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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Jun 24. 2021

5. 직업과 연봉이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는다

20년 동안 우리나라, 러시아, 스웨덴에서 일하며 깨달은 것들

   나 역시 조직에 속해 있는 한 언제 어떻게 대체될지 모르는 노동자이다. 나의 소명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누구냐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직업 자체는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일지언정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지는 못하게 할 것이다.

    나의 학창 시절에 각종 시위에 앞장서고 철의 노동자 노래를 부르며 세미나를 하던 친구들은 취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서 어느덧 기득권이 되었다.

    살다 보니 나는 완전 거꾸로 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 나는 전태일 평전은 읽었어도 그가  시대에 존재한 인물이었을까 의심했었다.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책에서 접한 그의 삶과 당시 사회상은 거짓말같이 끔찍했다.

     직장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입사 시험 실력이 비슷했다는 것을 빼고는 서로 공통점이 없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난  같다. 그때 나보다 나이가 네 살 은, 내가  좋아하던  동기와 어느 여름날 함께 삼성역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우리 집까지 걸어서 바래다주면서 말을 꺼냈다. "XX, 우리나라에 알고 보면 진짜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 많다..." 그전까지 현실이 실제로 이렇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큰 어려움 없이 자란 친구들과 함께 그나마 세상은 상식이 통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대학의 울타리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웨덴에서 근무하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학창 시절에는 시위대 가담도, 세미나도 참여해 본 적 없었던 내가 지금은 해외에서 근무하면서 노동조합원이 된 지 10년도 넘었다. 부모나 학교란 울타리를 벗어나 어른이 된 노동자가 조합에 가입하지 않는 건 방화복도 안 입고 혼자 불에 뛰어드는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조합원이 된 것 자체로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는다. 스웨덴이 아무리 오랜 대화와 민주주의 오랜 전통이 있었다고 해도 결국 서로를 견제하는 법제와 노동자가 낸 세금을 노동자 복지, 보호에 재투자하기에 노사가 공존, 협력할 수 있다. 관리자도 평직원도 노동조합에 많이 가입한다.
    세금과 별도로 노동조합에 매월 한화로 2~5만 원 정도되는 회비를 내면 최근 노동 시장 동향, 건강 및 스트레스 관리, 연봉 협상 방법 등뿐만 아니라 실제로 직장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 등이 담긴 회원지도 받아 볼 수 있다. 연차가 낮아 연봉이 상대적으로 낮으면 조합비가 더 적어 부담이 덜하다. 직무나 산업군 관련 소식과 지식 세미나에도 시간이 되면 참석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애매한 문제에 대해 노동법률가의 상담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구조상 누구나 자기 노력과 무관하게 희생당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호받기위한 작은 장치 중 하나이다.

노동조합도 참 다양한 것이 엔지니어 조합, 경제인 조합, 법률인 조합, 교사 조합, 은행원 조합 등 직군별 다양한 조합이 있다.

유럽에서 일하게 되면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를 추천한다. 조합에 가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이것은 일하는 평범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조금이나마 보호받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도 언젠가 그런 날이 꼭 올 것이다.    

 경영학 교과서와 학술 논문, 언론 밖에서 목격한 북구에 대한 불편한 진실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겉으로는 좋아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는 이와 정반대의 역사가 있으며 이를 바꾸려 노력한 사람들의 희생이 있다.

    노동법이 극도로 발달한 나라일수록 그 역사에는 노동자의 권리가 처참하게 짓밟혔던 순간들이 있다.

    여성의 권리가 극도로 발달한 나라. 그 이면에는 인구가 적어 노동 가능 인구가 적기에 충분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여성까지 일터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이면이 있었다. "남편으로부터 아내를 해방시키자"는 외침에는 물론 남. 녀 평등 정신도 있다. 그 이면에는 생산활동 가능인구와 구매력이 크지 않은 나라에서 여성까지 노동 현장에 동원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20세기 초 경기가 침체되면서 스웨덴 기업들은 경영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섬유업, 벌목업, 제지업계 노동자들이 일하러 오지 못하게 회사와 공장을 폐쇄했다. 성난 노동자들은 1909년에 대대적인 파업을 단행했다. 8만 명의 노동자가 파업을 선언하고 시위를 했는데 무력으로 시위 행렬을 진압하다가 시위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게다가 고용주들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하게 만들려고 직원들에게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조합 탈퇴를 강요해서 약 2만 명의 노동자가 울며 겨자 먹기로 조합에서 탈퇴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노동조합의 지도층은 힘을 잃게 되고, 다른 노동조합이 생겼는데 변질된 새 조합 지도층은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았으며, 울분에 찬 노동자들이 파업보다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시위를 파업에 멈추게 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후 20년이나 지나서, 즉 한 세대가 지나고 나서야 체결된 노. 사 협약이 1938년 체결된 살츠회바덴 조약이다. 오늘날 스웨덴에서 시행되는 노사 협약의 토대가 이때 마련됐다. 스웨덴이 법을 통해 노동권 보호에 강제성을 부여한 것은 전쟁을 겪지 않아 자본가들이 일찍 창업을 해서 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자본의 비인간성이 야기할 수 있는 피해를 우리보다 훨씬 더 일찍 경험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남. 녀 평등이 완벽히 이루어진 것 같은 사회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아직도 여자들은 여자에 대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도, 일도 더 열심히 하고,  집에서 엄마와 부인으로서의 역할까지 열심히 하느라고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하고 힘들다. 모든 것에 공짜가 없다.
남성들에게 육아 휴가를 주는 것은 직접 겪어 봐야 온전한 상호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직도 스웨덴에서도 여자가 육아 휴가를 더 오래 갖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급여의 80%가 나와도 아직도 같은 직군 내 남. 녀 급여 차이가 있고, 남편의 급여가 더 높기에 급여가 낮은 여자가 육아 휴가를 더 오래 쓰게 된다. 복직을 하면 남자 동료들은 이미 승진을 했다. 여자는 승진 기회도 적어지게 된다. 최고 경영진의 남. 녀 성비는 아직도 불균형하다.  

