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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Aug 03. 2019

퇴사 후 유럽 -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

2018.05.25

맑은 날씨의 플리트비체에서 마지막 산책을 했다. 비취색 호수와 폭포, 이 모든 것을 둘러싼 거대한 자연을 뒤로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유럽 여행을 할 때 늘 손에서 놓지 못했던 가이드북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여행에서는 들고 다니지 않았다. 때문에 발길 닿는 대로 어디든지 자유롭게 다니는 본래 내 방식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예전과는 전혀 다른 체력적인 한계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마음과는 달리 쉽게 지치고 피로해지는 몸을 이끌고 여행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자다르'는 정말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도시 자체가 바다를 마주하고 있어서 조금만 걸어 나가도 시리도록 푸르른 바다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다. 구시가지도 작고 아담해서 오래도록 걷지 않아도 괜찮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다로 향했다. 눈이 부신 태양 아래 더 눈이 부신 바다가 있었다.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오직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허기가 느껴져 근처 피자가게에서 조각피자와 맥주를 사서 먹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은 평화로운 오후였다.

서쪽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지점으로 태양이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 일몰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노을 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카누 보트를 타고 해가 지는 방향으로 열심히 노를 저어 갔다. 아이들은 바다 오르간 위를 걸으며 물장난을 하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 모든 한 장면 한 장면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 내가 지금 있는 곳을 자꾸 상기시켜야 했다. 파란 하늘과 푸르른 바다는 점점 어둠에 잠식되었다. 오로지 밝게 빛나는 건 주황빛이었다가 온 바다를 붉게 물드는 태양 하나였다. 오랜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온 세상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그저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반복되는 일상의 한 장면이겠지만 이렇게 천천히 바라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문득 이 장면과 어울리는 노래가 듣고 싶었다. 김윤아의 'Going Home'을 들으며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다 또 울컥 감정이 솟아올랐다. 눈물을 꿀꺽 삼키며 주변에 어둠이 완전히 내리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래 가사 중에 '우리는 단지 내일의 일도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라는 대목이 지금의 내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퇴사를 하고 유럽 여행을 하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계획에도 없었고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다소 감정적인 부분도 있었고,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지치기도 했지만 '퇴사'가 정말 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나는 선택을 했고 지금은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석양을 보고 있다. 날씨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최상이고,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주변의 풍경은 너무도 평화롭다. 문득 이 모든 게 사실임에도 거짓처럼 느껴지는 나 자신이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내게 주어진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한 번 선택하여 살아온 인생은 두 번 되풀이할 수 없기 때문에 늘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때문에 항상 선택의 순간마다, 결정을 내리고 나서도, 자신 있게 내 길을 가지 못하고 늘 우물쭈물 해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금에라도 돌아가야 할까를 망설이며 갈팡질팡 후회만 했었다. 당장 몇 분 후의 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다가오지 않을 미래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전전긍긍했던 지난날들이 참 어리석었다. 그저 내가 선택한 순간을 오늘처럼 '즐기면' 됐었다. 석양이 참 아름다웠고, 그 석양을 바라볼 수 있어 행복했으면 된 거다. 


내가 선택한 퇴사, 유럽여행의 선택지가 앞으로 내 인생에 가져다 줄 또 다른 선택이 무엇일지가 궁금해졌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것. 그저 선택의 반복이라는 것. 때문에 그 어떤 것을 선택할지라도 고민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 길을 가라고 응원해 주고 싶다. 어차피 또 선택의 순간은 다가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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