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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벚신발 Jul 22. 2019

<투명우산>

습작- 단편소설

재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병명은 모른다. 그냥 암의 한 종류였고, 이미 치료시기가 늦었다는 점 정도만 희미하게 주워 들었을 뿐이다. 그마저도 담당의로부터 '마음의 준비'와 같은 절망적인 단어들을 들은 후에는 알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병명이 무엇인지,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엄마가 떠나간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으므로.


그때부터 아빠는 안방에서 일절 나오지 않으셨다. 멀쩡한 아빠의 모습을 보는 일은 불가능했다. 현관에 쌓여가는 소주병을 보면서, 아직 아빠가 우리를 버리고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할 뿐이었다. 때문에 고작해야 나와한 살 터울의 누나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나와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여동생의 부모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누나는 애써 입학한 대학교를 일 년도 안돼서 그만두었다. 당시 나는 그런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빛 한 줄기 없는 축축한 반지하 방구석에선, 이 깜깜하고 기나긴 터널 속에선, 누군가의 희생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미리 깨달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 누나는 강남역 인근의 모 화장품 샵에 출퇴근을 시작했다. 폼나는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던 누나는 결국 파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누나 괜찮아?'와 같은 애타는 소리를 종종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누나는 비슷하게나마 도달했으니 만족한다고 애써 밝은 척 미소 지었다. 자신의 얼굴에 쓸쓸함이 가득 묻어있는 것을 모르는 듯이.


누나의 희생 덕에 우리 집 분위기는 어느 정도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우리는 아침에 누나가 차린 아침을 먹고, 일곱 시면 셋이 함께 집을 나섰다. 그럴 때마다 누나는 "우산 좀 챙겨!!", "그렇게 입으면 저녁에 춥다" 같은 잔소리를 일삼곤 했다. 나를 아직 걱정해주는 존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한없이 감사하면서도 너무 한순간에 어른이 돼버린 누나를 보면서 씁쓸한 느낌도 들긴 했다. 


그 날은 내가 수능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따금 돌풍이 불어 공기덩어리가 쿵하고 창문에 부딪치는 바람에 잠들기가 힘겨웠던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나와 내 동생은 누나의 잔소리를 시작으로 등굣길을 나섰다.


"이것들아, 오늘 태풍 온다고 했잖아. 우산 좀 챙겨!"


뭇 저렴한 우산들이 그렇듯이, 우산살이 허약한 탓에 꺾이거나 부러지는 경우, 구멍이 생기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특히 물건을 거침없이 다루는 나에겐 더더욱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날도 최근에 우산을 하나 해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누나가 어젯밤에 퇴근 길에 고급 장대 우산을 사온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리 셋은 똑같이 검은색 장우산을 손에 쥐고 집을 나섰다.


누구든지 오늘은 비가 올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오늘이 누나를 보는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퇴근 시간 강남역 사거리에서 폭풍우를 피해 깊게 눌러쓴 우산 탓에 다가오는 화물차를 못 볼 줄은 더더욱 몰랐다. 누나는 그렇게 엄마 곁으로 떠났다. 이번에도 사건의 경위에는 알고 싶지 않았다. 화물차 운전자가 졸음운전인지, 음주운전인지를 했다는 말을 직접 전해 들었지만 알아낸다고 해서 이미 세상에서 지워진 누나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누나도 제잘 못 하나 없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둥의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불쌍한 인생이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누나의 일생을 결론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나의 잘못이라 하면은 차를 못 본 것도 잘못이지 않을까. 내지는 밝은 색 우산을 쓰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다.

출처: https://www.rawpix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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