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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Feb 05. 2022

9.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마음을 두지 말라

자존감과 멘털을 꿋꿋하게 유지하며 사회생활하는 법

사람과 함께 살고 일하면서 많이들 호소하는 어려움은 일이나 과제 자체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슬프게도 착하게 열심히 살고자 늘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 책임감이 강한 사람, 자기비판적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로 인한 괴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도 같은 문제로 많이 속상해하며 살았나 보다. 우리보다 200년도 넘게 먼저 태어난 러시아 작가 도스또옙스끼도 오죽하면 “작가의 일기"를 쓰며 다음의 터키 속담을 인용했을까?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 네게 짓는 모든 개에게 돌을 던지려고 멈춰 선다면 결코 목적지까지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Если ты направляешься к цели и станешь дорогою останавливаться, чтобы швырять камнями во всякую лающую на тебя собаку, то никогда не дойдешь до цели)."  


스웨덴에서 알게 된 의사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네가 정신병원 의사라고 치자. 병동에서 회진 중에 갑자기 중환자 한 명이 네게 오더니 "이런 얼간이 같으니라고! 너는 미쳤어!"라고 외치고 가네. 자, 그럼 이 의사랑 중환자 둘 중 정말 미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의사가 그 환자의 말을 믿고 집에 가서 '그 사람은 왜 나보고 멍청하다고 했을까? 난 정말 무능력한 인간일까'라고 고민하면 얼마나 한심해? 낮에 들었던 어처구니없는 말을 집에까지 끌고 가서 곱씹으며 슬퍼한다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지. 의사는 그냥 ‘그 환자가 많이 아파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고 집에 낮에 있었던 이 황당한 사건은 잊을 거야.

내가 한 도시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그곳은 마치 뱀들이 또아리를 틀고있는 둥지 같았어. 내가 발령받은 지 며칠 안 되어서 상사와 동료들이 나한테 "너는 정말 이상한 의사야"라고 하는 거야. 아무 근거도 없이. 정작 환자들은 내게 대한 불만이 없는데 말이야. 내가 가만히 있었을 것 같아? 계속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하면 노동환경청 (arbetsmiljöverket)에 상사와 상사의 상사까지 고발하겠다고 했어. 그 겁쟁이들. 그 후에야 좀 조심하더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그녀처럼 강인한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

세상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삶이 얼마나 짧은데...... 단 한 번뿐인 우리의 소중한 삶의 시간을 그런 얼간이들이 하는 말 때문에 괴로워하며 보내서는 안 되지.

상황에 상관없이 기뻐하며 살기로 결단하는 것, 한 번밖에 없는 삶을 이 정도로 사랑한다는 것은 아름답고도 강하다.

 

우리의 일상에 알게 모르게 사이코 패스가 많다고 한다. 뇌에 선천적 결함이 있는 사람, 혹은 범죄자나 흉악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이코 패스는 예상치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능력 있고, 뛰어난 화술로 인해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람, 혹은 겉으로 보기에 침착하고 조용한 사람 일 수도 있다. 그들은 뛰어난 언변가일 수도 있고, 정치인, 존경하는 예술가, 학자일 수도 있고, 작가, 선생,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간부, 종교 지도자, 건전해 보이는 청년, 우등생 등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며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직장이나 사회생활하면서 당신에 대해 근거 없는 안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들이 하는 말에 동요하고 괴로워 하는 시간만큼 당신은 그들에게 힘을 주게 되는 법이다.


