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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장애

(선택의 관한 글쓰기)

by 승환 Feb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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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응 둘 다요"

 "그래도 둘 중에 하나만 말해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음... 둘 다 다 좋아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커다란 시련과 문제를 직면하게 되는 순간이다.

 짜장이 좋은지 짬뽕이 좋은지와 더불어 인생의 난제이며 스스로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취향의 고백이며 커밍아웃의 순간들을 우리는 종종 맞이하게 된다.


 그런 순간마다 명확하게 자신의 욕망이나 욕구를 정확히 똑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건상 불가항력의 경우에도 이를테면 돈이 없거나 실력이 없거나 합리적이지 않아도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어려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거나 도움을 받는 경우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명확하게 자신의 욕구를 인지하고 원하는 사람은 성취와 성공의 동기가 될 수가 있다.


 그에 반면에 선택장애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하는 걱정이나 눈치라던지 자신의 속마음을 스스로 밝히길 두려워한다던지 아니면 정말 무엇을 선택해도 상관없는 두 가지 경우이다  선택지 여럿 중에 진짜로 전부 다 원하는 경우와 전부다 그냥 별 관심 내지 의미가 없다고 무관심한 경우이다.

 솔직히 나는 후자에 속한다. 모든 일의 선택에 있어서 몇몇 경우에는 전자의 태도를 견지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봐서는 나는 선택장애자이다.


 아이가 없는 딩크부부이기에 우리의 주말은 늘 외출을 하는 편이다.

각자 일을 하다 보면 평일에는 집안일을 나눠하고 어물어물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간다. 주중에는 딱히 무엇을 하기도 어려워 휴일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데이트를 나간다.

 전날 밤 어딜 갈까 이야길 하다 검색을 하고 인스타 같은 sns에 올라오는 광고성 글들을 보다가 갈무릴 해놓는다.

나가봐야 서울근교 가까운 곳이다 맘 잡고 멀리 가야 춘천정도 동해바다를 찍고 올 수도 있지만 가급적 당일치기 일정으로 무리하지 않는다.


 맛집 멋집 좋은 곳은 제다 서울에 있다고 하지만 그럴싸한 곳들은 매번 가기에 가격이 부담스럽다. 비싼 땅을 깔고 앉아 임대료를 녹아내야 하니 별로 합리적이지 않은 가격이라 느껴진다. 노포 같은 지역 맛집들은 사람들이 미어터지고 줄을 서고 예약을 하는 곳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면 식당이나 카페들이 장소가 큼직큼직해지고 가격이 뚝 떨어진다.

파주 일산 김포 양주 양평 밑으로는 용인의 고기리정도까지가 무난하다.


 매주 다니다 보면 다 가본 곳 같지만 새로운 곳들이 생겨나고 안 가본 곳을 골라 링크를 보낸다.

 치밀하고 꼼꼼함과 거리가 있는 나는 그냥 찾아간다. 그곳이 일요일이 휴무인지 리뷰가 어떤지 확인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길은 막히고 시간이 지체되자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동행길에 늘 아내는 매번 나의 허점을 찾아내었고 지금도 또 불만스러운 게 있는지 잔소리가 시작된다.

 " 카카오내비 말고 티맵으로 가야 정확하다고 했잖아 왜 또 카카오로 왔어?"

" 뭐 다 거기서 거기지 그냥 익숙해서 검색하다 넘어왔더니 또 그렇게 됐네 아예 모르는 길도 아니고 다 막힐 거야 오늘은"

" 그래 운전하는 사람 맘이지, 그런데 식당  휴무일이나 브레이크 타임 확인 했지? 그런데 가격이 좀 세네 이걸 주고 먹을만한 거야 지금 리뷰 보니 좀 그렇네 "

 아내의 말에 나는 운전을 하다 말고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맞은편 멀리 떙떙 식당이라고 큰 간판이 보인다. 나는 넌지시 그럼 저기 건너편에 보이는 식당으로 갈까? 당신 우거지코다리 좋아하지? 이거 먹을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호의로 운을 띄우지만 이내 아내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매사가 왜 그런 식이야 처음에 계획이 세워졌으면 그대로 해야지 이렇게 중간에 바뀌면 난 용납이 안돼 마음이 불편하다고!"

