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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19. 2019

퇴사 후 유럽 - 체코 프라하에서

2018.05.16

독일 뉘른베르크를 지나 체코 프라하에 도착했다. 그동안의 여정으로 지치고 힘들었던 탓에 버스를 타고 체코를 향하는 내내 그저 숙소 체크인을 빨리 하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차창 너머로 조금씩 보이는 프라하의 전경에 눈이 탁 트이면서 처음 여행했을 때 설렘이 다시 시작되었다.


사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만 하더라도 스페인과 포르투갈,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유럽에 왔는데 지나치기에는 아쉬울 것 같아 고된 일정을 각오하면서 무리하게 끼워 넣었었다. 체코 프라하도 그중 하나였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왜 이곳으로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평소 '유럽'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모두 갖춰진 곳이랄까. 게다가 관광하기도 편하고 치안도 서유럽 국가보다 훨씬 안전하게 느껴졌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프라하를 다니면서는 인종차별 등으로 무시당하거나 괜히 기분 나빠지는 경험도 별로 없었다. 


숙소도 깨끗하고 아늑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조용해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카를교'가 있어서 위치적인 면에서도 만족스러웠다. 몸은 피곤했지만, 오후의 프라하를 느끼고 싶은 마음에 짐만 간단히 정리하고 숙소를 나섰다. 노을이 지는 오후의 카를교는 정말 낭만적이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관광객들마저 한 폭의 그림처럼 만들어버리는 풍경에 마음이 충만해졌다. 되도록 천천히 걸으며 하나하나 눈에 담으려고 했다. 보고 있어도 자꾸만 보고 싶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가 싶을 정도로 프라하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질 것 같았다.


분위기에 취하다 보니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오늘 밤은 치맥을 해야 할 것 같은 강한 욕구에 사로잡혔는데, 도무지 치킨 파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KFC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내적 비명을 지르며 매장으로 달려가 치킨 한 마리를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니 행복한 포만감이 들었다. 이 전까지는 뭘 먹어도, 뭘 해도, 쉬어도 다 충분하지 않았는데 프라하에 오니 모든 게 해결된 기분이다. 지친 여행길에 오아시스를 만난 듯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완벽한 행복감을 느꼈다.


잠들기 전, 야경을 보기 위해 다시 숙소를 나섰다. 해가 진 밤에도 카를교에는 많은 사람들이 프라하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또는 가족과 함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의 행복감이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내 안의 평화와 나만의 신념을 지키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옆에 누군가가 있는 것이 지금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지 않았다. 혼자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여행을 한 지 한 달이 넘어가니, 한국에 돌아갈 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 마드리드에 도착했을 때 한국에서 괴롭고 힘든 일들만 생각났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들이 정말 내 생각만큼 괴롭고 힘들었을까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 당시 최선이라고 확신했던 선택이 정말 '최선'이었을까도 고민해 보게 된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퇴사'를 번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많이 지쳤고, 일을 지속할 용기도 힘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니까. 다만 퇴사를 하고 여행을 오면 전혀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 자체가 어리석었다는 것은 후회가 된다. 정말 필요했던 건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내 직업에 대해 어떤 비전을 그리고 있는가였지 아무런 준비 없이 상황만 회피한다고 다른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생계'를 위해 구직을 해야 한다. 생각하기조차 싫지만 그게 현실임을 안다. 그리고 남은 기간 동안 내가 고민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이다. 


카를교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들도 복잡해진 마음을 야경을 보며 날려버렸다. 그저 오늘 밤은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고민만 하기에는 프라하의 밤은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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