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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May 16. 2024

봄바람 따라 피는 꽃

꽃놀이, 부부의 일상

 

봄이 가고 있다. 올해부터 남편과 나는 어느 곳에도 메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좋다. 오늘 하루도 봄바람 따라 피는 꽃을 찾아 유유자적 하루를 보낸다. 해야 할 일도 해내야 할 일도 없는 나이, 우리는 가장 자유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감사하다.


내일 일도 모르는 체 순간순간 찰나를 살고 있는 날들, 남편이 외롭지 않게 곁에서 함께 한다. 내가 지금 가장 소중한 걸 지키며 살아가는 자세, 그게 내가 할 일이다. 나는 내 나이에 실망하지 않는다. 지금 인생의 어둠과 빛이 녹아들어 내 나이의 빛깔로 떠오르는 내 나이가 좋다. 


나이 듦이 나쁘지만은 않다. 세상 모든 일에 자유로운 가벼움이 참으로 홀가분하다. 근래에 와서 남편은 봄을 보내기 아쉬운 듯 가까운 여행지를 찾는다. 특히 꽃이 있는 축제라면 더 말할 것이 하루를 보내기 좋은 나들이 장소다. 세상에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남편은 요즈음  꽃이 있는 곳을 좋아한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여자처럼 중성이 된다고 했는데 정말일까.


봄날의 향기를  마음 안에 담아 두려는 건지 아님 걸을 수 있을 때 추억을 남기려는 건지 그의 속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나이 들어오는 지난 삶의 덧없음을  곱씹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밀려오는 세월의 무상도 나이와 함께 온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 그래왔듯 남편도 온 마음으로 가족들은 지켜내며 살아왔다. 어느덧 나이 들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멀지 않음이 삶의 회한이 되어 생각이 많아질 것이다. 살아왔던 구비 구비사연은 본인만 알 수 있는 일이다. 생이란 그렇게 살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 진리 앞에 누가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평소에도 말이 없는 남편은 혼자서 사색하기를 좋아한다.



귀천(歸天) 

                                          천상병(千祥炳)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그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인생이란 소풍이라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어쩌면 세상이란 곳에  소풍을 왔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아닐까.


천상변 시인 귀천 시에서 말하듯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다음 세상에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을 하려는 듯, 남편은 봄부터 여기저기 구경 다니는 걸 즐긴다. 다행이다. 움직이지 않으려 하면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이다. 노인의 몸은 하루아침에 변화가 올 수도 있어 늘 신경을 써야 한다.


단톡방에 양귀비 축제 정보를 알게 되었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정확히 알아보라 하신다. 서양 양귀비 축제는 군산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하는 행사다.


"그럼 가봐야지. " 곁에 사는 동생을  불러 레비에 주소를 찍고  셋이서 동생차로 출발했다. 군산 지역은 남편이 지리를 잘 알고 있어 쉽게 찾아가리라 생각했는데 내비를 켜놓고 가면서도 돌돌아 겨우 겨우 도착을 했다. 길 찾다가 벌써 기운이 다 소진될 정도로 어렵게 찾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논 가운데에 지어 놓은 카페였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카페라니, 나는 깜짝 놀라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알고 차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 일 것이다. 우리가 살았던 세상과는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세상은 변하고 세월을 간다.


                                                 카페 주변 예쁜 정원들

                         그곳은  널따란 논들이 있는 시골 들이었다.


                                                       서양 양귀비 밭에서 나는 남편과 꽃이 된다

                                                                   서양 양귀비 꽃

                                            서양 양귀꽃과 행사장


이 많은 논에 양귀비 씨를 심고 가꾸다니 놀랍다. 힘들지 않냐고 카페 사장님에게 물으니 그냥 즐겁다는 말을 한다. 주인은 논농사를 많이 짓는 동네 분이다.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할까. 좋으면 힘들 줄도 모른다. 카페 안에는 농사지은 농산물도 팔고 있다. 어느 날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오면 하루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놀이시절들이 있다. 


행사장은 흥겨운 노래와 먹거리들이 사람을 유혹한다. 우리는 몇 가지 음식과 잔치에 빠지지 않은 파전도 시켜  먹으며 흥겨운 노래 부르는 사람들 분위기에 젖는다. 모두가 즐거워한다. 양귀비 밭에서 사진 찍기 놀이도 하고 한 동안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좋은 사람과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일이라 말한다. 오늘도 사랑은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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