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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사랑이다

서울 병원 다녀온 날

by 이숙자

아파트 주변 나무들은 날마다 나뭇잎이 떨어져 옷을 벗고 나목으로 변해 가고 있다. 나무 아래 떨어진 낙엽들을 보노라면 자꾸 마음이 시려온다. 나무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연두색 옷을 입기 시작해서 여름에는 초록으로 가을에는 빨강과 노랑으로 화려한 생을 살다가 겨울을 나기 위해 옷을 벗기 시작한다. 나무아래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은 보노라면 마음조차 휑해진다.



버리고 버리는 일, 나무와 사람의 생과 무엇이 다르랴.


낙엽비가 내리는 찬 바람이 부는 날은 유난히 쓸쓸한 느낌이다. 나는 일주일 간격으로 서울을 올라가고 있다. 지난주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한 결과를 담당의사 선생님에게 설명 듣기 위해서다. 선생님은 몇 마디 하는 짧은 시간이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두려움 반 기대반의 마음으로 병원문을 노크한다.


하필이면 이때 남편은 감기가 드셔 어제 밤새 기침을 심하게 하신다. 나는 내 몸을 살피기 전에 남편을 챙겨야 한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곁에서 돌보는 사람이 있어야 함을 요즈음 절실히 느끼고 있다. 서울 올라가기 전 남편 병원 모시고 다녀오고 하루 자고 오지만 밥 준비해 놓아야 하고 바쁜 딸 집을 빈손으로 갈 수 없어 파김치와 여수 돌산 갓김치 담가 보자기에 꽁꽁 묶어 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선다.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다. 어쩌랴 자식 먹이려는 엄마 마음인 것을, 백팩에는 책 다섯 권 넣었더니 제법 무겁다. 나이 들어가면서 무거운 것은 잘 못 드는데 자식 먹이려는 일은 무슨 힘이 나는지 모르겠다. 등에 백팩 메고 보따리를 들고 콜을 부른다. 지난 8월 남편차를 폐차 후 택시가 우리 차가 되었다. 콜만 하면 3분 안에 원하는 장소에 와 주니 자가용이 없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남편이 운전을 안 하시니 마음은 오히려 편하다.


차를 반납하고 처음에는 어떻게 살까, 남편도 나도 많이 불안하고 심난했었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도록 되어 있나 보다. 남편이 차 운전을 멈춘 지 몇 달 된 지금, 그렁저렁 적응하는 중이다. 이번은 용산 둘째 딸 집이 아닌 셰째딸이 살고 있는 분당 수지로 간다. 누구 한 사람이 바쁘면 저희들끼리 알아서 일정을 조율하는 것 같다. 나는 군 소리 없이 딸들 말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키울 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딸이 여럿이라서 다행이다.


군산에서 성남 가는 버스를 타고 간다.


어쩌면 군산에서 성남에 사는 사람과 연관이 없는지, 그 커다란 버스에 달랑 4 사람만 타고 성남까지 직통버스다. 승객이 적은 게 내 잘못이 아니련만 내가 괜히 기사님에게 미안하다. 아마 적자는 나라에서 보전해 주겠지, 그렇지 않고는 그 적자를 버스회사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다 한번 타는 성남행 버스 노선이 행여 없어질까 살짝 염려된다.


성남에 도착하기 전부터 셋째 사위는 수시로 연락이 온다. 조심해서 잘 오시라는 자상한 전화다. 매년 나이 들어가는 장모님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은 어디든 혼자 갈 수 있는 씩씩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군산에서 3시 차로 늦게야 출발해서 성남에 도착하니 저녁 어둠이 내리는 5시 40분이 되었다.


깜깜한 밤이 오면 낯선 곳은 두려움과 쓸쓸함이 마음을 훑고 지나 가지만 딸과 사위가 기다려 주는 이 시간, 그 두려움은 싹 사라지고 가슴 가득 훈훈한 기분이다. 언제 만나도 한결같은 사람들, 고맙고 감사하다. 저녁도 미리 맛집을 찾아 놓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은 즐거움도 행복도 먼 곳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여뉘때 바빠서 잘 보지 못한 손자들도 만나고 아주 마음이 충만하다.


다음 날 아침 서둘러 딸은 음식 준비를 해 두고 나를 데리고 고덕동까지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가면서야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딸이 이 토록 바쁘게 살고 있는지 몰랐다. 딸의 말을 듣고야 안쓰러워 울컥하는 마음에 두 사람은 눈가가 촉촉해진다. 나이 50 대란, 아이들 교육시키고 가장 힘든 시기, 시간이 가면 어려운 시기도 다 지나갈 것이다라고 위로를 건넨다.


의사 선생님 진료는 짧게 끝났다. 지난번 검사한 사진들을 보시며 모든 것이 정상이며 아무 문제없다는 말씀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저 감사하다. 6개월에 한 번씩 내원하라는 말씀을 듣고 우리는 점심식사 후 고속 터미널로 행했다. 언니들이 엄마 케어하는 게 미안했던지 막내딸과 사위에게도 딸에게 전화가 계속 오고 있다.


바쁜 딸을 보내고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걸어 들어가는데 막내 사위에게 전화가 온다.


"어머니, 어디세요?"

"나, 터미널로 들어가는 중."

무슨 비밀 요원들 접선하는 것 같다.

막내 사위가 터미널 안에서 나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드디어 우리는 만났다. 군산 출발 출구 앞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바쁜 막내 사위가 나를 기다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려." "그러니까요, "

"왜 저를 장사도 못하게 시간을 안 지키세요?."


아마 셋째 딸과 약속을 했었나 보다. 병원에서 터미널로 오는데 차가 밀렸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늦게야 터미널에 도착한 것이다. 점심 같이 먹으려고 3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고 말한다. 우리 밥 먹고 간다고 말을 했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반갑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나 하나 케어 하려고 자식들이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쏟는다.

막내 사위가 선물이라고 달아준 조랑말

그러더니 "어머니, 이제 올해는 못 만나겠지요?" 하면서 아주 작은 액세서리 조그만 조랑 말을 네 백팩에다 달아 준다. 그러면서 차 한잔 하시자고 하고 나는 홍차를 막내 사위는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고 버스 출발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올라가면서 가라고 손짓을 해도 버스 떠나기 전에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다.


아, 사람을 무엇으로 사는가? 괜히 눈물이 나오려 한다. 가족은 사랑이다. 아직은 젊어 힘들게 살지만 그게 정상이다. 사람이 너무 풍족하게 살면 인생의 깊이를 모른다. 힘듦을 헤치고 걸어가는 삶이 사람을 단단하게 해 준다. 우리 모두도 그렇게 살았다. 고통 속에 사는 게 인생의 진미가 있다. 차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어제오늘 있었던 가족들 사랑에 마음이 뜨거워진다. 모두에게 감사, 감사할 뿐이다. 내 다짐은 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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