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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Aug 02. 2019

퇴사 후 유럽 -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에서

2018.05.24

자그레브에서 아쉬운 하루를 뒤로 하고, 플리트비체로 향했다. 슬로베니아부터 시작된 여정은 익히 알고 있던 유럽의 화려한 문화재는 없지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평온함으로 계속 머물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유럽의 그 어떤 나라보다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여유로웠고, 행복했다. 날씨마저도 화창하고 맑아서 즐거운 기분은 더욱 배가 되었다. 


플리트비체는 크로아티아 여행 중에서도 가장 기대가 큰 곳이었다. 계단식 호수 지형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직접 눈으로 마주했을 때의 감동과 설렘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풍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대한 규모의 국립공원을 쉴 새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최대한 천천히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일 자다르로 떠나기 전 시간이 있으니, 다시 오기로 마음을 달래며 숙소로 향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숙소로 향하는 지름길은 울창한 숲을 통과해야 했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오솔길을 걷는 재미가 있었다. 이제 막 플리트비체에 도착했는데, 왠지 모르게 수도 없이 이 길을 다녀본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플리트비체 여행 일정을 계획할 때, 숙소는 국립공원 내 호텔을 예약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계획한 일정에는 숙소 예약이 마감된 상황이어서 매우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만약 호텔 예약에 성공했다면 이런 멋진 오솔길을 걷는 기쁨은 없었다고 생각하니,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인생은 항상 플러스 마이너스가 함께한다.


행복지수는 최상이었지만, 체력은 바닥이 났다. 5시간 내내 호수의 상부에서 하부까지 쉬지도 않고 걸었으니 거의 등산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잠들기에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내일 일정을 위해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지극히 내 취향에 맞는 여행지에 왔으니 끝까지 제대로 즐기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는 체력관리가 필수이니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유럽 여행을 오기 전에는 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고, 취직 대신 '여행'을 선택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불안도 있었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나'에 대해서,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평소에는 몰랐던 '소중한 존재'들에 대해 생각하고 마주하며 비로소 '나'를 바로 볼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스스로에게 '다녀오길 잘했다'라고 칭찬할 수 있을 만큼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삶은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난 항상 '기회비용'을 생각했다.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가지 수 중에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길을 골랐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들 위해 가장 최선이라 생각하며 '희생하는 척' 했다. 그리고 그 희생에는 '내가 이만큼 포기했으니 너도 감수해'라는 암묵적인 강요도 있었음을 지금은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때는 스스로의 합리적인 선택을 타인에게도 강요하며 내 맘대로 되지 않은 상황들에 상처 받고 힘들어했다.


떠나와 보니 알겠다.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은 선택은 결코 타인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면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지만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결국 내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기회비용은 스스로의 '행복'이었다. 어줍지 않은 배려와 타인을 위한 희생은 접어두고 나는 나에게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나를 좀 더 믿어주고 응원하고 격려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 행복을 오랫동안 즐겨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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