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노지도 처음이고 차박도 처음이라 살짝 망설였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어떻게 언제 가보겠냐며 어김없이 도전을 외쳤다. 그렇게 8월 27일, 은하수를 보기 위해 안반데기로 떠나게 되었다.
강릉과 평창의 가운데 위치한 해발 1100m 고산지대 안반데기.
모든 산이 배추밭이고, 배추밭이 곧 산이라는 그곳에서 구름 없는 맑은 날에만 보인다는 은하수.
8월이 되면서 차박에 필요한 용품을 사고 매일 날씨를 확인하고 강릉 맛집을 검색하면서 은하수를 기다렸다.
당일 새벽, 단잠을 자고 있는 준이를 안아서 차에 태우고 서둘러 강릉으로 출발했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눈을 비비며 일어난 준이에게 바나나를 먹이고 나와 남편은 아메리카노로 아침 햇살을 맞이했다. 친구와는 소돌해변 근처에 위치한 소도리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라 이미 만석인 소도리 식당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으니 친구네가 도착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은하수가 잘 보일 것 같다고 날을 잘 잡았다고 우리 모두 기분이 들떴다.
깔끔하게 차려진 돼지불고기 정식으로 아이들과 함께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소도리 업체 이미지 사용 / 카메라가 신기한 준이
10년 전, 남편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디지털카메라를 준이에게 물려주었다. 은하수를 찍을 거라고 잘 때부터 카메라를 안고 자던 준이는 하루 종일 사진을 찍고 보면서 재밌어했다. 카메라가 너무 신기한가 보다.
쌓아 두기보다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매년 정리하는 편이라 지금 준이가 들고 있는 디지털카메라도 당근 마켓에 나눔 하려고 했다. 남편이 대학생일 때 용돈을 모아서 해준 첫 선물이라 예의상 남편에게 의사를 물었는데 불같이 화를 내는 바람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것을 준이에게 물려주게 될 줄은 몰랐다.
조그마한 목에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소중하게 다루는 준이를 보니 가끔은 미니멀함도 미루는 것이 좋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밥을 다 먹고 파도가 잔잔해서 아이들 놀기 좋다는 소돌해변으로 갔다. 그런데 블로그에서 찾아본 소돌해변이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거센 파도와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발 담그려다 머리까지 휘감을 듯한 파도였고 흩날리는 머리카락으로 눈앞이 가려졌다.
카페에 앉아서 쉬고 싶은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알리 없는 아이들은 굳이 해변에서 놀겠다고 외치니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해변 근처에 주차했다. 안반데기로 올라가면 아이들이 심심할 테니 해변에서 실컷 놀기로 했다.
모래놀이 하나에도 신이 난 아이들은 한참을 놀았다.
준이 사진을 찍어주다 보니 젊은 남자들이 그물망을 들고서는 조개를 줍고 있는 게 아닌가.
내 발아래를 보니 조개가 한가득 보였다. 휘몰아치는 파도 덕분에 조개 떼가 밀려온 것일까.
암튼 카메라는 넣어두고 준이의 모래 양동이를 빌려서 조개를 줍기 시작했다. 잠깐 주웠는데도 양동이 가득 채울 만큼 조개가 많았다. 내일 아침에 조개탕으로 해장할 생각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스노쿨링 하시는 옆 돗자리 아버님을 보더니 질수 없다며 뜬금없이 입수하는 아빠
바다에서 주운 조개 일부
모래 놀이만 하라했건만 준이가 슬그머니 바다 물속으로 발을 담그더니 첨벙 들어가 버렸다. 전혀 춥지 않다며 강한 척하더니 너무 춥다며 온몸을 떨어서 서둘러 정리하고 중앙시장으로 갔다.
뜬금없이 바다 수영이 하고 싶다며 입수를 한 아빠와 준이는 해변 근처 민박집에서 운영하는 유료 샤워장에서 샤워를 했다.
소돌해변에서 오후 내내 놀았더니 제일 붐비는 주말 저녁 시간에 도착한 강릉 중앙시장은 지나다닐 틈 없이 복잡했다. 공영주차장은 만석이고 마땅히 주차할 자리도 찾지 못해서 나와 친구만 시장에 가서 음식을 포장해서 돌아오기로 했다.
먼저 중앙시장에서 유명하다는 배니 닭강정을 포장했는데 매운 양념이라 아이들이 먹을 후라이드를 옆 가게에서 포장했는데 정말 JMT!! 아이들이 먹을 거라는 걸 들으시곤 꼼꼼하게 한번 더 튀겨주셨다.
