40. Continue. 좋아. 이대로만 가자. 나는 바람을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여태까지 했던 비행 중 이렇게 센 바람을 만난 적이 없었고 그 대가로 나는 활주로 중앙선에서 약 2~3M 왼쪽으로 떨어진 곳에 착륙을 하고 말았다. 모든 착륙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중앙선을 맞추지 못한 것이었다. 완벽한 실패였다.


 나는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재시험을 볼 때에는 내가 탈락했던 요소만 다시 수행하면 되는 점을 기억해 내고 나머지 항목만이라도 잘해보려고 금방 정신을 차렸다. 


Normal Landing을 보기 좋게 망친 뒤에 나는 택싱 하여 재차 활주로로 진입을 했다. 교관이 물었다.


- Back to Vero? (우리 메인 공항)

- I’ll do my Soft field landing here.

- That’s what I wanted to hear.


 그렇게 내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되었다. 난도가 높지 않은 Soft field landing을 수행하기 위해 방금의 실패 원인을 소리 내어 혼잣말로 읊었다. 이미 교관은 내 신경을 쓰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나만의 비행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이륙을 하고 장주를 돌아 새처럼 내려앉자. 그것이 Soft field landing의 목표였다. Short field landing이 아닌 이상 터치다운 지점은 큰 의미가 없었기에 나는 부드러운 착륙을 위해 온 힘을 끌어모았다. 다시 한번, 바람을 이겨보자. 부탁한다 비행기야. 활주로를 직선으로 맞추고 브리핑을 한다.


 300ft. Stabilized. Continue. 활주로 끝단을 지나쳐 비행기는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고 바퀴는 활주로에 접하기 직전이었다. 어어. 거센 바람과 풀 플랩의 영향으로 비행기가 부웅하고 뜨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쿵 찍으면 나는 망한다. 순간적으로 기수를 내리고 바람을 탔다. 비행기는 약 10여 미터를 더 가서 활주로에 끽하고 안착했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곧바로 플랩을 접고 풀 파워로 touch and go를 수행한다. 


- Back to Vero 하면서 나머지 기동 수행하자. 

- Roger


이후에는 연습했던 각종 기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이제 마침내 마지막 관문인 Short field landing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으로 접근하며 나는 마지막으로 아까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조금만 더 하면 바람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공항의 바람은 아까보다 훨씬 심해졌다. 이젠 정말 내 측풍 한계를 1노트만 남겨놓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평소 쓰지 않던 활주로로 갑자기 변경이 됐다고 타워에서 내게 알려왔다. 교관은 나를 쳐다본다. 


- Your Decision.

- 시도해 볼게. 하지만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네가 곧바로 조종간을 잡아.


어디서 이런 깡(?)이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평소 연습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장주 패턴, 그리고 활주로, 거센 바람. 이 모든 것이 나에겐 불안요소였지만 위험요소가 되지는 않았다. 이때까지도 나는 아까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 


- 1000ft on final. Flaps 10.


어떻게 해야 바람을 이길 수 있지?


- Base turn altitude, Flaps 25.


벌써부터 바람이 거세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바람을 이길 수 있을까? 


- 300ft, Flaps 40, Stabilized, continue.


그러다 문득 교관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 바람은 이기는 게 아니야. 비행기는 바람 속을 거닐게 설계되었지 바람을 거스르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아. 너는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새라고 생각해야 돼. 


- 200ft


좋아. 느껴보자. 내 눈은 고도계와 속도계, 창 밖을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었고 어느새 손끝과 발끝은 조종간, 쓰로틀 그리고 러더와 한 몸이 되어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 100ft


저 하얀 줄이 내가 내려앉을 곳이다. 내가 저곳으로 날아가는 게 아닌, 이 바람이 나를 저기로 인도하도록 하자.



  

[눈앞에 보이는 저 foot marker에 착륙하기 직전]



- 50ft


 그때였다. 세찬 바람에 무섭도록 떨리던 내 비행기는 순간 고요한 물결 위에 놓인 듯 부드럽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찰나를 나는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1000ft foot marker에 바퀴를 접지 시켰다. 끽하는 고무 마찰음과 함께 내 비행기는 활주로의 정 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완벽한 성공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나는 탈락했다는 스스로의 결정과 함께 착잡한 마음으로 주기장까지 돌아가 모든 체크리스트를 끝내고 시동을 껐다. 체커는 브리핑룸에서 보자는 말만 남겨놓고 먼저 떠나버렸고 나는 또다시 착잡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단단히 묶고 축 처진 어깨로 브리핑 룸으로 들어갔다.




- Congratulation.


이것이 그녀의 첫 말이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너 아까 내 normal landing 봤잖아. 그거 엉망이었다고. 


- 나도 알아. 넌 center line에서 많이 벗어났었고 wind correction에서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 하지만 두 번째 soft field landing에선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고 마지막 short field landing은 말 그대로 완벽했어. 넌 몰라서 못했던 것이 아니고 오늘 같은 안 좋은 날씨 속에서 감을 잡지 못하고 단지 약간의 실수를 했을 뿐이야. 그것조차 안전에 위협이 되지는 않았던 흔한 실수였어. 넌 이제 혼자서 비행하기에 충분한 실력이 된 것 같아. 합격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아주 잘했어. 축하한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첫 비행’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불과 5개월 전이다. 바람을 이기는 방법이 아닌 바람을 타는 방법을 깨달은 지 불과 5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소한 변화가 지금도 내 비행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주고 있고 나 자신을 더 겸손하게 만들고 있다. 내 두 번째 첫 비행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중요하다. 앞으로 남은 내 긴 비행인생에서 이 깨달음이 단단한 토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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