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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낮의새 Oct 02. 2021

디테일이 말해주는 것

손수건과 만년필과 화분 

상대방의 작은 행동이 매우 인상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나에게 그것들은 무엇이냐면...


(1) 손수건으로 손을 닦는 것


손을 씻으면 대충 털어서 말리거나, 휴지로 닦거나, 아니면 옷에다 쓱쓱 닦는 나로서는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는 클래식하면서도 친환경적인, 그 어떤 아우라가 느껴진다.


내 주변에서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실제 그런 성품이기도 하다. 약간 고집스럽고, 원칙의 중요함을 알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때는 자신의 불편함을 다소 감수하는 그런 성격.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발을 떼기 위해 손수건을 들고 다니기로 했다. 하지만 이거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옷에 손수건을 넣을 만큼 여유있는 주머니가 없다. 주머니가 불룩해지는 것을 감수하겠다고 각오했지만, 아침마다 손수건 챙기는 것을 까먹는다.


일단 급한대로 노조에서 창립기념일에 준 기념품 수건을 사무실 책상 옆에 걸어놓고 써야겠다.


(2) 사무실 책상에 화분을 놓고 키우는 것


드라마에 클리셰처럼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사회의 거악들은 왜 모두 사무실에서 자신이 키우는 난의 잎사귀를 닦고 있는가. 아마 실제로 그런 사람들의 사무실 화분을 가꾸는 일은 비서나 아르바이트생의 몫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사무실 책상에 화분을 놓고 키우는 사람들에게서 늘 작은 감동을 받는다. 사무실이란 삭막하고 정신없는 공간에서조차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생명을 돌볼 줄 아는 여유는, 내 한 몸 챙기느라 허덕대는 나에게 꽤 인상적이다. (물론 책임질 자신도 없으면서 덥석 화분을 들여놨다가 말려 죽이는 사람들도 꽤 많이 봤지만.)


그들은 주기적으로 화분을 흠뻑 적셔주기 위해 화장실 개수구까지 들고 나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사무실을 오랫동안 비워야 할 때는 대신 물 주는 것을 챙겨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나는 사무실에서 화분을 키울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일까. 근데 일단 화분을 키우려면 책상부터 치워야 한다. 하도 정신없이 어질러져서 화분 놓을 자리도 없다;;


(3) 좋은 펜을 쓰는 것



나도 좋은 펜이 없는 건 아니다. 선물로 받은 좋은 펜 몇자루가 집에 있다.


그러나 펜을 워낙 잘 잃어버려서 비싼 펜은 내 방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놓기만 하고 쓰지를 않다보니 오히려 없느니만 못한 무용지물이 됐다. 그냥 몇백원짜리 모나미펜을 쓰거나 아니면 그때그때 어디서 주워온 볼펜들을 의식하지 않고 쓴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에게 서류를 가져갔더니 "잠시만"이라고 하면서 일부러 좋은 펜(딱 봐도 고급스러워보이는 만년필인 경우가 많다)을 꺼내 사인을 하는 걸 보면, 디테일에서도 격식을 놓치지 않는 자기관리와 철두철미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아 잠시 숙연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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