마지막으로 은하수를 보면서 먹을 안주로 회 한 접시도 포장했다.
꼬불꼬불 산을 올라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서 안반데기 관광농원을 도착했다.
보이는 곳마다 절경이었고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 말도 안 되는 풍경에 취해 시원한 공기를 맡고 싶어 창문을 내렸더니 배추 냄새가 현실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안반데기에는 무료로 이용 가능한 차박지가 있지만 우린 아이들이 있어서 화장실도 깨끗하고 사람들이 덜 붐비는 그리고 혹시 모를 안전을 생각해서 안반데기 관광농원을 예약했다.
도착 순으로 자리 배정을 해주시고 예약자 확인을 하면 직접 담그신 장아찌 2통을 선물로 주시는데 며칠 냉장고에 숙성시켜서 먹으니 너무 맛있어서 장아찌 다 먹으면 또 가야겠단 생각을 할 정도이다.
차박이니 피칭할 것도 없고 테이블만 두면 되니 세상 편했다. 이래서 차박을 하나 보다 싶었다.
트렁크에 짐을 꺼내고 매트와 이불을 펼치고 테이블로 쓸 토르 박스를 정리하니 세팅 끝이었다. 간식거리를 실컷 먹은 아이들은 닭장 구경하러 왔다 갔다 했다.
처음 보는 풍경에 마냥 즐거운 준이는 누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길이 좁고 비탈길이 있어서 준이 혼자 다니기 불안했지만 든든한 친구의 첫째 딸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다.
남편들은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한숨 쉬었고 나와 친구는 시장에서 사 온 먹거리를 펼쳤다.
"그냥 참 좋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었다.
일과 육아의 균형을 맞추느라 바빴던 우리들에게 필요한 고요한 쉼.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놀고 있는 아이들.
우리 모두 나름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엄마!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변했어!"
해가 사라지고 달이 분명 해지는 낮과 밤의 바뀜을 눈으로 본 준이는 신기해하며 말했다.
밤 9시 이후부터 새벽 2시.
은하수가 나타나고 제일 잘 보이는 시간이라고 한다.
저녁밥을 먹은 뒤 아이들을 위한 작은 랜턴만 켜 두고 사이트 주변을 어둡게 했다.
하늘의 별을 조명삼아 은하수가 펼쳐지기를 기다렸다.
더 어두워진 밤이 되었다. 우린 말없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보이지 않았던 하늘의 별들이 눈으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무수히 많은 별들이 눈으로 들어왔다.
순간 별이 너무 많이 보였는지 준이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아빠! 엄마! 은하수 찾았어! 나 은하수 봤어!"
"은하수를 찾았어? 대단한걸. 은하수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 우리 같이 소원을 빌자!"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가르킨 것은 그냥 별이었지만 준이에겐 은하수였으리라.
"은하수야, 포켓몬 띠뿌띠실 백개만 주세요! 제발"
지난번 포켓몬 빵을 계속 사달라고 하길래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말했더니 은하수에게 띠뿌띠실을 달라고 말할 줄은 몰랐다. 부쩍 귀여운 6살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은하수를 봤다고 생각한 준이는 하품을 하더니 애착 인형인 아기 멍멍이와 아빠의 손을 잡고 잠을 자러 차 안으로 들어갔다.
준이 보다 더 먼저 잠이 든 아빠.
본인도 모르게 잠들어서 아쉽게도 은하수를 보지 못하고 다음날 새벽에 울부짖는 수탉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셨다. 참으로 애석하다.
지금 남편에겐 잠이 보약이니 우리 가족 대표로 내가 은하수 보면 되지 뭐.
밤 11시가 되었을까. 다른 사람들의 조명이 함께 다 꺼지니 별들이 더 잘 보였다.
드디어 은하수를 보았다.
성능 좋은 카메라가 없음에 아쉬웠지만 그래도 눈으로 듬뿍 담았다.
별자리 어플로 별자리를 맞춰 보다가 유난히도 빛나는 별 두 개를 찾았는데 알고 보니 목성과 토성이란다.
지나가는 사장님께 여쭤보니 날씨가 굉장히 좋은 날에 보인다며 날은 참 잘 잡아서 왔다고 말씀해 주셨다.
'오늘이 참 좋은 날이었구나'
술이 참 달다.
차가운 바람이 마음에 닿으니 시원하다.
은하수를 보면 말하고 싶은 소원이 많을 줄 알았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지금이 행복해서 말없이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