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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마망 Dec 02. 2022

마흔이지만 여전히 어려운 선택



8월, 그동안 잘 피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1주일 동안 격리하면서 우려보다 덜 아팠고 잘 지나갔다. 그렇게 코로나는 별것 아니라며 비웃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해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업무 메일을 읽고 동료와 수다를 나누고 있었다.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렸다. 단 한 번도 이른 아침에 연락 온 적 없었던 둘째 언니의 전화였다.

그 전화와 함께 평범한 일상은 멈췄다. 지금까지도.


"엄마가 의식 없어서 119 불러서 구급차로 실려갔어!"

"의사가 가족들 다 와야 될 것 같대. 지금 내려와 빨리..."


쏟아지는 눈물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번 아웃된 상태로 가방만 챙겨서 사무실을 뛰쳐나와버렸다.

회사 앞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서울역으로 가달라고 겨우 내뱉었다.

KTX 예매를 하려고 휴대폰을 뚫어져라 보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옷소매로 액정을 수십 번을 닦았지만 소용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서울역에서 부산행 KTX를 타고 나서야 조금의 정신을 차리고 울려대는 카톡을 확인했다.

눈물범벅으로 뛰쳐나간 내 모습을 본 팀원들의 걱정과 다급한 언니의 카톡.


"엄마가 코로나 확진이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폐가 손상되고 급성 패혈증 쇼크로 의식을 잃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 다시 일어나실지 모르는.

엄마에겐 코로나는 이토록 무서운 바이러스였다.


엄마는 응급실에서 코로나 음압 병동 중환실로 입원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5일 동안 부산에서 가만히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적을 바라는 일 밖에 없었다. 평소에 엄마가 자주 찾으셨던 절에 가서 빌고 또 빌었다.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쌀 한 가마니 봉양도 했다.

3일이 되던 날, 면회 불가라던 음압 병동에서 연락이 왔다. 가족 일부에게 모니터 면회를 해주겠다고.

이 때는 면회가 된다는 생각에 기뻐서 달려갔지만 나중에 알았다. 갑작스러운 임종을 지켜볼 수 없는 거주지가 다른 가족에게 주어진 면회였다는 것을. 

간호사실에 있는 모니터로 누워 있는 엄마를 만났다.

단잠을 잠자고 있는 엄마 얼굴 그대로였다. 불과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5일째 되던 날, 병원에서 연명치료에 대해 동의를 확인했다. 우리들은 엄마는 분명 다시 일어날 것이니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해주기를 요청했다. 연명치료 동의서를 작성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니 돌아온 척했다. 


우리의 염원이 엄마에게 닿았을까, 한 달이 지났을쯤 엄마의 의식이 조금 돌아온 듯했다.

하지만 의사는 코로나 확진 전으로 돌아갈 확률은 희박하며 의식이 돌아올 확률은 10%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음압 병동에서 다시 일반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보내고 지금은 일반실로 병실을 옮겼다.

그래도 일반실이니깐 조금은 나아진 것 아니냐고 기적이 곧 찾아올 것만 같았다. 한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긴장된 하루를 보내며 매일 밤 아무 일이 없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이 올 때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무서웠다. 제발 전화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어제는 엄마가 쓰러지신 지 4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병원에서 또 한 번의 연명치료에 대한 확인 전화가 왔다. 약물 치료를 견디고 있던 간마저도 손상되었고 염증 수치는 계속 오르고 있으며 의학적으로 의식이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주치의는 더 이상의 치료는 어려우니 가족들의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또다시 주저앉아 울었다.

그래도 혹시나 엄마 목소리라도 한번 들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거라 믿고 이겨냈던 우리였다.

담담하면서도 머뭇거리는 의사의 목소리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이며 마지막이라는 것을 느꼈다.

언니가 보내준 통화 녹음을 듣다 길바닥에 앉아 멍하니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허무함이 사무쳤다.

엄마를 대신해서 엄마를 위해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우리가 선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이 현실을 결국 받아들여야 되는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다.


마흔의 선택은 이런 것일까?




하원한 준이와 문방구에 갔다. 참새 방앗간처럼 자주 오는 곳인데도 매번 새롭고 신기한지 진열대 가득 채워진 장난감들을 보자마자 신이 난 준이는 엄마가 딱 1개만 사주겠는 말에 금세 시무룩해졌다. 


"엄마! 이렇게 많은데 1개만 고르는 건 너무 싫어. 왜 맨날 1개만 사야 해?"

6살 준이는 선택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일들이 세상에는 더 많아."

"그래서 잘 선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일 나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숨죽여 울었다.

"준아, 엄마도 어려워. 선택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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