 " 그래서 어제 링크 쭉 보내줬잖아 어디든 다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게 성의 없이 쭉 보내면 끝이야 본인이 정하고 준빌 해야지 내가 매번 다 결정해야 되는 거야?"

"나 결정장애인 거 몰라?"

" 매사가 다 그런 식이지 좋고 싫은 거도 없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 무엇인가를 다 결정한다고 된다는 법 있어? 세상일이 다 그런 거지 그냥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모험같이 사는 게 정답일 수도 있지."

 "아니 나는 무엇인가 내가 하고자 하는 거 정확한 거 그런 게 좋아. 당신은 절대적인 것 간절한 것이 없는 사람이야 결혼도 내가 아니었어도 그냥 적당한 타이밍에 내가 있었던 거지. 결혼이나 사랑이란 걸 그냥 대수롭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 아니 밥 먹으러 가는 거 이야기하다가 왜 거기까지 가는 거니?"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당신은 솔직하지 못하고 늘 감정을 감추는 게 문제라고"

"뭘 감춘긴 감춰, 휴일날 이런 걸로 싸울 일이야? 당신이 원하는 대로 따르고 맞추는 게 문제라는 거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차는 속도가 줄어있었다.

 뒤차의 빵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비상깜빡이를 켜고 액셀을 밟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아내와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다툼을 휴전하고 우여곡절 끝에 처음에 가려던 식당에 도착했다.

 민물 새우가 들어간 버섯매운탕이 끓고 있고 몇 가지 없는 찬들도 담백하게 먹을 만하다. 모처럼 다이어트 중이라는 아내도 밥공기를 비워낸다.

 식사를 끝내고 꽁해있던 아내는 마음이 좀 노곤해진 듯했다.

 "아까 내가 좀 심한 거 같아 미안해"

 밥 먹는 내내 나도 내 마음이 뭐가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하던 차에 아내의 사과에 마음이 풀어졌다.

"아냐 내가 좀 문제가 있긴 있지 아마 그냥 오늘 나오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았는데 내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게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아"

"왜 오늘 좀 피곤했어?"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여기가 별로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당신이 좋아한다고 하니 말을 못 한 거 같아. 막상 나오니 나쁘지 않네 음시도 먹을만하고"

" 별로 맛있지 않았어? 먹을만하다는 표현대신 맛있다라고 말을 좀 하면 안 돼? 뭐든 부정적 내지 감정표현이 인색해 당신은"

 "어 맛있게 먹었어 ㅎㅎ 우리 집안내력이 말투가 좀 그런 거 알자나 칭찬인 거 맞아"

 "덕분에 나도 점심 맛있게 먹었어. 고마워. 당신 좋아하는 커피 마시러 갈까? 어제 보내준 곳 중에 자기가 가고 싶은데 어디야 그리로 가자."

 십여 년 전 일찍 바리스타 학원을 이수하고도 정작 카페인에 민감해 잘 마시지 못하는 아내의 고마운 제안에 얼른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어제 보냈던 근처 카페링크를 보자 나는 머리가 지근거리기 시작되었다.

 "여기랑 여기 두 군데 다 가볼까? 가는 길에 코스도 딱인데. "

"인간아, 어이구 뭔 카페를 투어 하니? 하나만 골라, 자기가 좋은 건 욕심 사납게 다 하려고 하고 결혼할 때 나는 어떻게 선택을 한 건지 모르겠네 양다리 세 다리 한 거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내가 결정장애가 있어도 정말 좋아하고 중요한 건 딱 부러지게 하나만 잘 고른다고 당신 말고는 눈에 들어오는 여자가 없었어 정말."

 "그래 그 거짓말 진짜라 믿어야지. 일어나자"


 솔직히 말하면 결혼 전 당시 내 주변에 남자 밖에 없었다. 주로 술꾼들만 득실 되었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남자라 여자가 많을 것 같지만 실속 없기는 지금이나 매한가지로 어영부영 살았다.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비밀은 감추어 두어야 한다.

 어쩌면 아내가 나를 선택해 주어서 결혼을 하게 되었을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결정장애의 남자에게 한 가지 선택지로 다가온 여자는 운명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인생을 살면서 내가 무조건 다 결정하고 선택하는 길 말고도 선택당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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