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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들낳았어?"라고묻자
친정엄마가해준 말

by 이숙자

엄마 없는 첫 어버이날에 부른 사모곡...'친정 엄마'의 존재에 대하여


CONIeuLuSWG


어제 (8일)는 어버이날이었다. 어버이날이 1973년도부터 재정되고 시행했다니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어버이날만 돌아오면 큰 행사처럼 부모님을 챙기고 꽃도 달아 드렸다. 가정마다 맞이하는 잔칫날처럼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중요한 날이다. 부모들을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용돈을 받는 기쁨도 있지만 자녀들을 만나는 반가운 날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자녀들은 사느라 바쁘지만, 어버이 날 만은 거의 빠지지 않고 부모를 챙긴다.


나는 어머니이기도 하면서 딸이다. 지난해까지 말이다. 올해 어버이날에는 '어머니'는 불러도 대답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진즉에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께서 지난해 12월 세상을 달리하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내 편이 없어지고 난 뒤에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하면 아련한 그리움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가 친정 엄마가 되고 서야 엄마의 마음을 뒤늦게야 이해할 수 있었다. 친정엄마란 빚진 사람처럼 딸의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고, 아픔도 내 것인 양 다 감싸 안는다. 모든 일이 내 삶인 줄 알고 무심히 살아 낸다. 나도 딸들에게 그랬다. 모든 걸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친청 엄마는,


출산 후 엄마에게 물었다..."나 정말 아들 낳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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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늦은 나이 막내딸을 가졌다. 딸만 셋 낳고 말리란 결심이 무너지도록 시어머니는 내게 아들 낳기를 종용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애야 요즘은 다른 곳에서라도 아들을 낳아 온다 더라"라는 말은 정말 힘들었다. 그 시절은 어른한테 반발하거나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살던 때다. 말도 못 한 채 가슴앓이만 했었다.


힘든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 날, 나는 마음의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 의논을 했다.


" 여보, 어머님이 아들 낳아야 한다고 저렇게 조르시니 어떻게 해...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 더 낳아야 하지 않을까?" 남편은 한 동안 고민을 하는 듯했다. 몇 날 며칠을 지나고서야 남편은 결심을 한 듯 나에게 말했다.

" 어머니 말씀대로 당신이 좀 고생해야겠네"라고 말했다. 남편은 유난히도 부모님 말씀을 거역 못하는 효자였다. 그때 내 나인 38세였다.


늦은 나이에 임신하게 되고 유산 위험이 있어 거의 누워 지내야만 했다. 그 시간 동안 집안 살림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궂은일은 친정엄마 몫이 됐다. 그때는 친정아버지도 살아계셨는데, 혼자서 식사를 해결하시도록 해놓고, 딸 집인 우리 집에서 살림을 도 맡아해 주시고 몇 개월 애쓰셨다. 난 엄마의 그 헌신이 당연한 줄 알았다. 왜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참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열 달 고생 끝에 나는 또 딸을 낳았다. 그것도 죽을 것 같이 힘든 제왕절개를 하고서, 제왕절개 수술이 끝난 뒤 회복실에서 마취가 깨고 의식이 돌아올 때 맨 처음 한 말은 "애기, 딸이야? 아들이야?" 그때 누군가 "아들"이라고 짧게 대답해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의사 선생님은 "산모 혈압이 너무 떨어져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으면 안 됩니다. 안정을 해야 해요"라고 했단다. 그래서 남편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우리 막내딸은 위험한 순간을 넘기고 세상에 나왔다. 의식을 되찾고 병실에 올라와 누워있을 때 친정엄마가 보였다. "엄마, 나 정말 아들 낳았어?"라고 물으니 친정엄마는 "아들이면 뭐하고, 딸이면 뭐 하냐, 너 죽을 뻔했는데."라고 답하셨다. 그 말을 듣고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완벽한 내 편인 친정엄마는 딸의 안위가 제일 걱정이었다. 반면, 시어머니는 출산한 지 3일 만에 내가 누워있는 병실에 오시어, "어서 애기 우유 먹여 젖 떼고 바로 애 하나 더 낳아라"라고 말하셨다. 그 말이 그렇게 야속하고 섭섭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아들에게 아들이 없는 것만 걱정을 하셨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어버이 날이 돌아오니 새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죄송함이 눈물이 되어 흐른다. 왜 살아 계실 때는 몰랐을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진다. "엄마, 정말 사랑해요"... 하지만,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 후회해도 소용없는 다 지나간 시간들... 이제라도 바보처럼 살지 말자고 다짐을 해 본다.


지금 내가 친정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내 딸들도 엄마가 저희들 위해 수고가 당연하게 생각할까, 차마 물어보진 못 하겠다. 때로는 목구멍까지 스멀스멀 이 말이 올라온다.'친정엄마도 당연한 건 없어.' 아마도 딸들은 나중에 알게 될 듯하다. 무조건 적인 엄마의 사랑을. 아무리 섭섭해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응원해 줬던 엄마의 마음을.


엄마가 세상에 안 계시고 찾아온 첫 번째 날 어버이날. 엄마가 사무치게 그립다. 엄마라는 존재가, 단 한 번도 가슴 뜨겁게 "고맙다"라고, "감사하다"라고, "고생하셨다"라고 진심을 담아 말한 적이 있었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본다. 뒤늦게 가슴 저린 후회를 하면서 대답 없는 엄마를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 엄마, 세상에 친정 엄마라고 당연한 건 없었는데... 내가 엄마한테 빚진 사람이 됐네. 고마웠고 감사했어요. 하늘에 계신 우리 엄마, 정말 사랑해요."


하늘에서 엄마가 미소 지으며 내려다볼 것만 같다. "그래, 잘 살아라 우리 딸"


" 엄마 큰 딸이 엄마한테 사랑 고백했어요, 다음 세상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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