    경영학 교과서나 논문,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는 북구의 모습은 현실과 사뭇 다르다. 보도자나 교과서는 실제 경험이 아닌 인터뷰나 실제 삶이나 노동현장에서 검증이 되지 않은 학문적 실험이어서 현실과 동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20년간 공기업, 대기업, 금융그룹에서 일하고 그중 15년을 가장 북구 금융 시장을 잘 대표한다는 창립 170년이 넘은 기업에서 근무, 타기업과 다양한 현지 노동자들과의 협업의 경험, 그리고 이곳 시장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목격하고 현지 다양한 분야의 실무자들과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사회가 세상 어디인가에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먼 나라에 투영시키고 그 나라는 우리는 원하는 모습일 것이라고 믿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회는 어디에도, 북구에도, 스웨덴에도 없다. 자본주의 자체가 누군가가 일해서 창출한 가치의 불균등한 분배 과정에 부를 더 취하는 자본가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살면서 마슬로프의 욕구 이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다

러시아 박사과정 시절 첫 해에는 학교에서 제공한 기숙사에서 살았다. 같은 방에 살던 불가리아 룸메이트를 통해 같은 층에 살던 한 러시아 가족을 알게 되었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보다도 더 어려 보였던 그 젊은 러시아 부부는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극동)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대륙을 횡단해서 상트 페쩨르부르크 (러시아 서쪽)에 이사왔다고 한다. 그들은 8평 남짓한 방 하나에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인문학 석사 출신이라는 금태 안경을 쓴 금발머리 동안의 남자와 갈색 머리 부인은 낯선 대도시에서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낮과 저녁 학교와 학원 등 세 군데에서 영어와 외국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갔다.

    저녁때 그 방에 놀러 가면 방 양옆으로 2층 침대 하나와 작은 침대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방 가운데에 놓인 식탁이 침대 사이에 남은 공간을 차지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들의 저녁식사는 흑색 발효빵과 양배추 절임과 버터였다. 그리고 우유가 없이 커피를 마셨다. 살림은 극도로 가난했고 그 부부와 시어머니는 그 좁은 방에서 함께 생활을 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집에 오면 많이 지쳤을 텐데 우리는 눈치도 없이 단지 그들의 입담과 지혜 있는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좋아서 우리는 눈치도 없이 그들의 방에 저녁때마다 자주 들렀다. 그들은 없는 살림에도 우리에게 늘 커피와 차를 대접했다. 그 부부는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이야기,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일, 새 직장에서 첫월급을 받아서 기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불가리아 룸메이트가 하루는 그 가족의 방에서 잘 놀고 돌아와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까지 모시고 온 것은 참 실수인 것 같아." 나는 이 말이 참 듣기 거북했다. 그들은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어서 자신들이 더 고생스러울 수 있어도 어머니를 혼자 남겨두지 않고 모시고 온 착한 사람들인데 이런 말을 하다니.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하나만 다니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도 얻기 힘들었다는 극동의 한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꼬박 7일은 넘게 걸리는 여정을 거쳐 대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사 온 그들. 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기품이 있었고 없는 살림에도 우리가 놀러 가면 단 한 번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거나 짜증 한 번을 낸 적이 없었다. 그 작은방을 꽉 매우던 식탁에 차 한잔을 대접하던 젊은 부부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들을 보면서 마슬로프의 욕구 이론이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인 생계와 욕구가 흡족하게 충족되지 않아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늘 지키는 이들이 지구 곳곳에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그들의 고귀한 인간성에 흠집내지 않았다. 교육의 힘은 대단하다.

    그런데 희망적인 것은 러시아에서 이런 사람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면
해외에서 오래 살면서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있기에 더 분명히 보이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늘 더 나은 사회 건설에 대한 갈증과 이를 이루기 위한 집단 열정이 있어왔다는 것, 그래서 자신과 상관없어도 어떤 집단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피해를 입는 것을 간과하지 않고 일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고 목소리를 내고 일어서는 이들이 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주도하지 않으면 개개인이 모여서 "개미군단"처럼 사회 발전과 많은 이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이루어내어 정부도 움직인다. 아마 그 사회 안에서 살면 이것이 익숙해서 별로 특이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현대사를 이끌어온 우리 민족의 힘인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의 힘으로 조금씩 우리가 꿈꾸는 모습과 비슷하게는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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