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유오 시인 순수한 기쁨
어제는 차유오 시인의 소스리스트란 부제로 열린 북콘서트를 다녀왔다.
집에서 지도를 보면 양평동이나 문래동은 코 앞인 것 같은데 바로 강을 건너 질러가는 버스는 없다.
모처럼 늦지 않게 가려고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에서 환승을 하였다.
퇴근시간 지하철을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나는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대기하며 줄 서있는 것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결국 만원 된 지하철을 보내고 새 열차가 오길 기다려 탔다.
두리번거리며 영등포구청역을 내려 재미공작소라는 곳을 찾아갔다. 늦을까 서둘렀는데 시간을 잘못 보았다. 미리 입장을 할 수 없어 양평동 뒷골목과 주변을 목적 없이 배회를 하였다.
건물과 오피스텔이 올라가고 예전 기억에 없던 아파트단지들이 보인다. 개발되기엔 너무 요원한 뒷골목들의 집들과 좁은 길을 휘휘 돌아 걸었다.
내가 간 곳은 양평동의 재미공작소라는 작은 문화공간이었다. 전면에 오디오들이 눈에 뜨인다 누구의 음악일지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누구의 음악인지 물어보려다 말았다.
차유오 시인의 책이 작년 말에 나왔다
'순수한 기쁨'
등단시인이어도 출간이라는 것은 쉬운 게 아닌지라 꽤 시간이 흘러 이제 첫 시집이다.
이곳은 핫한 장소가 아니라 그랬을까? 아니면 몇 번의 기념회가 지나고 나니 더 이상 지인들과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졌을지도 모르겠다.
6명의 청객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차 시인을 보고 조금 미안했다.
작은 바구니나 선물이라도 챙겨 갈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유명작가가 아닌 이제 등단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인이라는 것은 이렇게 초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졌다.
작년에 연희문학촌에서 친한 시인들 여럿이서 모여 낭독회를 할 때와 비교가 되었지만 차시인은 별내색이 없이 조근조근 이야길 풀어간다.
자신이 준비해 온 ppt를 보여준다. 12개의 시를 쓰게 한 소스리스트를 이야기한다.
왜 써야 되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왜 좋은지 나의 좋음과 관심은 무엇인지 반문하고 의심을 하게 된다. 또 시를 이끌어 내는 시상이 떠오르는 소스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서 나름 인정을 받은 등단한 작가들의 생각이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차유오 시인은 몇 년 전 온라인상으로 시작수업을 해서 지도를 받았던 인연이 있는 시인이다.
부녀간의 나이차도 그렇지만 세대와 성별이 다름으로 인한 공감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차 시인은 상냥하고 친절했고 영화와 책들 음악들을 많이 추천을 해주었다. 시인이 좋아하는 책과 음악과 영화는 무엇일까 관심을 가지게 하고 그 정서와 느낌을 배우고 싶었다.
현실에서 어떤 사물을 보고 느끼는 것들 이를 테면 비누를 보고 치약을 보고 다른 상황과 사물을 빗대어 비교하여 생각이 들기도 하고 대치를 해보는 생각, 차유오 시인의 시에서 비누는 없어지는 속성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마음일 수고 몸일 수도 그 무엇이든 없어지는 것에 대한 진실에 비밀을 끄집어낸다.
젊은 시인답게 게임을 할 때 떠오른 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책에 사인을 받고 짧은 인사와 덕담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책 제목처럼 나에게 시란 순수한 기쁨이 될 수 있을까?
길지 않은 한 시간의 콘서틀 끝내고 내가 느낀 시란 시인이란 뭔가 알듯 하다가 생각이 사라진다.
내가 보면 딸 같은 나이지만 시인은 적지 않은 나이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아이 같은 맑음이 있다. 가만히 보아왔던 몇몇의 시인들 남자든 여자든 연령을 떠나서 공통되는 인상은 아이 같음이 있었다
동심이라고 해야 할지 분심이라 해야 할지 시를 쓰는 사람들은 마음에 그런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시를 잘 못쓰나 싶은 게 나의 마음에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본 난 기본으로 심술이 덕지한데다 늙고 닳아빠진 마음이고 타인에 무관심하고 요만치 선하고 아끼는 마음이 없다.
시란 게 읽다 보면 이게 뭔 소리야 내지 그래서 뭘 어쩌란 거지 이런 마음이 들면 곤란하다. 작고 시시하고 하찮아 보여도 그런 이야기를 공감하고 느껴야 할 텐데 아이 같은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글이란 결국 사람이다 어쩌면 글보다 살면서 수양을 더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시는 쓰고 싶으니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오늘 들은 내용대로 소스는 관심이고 애정이 먼저일 것 같다.
시나 글에 관심이 생긴 후로 일상에서도 무엇인가 생각이 번득 나는 게 있다.
그것은 그냥 단순한 관념이나 느낌이고 순간적이고 찰나적이지만 머릿속에서 불쑥 떠오르는 상념들이긴 한데 그것들은 너무 단편적인 것이라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
이런 것들은 무당이 빙의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꽃이 우산이 의자가 어떨 때는 케이크가 사랑이든 죽음이든 그 무엇이 된다.
현실 속에서 그것은 그냥 꽃이고 우산이고 우리가 이름 붙인 그 사물 그대로이지만 가끔 씩 시인들은 초능력을 발휘해서 아니 신기가 있어서 일지 모르겠다. 그것들에 다른 것들이 빙의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미처 몰라보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영매가 되는 것이다.
죽어있는 것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사념과 살아있는 날것들이 날아와서 내 앞에 보이는 사물들에게 빙의가 된다.
빙의가 된 사물들은 주저리주저리 지나온 이야기들을 내게 하소연한다.
아팠었고 슬펐고 기뻤고 행복했던 어쩌면 그냥 무료하고 무위만이 인생의 진리라는 이야길 풀어놓기도 한다. 이야기가 풀어져 나오고 떠 돌다 내려앉은 그 사념과 느낌들은 해원을 하였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끝끝내 해원 하지 못하는 망령 같은 사념들은 계속 나의 주위를 배회하며 떠돈다.
그 사념들이 돌아가야 할 것은 나왔던 곳 나의 머릿속 생각이지만 영원히 돌아가지 않으리라 작정을 한듯하기도 하고 어쩌면 이야기는 너무 길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또 노래를 하는 것은 왜 아름다운지 가치가 있는지 우리의 사념들이 어떤 기분일지 모르지만 그것들을 끄집어내는 것은 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지 모르겠다.
단순 글로 공감을 하고 누군가와 소통을 한다는 것을 너머 아무도 보지 않아도 스스로도 써 놓고 다시 찾아보지 않는 글들을 쓰고 있고 쓰려고 하고 쓰였던 것의 비밀을 알고 싶다.
나는 글쓰기는 놀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형제도 없이 혼자서 장난감 바구니를 꺼내서 인형을 로봇완구를 양손에 든다.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며 상황극을 하고 사랑을 하고 전투를 벌인다.
조각조각난 블록들을 맞추어서 사람의 형체와 비슷한 무엇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내가 만들어 낸 것에 스스로 흠취되어 행복하다. 이런 것일지 모르겠다
글을 쓴다는 것이 혼자서 휘파람을 불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나는 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일 중에 무엇하나 혼자해야 될게 아닌 게 없는데 노는 것도 글을 쓴다는 것도 혼자서 재미를 찾아야겠지.
조금씩 지루해지고 나의 애장 완구는 점점 관심이 없어지고 또 다른 놀이를 찾아서 어쩌면 공을 차러 집 밖으로 나오라는 친구들이 생겨 다 버려두고 잊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