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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Nov 14. 2023

성훈씨의 하루 1

성훈씨의 하루        


            

아이들의 낭창한 목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잠을 깨웠다. 늘 그랬듯이 티비 광고 속 나오는 아침햇살 같은 따듯하고 기분 좋은 아침은 없어진지 오래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지만 일어나기도 어정쩡하다. 어차피 사람들이 분주히 지나가고 난 뒤에야 나의 아침은 시작된다.

낡은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제법 공기가 싸늘하다.

골목에는 낙엽들이 어지러히 굴러다니고 있다. 낙엽인척 하는 비닐봉지들과 담배꽁초들이 뒤섞여 있다. 보기 싫다는 생각보다는 이젠 그냥 자연스러워 보이는 풍경이다.

‘쓸모없고 버려질때가 되면 이 골목으로 죄다 흘러 들어오는 군’

나무 한그루 없이 삭막하고 좁은 골목에도 계절을 알려주는 불청객들을 바람은 실어오곤 했다. 

봄에는 매케하고 칼칼한 황사가 어김없이 이곳에 나지막하게 깔렸다가 여름철에는 계곡처럼 물이 불어났다. 어차피 더 밑으로 갈 곳이 없다고 넌지시 암시하듯 그렇게 차올랐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려 해도 바람이 거세 자꾸 꺼진다.

‘좆같은 동네라 담뱃불도 붙이기 힘드네. 시팔…….’

츄리닝 지퍼를 열고 고개를 처박곤 다시 불을 붙인다. 

지나가는 아주머니는 나를 보곤 얼굴을 찌푸리더니 끌고 온 개새끼인지 강아지를 번쩍 안고 총총히 사라진다.

기분이 개 같다. 

아니 개 같은 인생이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 개나 나나 벌이가 없는 것은 똑같은데 받는 취급은 내가 한참 모자른 지 싶다.

아마도 골목 뒤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을 나온 걸게다.

부모 잘 만난 사람보다 주인 잘 만난 개가 더 상팔자 일게다.


“아버지 아침 드세요 엄마가 들어오시래요”

고개를 돌려보니 철문에 얼굴을 뺴곰이 디밀고 아들 녀석이 이야기한다.

“먼저 먹어, 먹고 어여 나가들 봐 난 이따 먹을 께.”“들어 오시래여 엄마가, 빨리여”

“알았어 들어갈게 ” 한 번 붙이기도 힘든 담배라 두 대째 채 피우다 만 장초가 아까워 두어번 급하게 빨았다. 애꾸눈을 하고 바닥을 한참 노려보며 재더니 손가락을 퉁 하고 튕겨서 하수구 그레이팅 틈새로 집어 던지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101호가 우리집이다. 명색이 101호인데 안 그래도 낮은 골목길에서 반 계단을 내려가 현관문이 있다.

문을 열자 마자 좁은 주방이 신발을 벗은 곳부터 시작되고 아내와 아이가 앉은 식탁은 내가 앉을 자리가 없어보일 듯 비좁다.

식탁위에 정체를 알수 없는 찌개가 냄비 채 올려져 있다. 

“먹고 놀면서 아침밥을 차리길 하나 차려준 밥도 제때 먹길 하나 그 놈에 담배는 좀 끊던지 에휴 정말,,,”

식전부터 하나마나한 잔소리를 퍼 붇는 아내의 얼굴과 강아지를 안고 가는 아줌마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밥벌이를 못하는 강아지는 예뻐도 돈 못 버는 사람, 남자는 예쁨 받기를 포기해야 한다.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불평을 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찌개의 정체가 오늘의 수수께끼인가?”

밥 숟가락을 탁 놓으며 아내가 버럭 소릴 지른다.

“돈 한 푼 못 벌면서 가지가지 한다. 지금 당신이 반찬투정할 처지야 직접 차려보던지 집구석에 허구헛날 노느니 나가서 뭐라도 하겠다. 돈백만원만 벌어와봐 아침마다 삼겹살 구워 대령할게”

“허 참 유머를 꼭 진지하게...”