사회생활을 할 때, 직장에서, 혹은 학교생활하면서 누군가가 우리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말. 혹은 우리가 한 일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것이 의무인 사람이 (예를 들어 상사, 지도교수, 선생, 동료가 당신이 한 업무 자체에 대해서 잘 된 점과 더 개선 가능성이 있는 부분에 대해 근거를 갖고 이야기할 때) 하는 건설적인 말은 객관성을 유지하며 받아들이고, 그중 수긍이 가는 부분은 수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우리 삶에 관한 크고 작은 선택뿐 아니라, 어떤 말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것인가도 스스로 해야할 선택이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니까. 삶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본인의 몫. 그래서 모든 인간은 외롭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더 나아가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단지 상사라는 이유로 당신을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발언을 하거나, 혹은 당신에게 불공평하게 대하는 상사에게 아부하기 위해, 혹은 자신이 돋보이려고 당신을 깎아내리는 언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생활 잘하고 능력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슬픈 조직문화가 정착한 회사들도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런 상황을 겪으면 그들의 감정에 휘말려 가지 말라. 당신이 예민한 성격이라도 훈련으로 극복 가능하다. 절대로 그들의 수준에 눈높이를 맞춰 당신의 수준까지 하향 조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수준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을 할지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다만 그런 대우가 불쾌하다는 점을 쿨하고 분명하게 표현하자. 하지만 집에 까지 낮에 겪은 일을 데리고 와서 고민하거나 신경 쓰지 말자. 슬프게도 자기도 사회생활하면서 상사나 주변인들에게 늘 그런 식으로 취급받아서 그런 식의 언행이 이상한지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짚고는 넘어가야 한다. 무지함이 왜 죄를 낳을 수 있는지의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소통을 하려고 당신의 수준까지 그들에게 맞춰 하향 조정할 필요도 전혀 없다. (하지만 어떻게 언짷은 말을 듣고 "참 언짢네"라고 말하고 칼로 무 자르듯이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우리는 감정의 동물인데...)


설령 당신이 업무상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했다고 해도, 그 누구도 당신의 인격까지 깎아내릴 발언을 하도록 허락하지는 말자. 일을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도 않고, 무엇이 핵심 요인이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건설적인 조언은 안 하고, 지속적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하며 당신을 괴롭히거나, 사람들이 열린 사무실 공간에서 당신을 비판하거나 욕하는 사람 (마치 자기는 상관없고, 오로지 당신 혼자만의 잘못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표시하려는 심리, 혹은 자신을 발전시킬 노력은 귀찮으니 남을 깎아 내려서 상대적으로 자신을 높이려는 심리)은 무능력하거나 비겁하거나 게으른 사람이다.

정말 정직하게 일하고 최선을 다 했는데 예기치 못한 실수가 있었을 때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장을 만들고, 실행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부서장의 책임이다. 상사는 일이 잘 진행되도록, 선생은 학생이 공부를 잘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책임이고 목적이 되어야지, 문제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거나 인격을 깎아내릴 권한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수천 년 전에 쓰인 성서에도 마음 관리의 중요성 (요즘 말로 멘털 관리)에 대해 여러 곳에서 반복해서 경고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너도 가끔 사람들을 저주했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전도서 제7장, 21-22절)"
재미있게도 성서는 당신이 피해자라는 가정 하지도 않고, 안 좋은 말을 들은 당신 편만 들며 무조건적으로 위로하지도 않는다. 남을 저주하는 사람이 악인이 정해져 있고, 이런 말을 듣고 괴로워하는 피해자가 정해져 있다고 하지 않는다. 마지막 구절은 가해자와 피해자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고, 가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이럼으로써 남이 내뱉는 악의에 찬 말이 하찮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힐 가치도 힘도 없다는 걸 깨닫게 한다.

그렇다.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고. 상황에 따라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은 언제든 바뀔 수가 있다. 나쁜 행동을 쉽게 하는 사람, 착한 행동을 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따름인 것 같다. 현실은 우리가 꿈꾸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다는 것, 우리 주변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완벽하지도, 늘 선하거나 늘 악한 존재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자.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존재하려 노력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다음 글에서 이를 해결할 대안을 몇 가지 제안해보겠다. 어떤 사안에 대해 직접적이고 통렬한 비판을 하면서도 상대방의 기분 나쁘지 않게 할 수 있다. 예의와 믿음을 저축하듯이 쌓아 온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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