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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수확의 계절, 시린 마음에 온기를 더하는 나눔

by 이숙자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가을인가, 아니면 겨울이 오는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날씨가 이상하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계절은 각각 특색이 있고 아름다워 어느 계절이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사계절 중에도 유난히 가을을 좋아한다. 온 세상이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다운 풍경도 좋지만 무엇보다는 가을이 오면 결실을 마주하는 풍성한 먹거리들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조카가 수확했다고 가져다준 햅쌀과 감 선물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 말한다. 들판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다. 가을 풍경은 바라만 보아도 허기진 마음이 한가득 포만감을 느낀다. 논에 벼와 들에 나는 곡식들은 우리 생명을 이어 주는 귀중한 먹거리들이다. 내가 먹는 농산물이 아닐지라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풍요를 느낀다.


엊그제는 큰집 조카가 벼를 베고 쌀을 수확했다고 햅쌀 20kg 쌀 포대를 어깨에 메고 집에 주고 갔다. 쌀은 우리가 밥을 먹고사는 한 우리의 생명과 연결된다. 배고픈 시절을 살아온 우리 세대는 쌀만 보아도 마음이 가득해지고 배가 부르다. 어떤 다른 선물보다 반갑고 고맙다. 그 마음이 겨울날 불을 지핀 아랫목 방바닥처럼 따뜻하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운 계절


가을 과일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감이다. 시골 큰집에는 감나무와 키위 나무가 있다. 시숙님께서 살아 계실 때, 감과 키위를 수확하면 언제나 자녀들과 형제인 우리 몫까지 챙겨 주셨다. 매번 기쁜 마음으로 받아왔다. 시숙님 부부가 세상 뜨시고 이젠 작은 나눔도 멈추나 했었는데.


그렇지만 조카도 아버지가 해 왔던 대로 똑같이 나눔을 한다. 계절에 나오는 먹거리를 나눔은 돈으로 사 먹는 것과는 다른 따뜻함이 있어 마음이 훈훈하고 가족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있어 든든하다. 나눔이란 사람이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연결 고리다. 아니 사랑의 배려일 수 있다.


나는 쌀과 감 선물을 받고 조카의 따뜻한 마음이 울컥해 온다. 나이 듦 때문인지 누군가의 작은 배려,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이처럼 눈시울이 붉어지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작은 일에도 감동을 하고 애잔해 온다.


요즈음 가을 수확의 계절은 마주 하면서 세상 모든 사물이, 내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풍경마저 감사하고 고맙다. 특히 날씨가 추워지면서 사람의 온기가 그립다. 아주 큰 것도 아니지만 아주 작은 것도 아닌 가을에만 수확하는 먹거리가 시린 마음에 온기를 더해준다. 가을은 모든 것이 풍성한 계절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결실들이 마음도 풍요롭게 한다.


가을의 결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슬땀을 흘렸을까, 그 노고에 감사한다. 물론 돈으로 그 값을 치르고 사 먹지만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사람들의 수고한 땀, 그리고 신만이 관장할 수 있는 자연, 햇볕과 바람과 비, 이 모든 것들이다. 어떠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사함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서 나를 둘러싼 우주 자연의 섭리에 감사한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거듭 될수록 계절을 마주하는 마음의 자세도 다르다. 내 가슴속 사고의 깊이를 더해준다.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매일 살아야 할지, 누군가에게 나는 사무치도록 그리운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지, 세상 일이란 참으로 깊고도 멀고도 아득하고, 서럽도록 아름답다.


이제 결실을 마무리하는 가을이 왔으니 우리는 돌아오는 계절, 겨울과 봄과 여름을 기다리며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가을이란 고독하고 외로운 계절일 수 있다. 그러나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일 수 있고 고독은 때론 사람을 맑게 하는 묘미가 있다.


나는 지금, 따뜻한 차 한 잔 우려 마시며 삶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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