“유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정말 내가 아침밥 차려주고 일 나가 돈 벌고 넌 미안하지도 않니? 제발 정신 좀 차려 뭐든 일 좀 해”

“알았어 애도 있는데... 내가 하기 싫어 안하는 게 아니자나 지금 발바닥도 너무 아프고 손목을 못들겠어. 후휴증 때문에 나도 정말 미치겠다구”

손에 든 포크를 흔들어 보였지만 아내는 물론 아들 녀석도 외면을 한다.     


 아내는 식당으로 아들은 학교를 가고 나면 집에 남은 것은 설거지 거리와 벗어놓은 빨래들이 들어 있는 플라스틱 바구니가 번호표를 뽑은 은행손님처럼 나를 마냥 기다리며 앉아있다.

바구니를 들고 화장실 한 켠에 놓여 있는 세탁기 앞으로 간다.

속옷과 수건을 빼어 내고 색깔 있는 맨투맨티셔츠와 바지 양말들을 모아서 통 안으로 넣는다.

아들 녀석의 옷들은 하나 같이 커서 몇 개 넣지도 않았는데 빨래 통이 꽉 채워진다. 

 제법 공부를 잘했던 녀석이었다. 형편이 나쁘지 않아 이런저런 괴외와 학원을 보냈었다. 좀 더 준비하면 특목고를 노려볼만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사업이 망하고 나서는 그냥 저냥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다니다 전문대학을 들어갔다. 재수를 해도 좋으니 일반대학을 가라고 이야기 했지만 아들녀석이 고집을 부렸다. 더 이상 나는 주장을 하거나 설득을 하려 하지 않았다. 실제 4년제 일반대학을 나와서도 별다르게 너의 인생이 펼쳐질 거라고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었다.

경제적 부담이 덜어진다는 속안에 들은 안도감을 애써 감추고 덤덤이 잘하라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이야길 했다.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돌리고 나와서 설거지 거리로 넘쳐나는 좁은 싱크대 볼을 쳐다보다 의자에 잠깐 앉아 캡슐커피를 내린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거릴 뿐 점심이 되기 전 오전시간은 늘 적막하다. 

“세탁기가 끝나려면 2시간은 걸리지. 이제는 설거지를 해야지...” 

언제부턴가 자꾸 혼잣말을 한다. 그걸 느끼면서도 피식거리다가 이제는 조금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이야기에 누군가 대답을 하면 이야기한 내가 나인지 대답을 한 내가 나인지 어쩌면 조현병 증세인가?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그만..,


 핸드폰을 열고 유투브에서 익숙한 음악을 튼다. 주방에 바로 붙어 있는 방안에서 스피커를 들고 왔다. 좁은 집에서 쓰기는 좀 크지만 마샬 스탠모어는 그나마 남아 있는 유일한 멀쩡한 기기이다.

Helloween의 eagle fly free가 나온다 metallica, anthrax, 스래시메탈 들이 연달아 저장된 기록을 따라 흘러 나온다. 이제는 그다지 감흥이 없지만 익숙한 리듬과 리프가 마음이 편해서 일까 자꾸 찾아든다,

유투브의 알고리즘이란게 김유신 장군의 말처럼 나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아마도 무의식속의 나의 공간이 있는 것 같다. 의식하지 않으면 자꾸 안에서 반복되고 머물게 만든다. 

뜬금 없이 여자 목소리가 이어진다. zard의 what a beautiful moment 실황음악이다 사카이 이즈미의 노래소리가 자금자금 퍼진다.  


내가 한때는 좋아했던 여자였다. 그렇게 불행하게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유부남이고 한가정의 가장이었지만 많이 놀라고 슬펐었다. 물론 그 슬픔을 누구에게도 들키지는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죽음, 그리고 민영이 승준이의 연달은 자살을 나는 지켜보았다.

부모님과 이별만큼 친구들의 죽음은 또다른 큰 충격이었다. 사업을 실패를 하고 이혼을 하고 다시 재기를 하려고 애쓰다 속초의 어느 바닷가에서 자살한 민형이,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어린 딸애와 부인을 두고 자살한 승준이도 슬픔고 가슴이 아팠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었고 성공하고 행복할 거라는 자신감에 안도감과 자만함이 가득했었다.

조금은 늦게 어차피 누군가에게도 한 번 시련이 해일처럼 닥쳐오게 된다. 나는 그 해일 속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살아남았다. 

그 것만으로 만족하였는지 모르겠다. 길거리로 고시원으로 쫒겨가지도 밀려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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