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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Jun 22. 2024

골목

(거리에 대한 에세이 쓰기 숙제)

골목


 운동화를 꿰어 신고 밖을 나가는 내게 일찍 온날은 집에 좀 있지 다 늦게 어딜 가냐는 아내의 지청구가 들린다.

 소화도 시킬 겸 혈당관리를 위한 산보를 간다고 둘러대고 집을 나선다.

 에어컨 바람이 미치지 않는 길가에는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다 하지를 앞둔 6월의 저녁은 해가 좀처럼 지지 않는다. 날씨가 이러니 낮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담배를 끊었다고 줄인다고 이야기했지만 쉽지가 않다. 명목적으론 산책이 목적이지만 흡연을 위한 산책이라는 것이 스스로도 좀 한심스럽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흡연이 산책을 할 구실이 되었으니 그나마 마음이 가볐다.

 조금 걷다 보니 바람이 법 시원하다. 세상의 일이라는 게 명암이 같이 한다. 뜨겁던 작열하는 태양이 있기에 저녁에 산들거리는 바람이 더 존재감이 빛난다.

 매년 기록적이라는 한파와 더불어 몇십 년 만에 더위라는 뉴스는  이제 별 감흥이 없어진 지 오래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것 그리고 영원하지 않은 곧 제풀에 꺾여질 계절이려니 그저 한 해를 보내는 통과의례처럼 여길 뿐 지금 당장 무언가 해야 될 일들이 차고 넘치는 요즘의 사람들에겐 귓등으로 들리는 차소리 같이 여겨진다.


집을 나서면 골목 보도블록에 올려진 내 발을 보고 문득 기시감에 빠질 때가 있다.

보도블록의 문양과 그 틈새의 이끼를 보고 예전의 골목길에 네모난 블록들이 생각이 나기도 하고 집 앞의 그 블록들은 지금 다 어떻게 되었을까 다 파쇄가 되었을지 아님 땅속 깊이 그냥 묻혀 버렸을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흔적들이 마음을 맴돈다.

50여 년을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을 보아온 것 때문일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집에 있고 싶은데 자꾸 백 원짜리를 쥐어주면 가출을 종용하며 등을 떠밀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실을 오면 나는 책을 보는 척 배를 깔고 아주머니들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귀를 쫑긋이 세우고 이야기를 경청을 하였다.

가만히 듣고 못 본 척, 못 들은 척해야 하는데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즘에 나도 모르게 옅은 탄식이나 감탄사를 내뱉고 이야기를 껴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턱 받치고 있는 거 아니라고 옆방으로 가라 하셨지만 코딱지만 한 집에서 아무래도 불안하신 건지? 불편하신 건지 나에게 나가 놀라고 하셨다.

밖으로 나가봐야 딱히 놀 친구들도 없고 세상 모든 잼난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지는 집 밖을 나가기 싫어했기에 금전적인 보상을 제안하였고 더 이상 버팅기는 것은 서로에게 좋은 결말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상 충분히 이해하던 나였기에 순순히 받아들였다.


지금도 혹시 아내가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역시도 좁은 집에서 턱을 괴고 있는 내게 몇만 원을 쥐어주며 밖에서 놀다 오라고 해줬으면 기대를 하지만 나는 집을 지키고 아내가 밖으로 나갈 것이다.

곁들여 밀린 설거지와 빨래를 부탁하며 내가 혹여 딴짓이라도 할까 잔뜩 숙제를 내주고 나갔을 것이다.


산책이라고 나선 길이 아파트단지들은 재미가 없다 살지도 않은 남의 단지에 들어가 구경하기도 그렇고 단지 밖은 한양도성의 성벽같이 막히고 답답하게 길게만 이어져있다.

동네가 개발이 된 것은 아파트가 많아졌다는 말이고 실상의 거리의 상가나 집들은 사라졌다는 말이다.

예전의 막히고 휘어지던 좁은 골목들을 잡아먹고  아파트를 돌아가는 도로는 서로 이어지지고 막힘이 없다.

요즘의 사람들은 동네나 마을에 살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서 몇십 미터만 가도 서로서로 익명의 지나치는 타인이 된다.

길은 뚫리고 공간의 막힘을 뛰어넘었지만 정서적인 담장이 새롭게 굳건하고 높게 세워졌다.

끊기고 막힌 집들이 있던 골목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의 집과 담장을 넘어 큰 동네라는 곳에 살아가고 있었다.

집안에서 산다는 생각보다는 그 동네와 골목을 아우르는 커다란 집안에 살고 있었다.


길게 이어진 아파트 담을 따라 걸으며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났다 아마 골목이 이어지다 막히는 삼거리 즘 되었던 곳이다 여름날 오후에는 삼삼오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담장 안쪽에서 뿌리를 뻗은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그 자리에는 꽃잎이 지고 파릇한 연두색 잎들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면 그 그늘밑에 비닐 장판을 못질하여 어설프게 깔아 놓은 침상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해가 떨어지려면 아직 멀었지만 오후의 한담으로 꽃을 피우던 여성들의 모습이 5시를 기점으로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하루 세끼의 밥을 짓는다는 일은 너무도 엄중하고 대단한 의식이었기에 주부들은 밥 먹을 시간 6,7시를 전후로로 다들 집으로 바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설거지와 뒤처리를 끝내고 별 볼일 없는 티브이 프로그램마저 시들해지면 다시금 모여들기 시작한다.

동네 한 편의 나무 침상은 그 시절의 카톡방이었고 인스타였으며 유튜브였다.

아마도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더 어렸을 아낙들과 마흔만 넘으면 더 이상의 고상함과 부끄러움은 사라져 버린 인생원로들이 되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내린다.

도심의 골목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던들 많은 여사님들과 아낙들은 그 시절을 버텨내고 지금의 멋쟁이 할머니들이 되지 못했으리라...(그렇지 못하고 고상한 여사님들은 암으로 많이 먼저 가셨을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의 저녁은 해방과 일상에 대한 탈주의 시간이었다.

지금은 골목이 멸종하였고 이따금 재개발과 재건축의 축복을 비껴간 몇 곳의 골목들은 사람들이 더 이상 살지 않는다.


집 근처의 광흥창역 6번 출구에는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선사시대 집터가 발견된 고고학적 가치가 빛나는 유물이 40여 년 전의 모습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 중이다.

어느 날 문득 인적이 없는 그 골목으로 슬쩍 들어가 보기도 하였지만 아련함과 정겨움보다는 친하지 않은 말기 암환자인 이웃을 병문안하고 온 씁슬하고 무던한 감정이 들고 한다.

너무나 오래 산 동네이기에 등잔 및이 어둡다고 구석구석 꼼꼼히 보지 않고 지나다니기만 하다 보니 감각이 무뎌진다.

집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경제적 자산으로 가치가 더 소중한 시대가 되었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지만 재건축은 당분간 요원할 것이다.

계모가 추천하는 재건축이라는 이야기가 이혼과 재혼이 빈번한 시대에 계모에게 너무 가혹한 편견일 수 있어서일까 요즘은 원수가 추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도시와 거리는 생물처럼 태어나고 자라고 소멸한다.

한 사람 한세대의 기억과 추억되는 거리보다는 몇 대가 이어지는 역사를 공유하는 거리는 이제는 많지가 않다.


예전보다 공원은 더 많아졌고 나무들은 더 푸르고 꽃들과 잔디들이 깔린 공간들이 전에 없이 많이 보인다.

어린 시절 선망이었던 외국의 공원의 잔디밭에 사람들이 마구 들어가서 눕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이제는 흔하고 별일이 아니다.

나무들 초록초록한 경의선 철길 공원의 거리와 한강의 공원들을 사랑한다.

그런데도 예전만큼 길을 걷고 거리를 쏘다니는 재미가 적어진 이유를 생각한다.

어느 곳이든 상업적인 목적에 충실하지 않은 공간이 없기에 어딘가 불현듯 발견된 작은 가게와 펍들을 쉽게 들어가기가 두려워진다.

사진 속에서만 빛나는 예쁜 공간보다는 이야기가 토핑 된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 점점 찾기 힘들어진다.

거리를 지나며 내가 맡아야 할 역할은 지나가는 행인 1, 2가 될 뿐이다.


거리, 길이라는 의미는 소통의 상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gtx니 전철이니 새로운 길들이 생기고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마을과 동네는 점점 소멸해 간다.

파주와 일산이 경의선이 생기고 상권이 망가지고 사람들은 동네를 마을을 지나치고 서울의 홍대 앞으로 몰려간다.

통탄이니 서울 근교의 도시들도 비슷한 과정을 맞이할지 모르겠다.

바둑판처럼 가지런히 사통팔달 뚫려 있고 교통이 편해질수록 골목과 거리는 쇠퇴해 갈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은 부동산 가격과 배타적인 나의 단지와 집들이 개방된 관계와 소통의 거리와 골목을 같이 공존할 수가 없다.

누구와 사냐보다는 어떻게 더 풍요롭게 사는 냐가 인생의 기치가 변경되어 간다.

저속하지만 우리는 너무 많이 구별하고 구분하고 분류한다.

집과 차와 물건들 사람들도...

비교함으로 생겨나는 자존심과 스스로 만들어 내는 자존감은 영원히 동시상영되지 못하는 영회처럼 상대적인 가치일 것이다.


답을 잃어버렸다.

골목을 잃어버렸다.

골목 안에 복작이던 사람을 잃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걸으며 그냥 지나친 많은 가게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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