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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Nov 13. 2022

붕괴된 후에, <헤어질 결심>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따라 이리 지고 저리 질 때, 파도가 넘실거리며 만조를 채워갈 때, 그 움직임이 흔들리는 나무 가지들과 겹쳐 마음을 사방팔방으로 흔들 때에도 눈물은 나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감정에 젖어드는 것이 내 심장을 쥐고 흔든 작품이었는지 아닌지를 말할 수 있는 척도라면, 이 영화는 철저하게 실패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물었을 때 ‘이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최신의 업데이트입니다. 영화를 보고 저는 붕괴됐습니다.


 

과잉된 영화미술과 폭력과 성. 그것들의 숨참이 제가 박찬욱 영화에 가졌던 편견이라면 그것은 붕괴됐습니다. 분명히 말해지지않는 불확실한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현실에서 제가 경계하는 어느 지점이지만, 이 영화에서의 모호함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 그중 하나였어요. 저의 선호의 기준은 붕괴됐습니다.


 사랑을 말하지 않고 사랑의 모든 것을 얘기하는 눈빛, 몸짓, 냄새와 촉각. 그리고 언어. 영화가 쉼 없이 생생하게 쏟아내어서, 제 사랑과 감정들을 묻혀 쏟아낼 눈물이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모든 면에서 온전했기에 미완의 제 감정을겹치기에는 그저 사소한 군더더기 되어 영화의 완벽함을 즐기지 못할 지경이었어요. 그야 말로, 분석의 의지도 잃고 푹 잠겼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그녀의 걸음이 씩씩한 것이 좋았습니다. 일점의 망설임도 없이, 그런 상황을 표현하는 미장센이나 연기들이 으레 그런 것처럼 처연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결기가 서린 성큼 성큼. 하고자 함을 이루려는 굳건한 선택의 의지가 담긴 걸음들이 좋았습니다.


 닮은, 저와 같은 종족을 만나 사랑이 뇌를 거치지 않고 흘러넘치던 마지막의 때가 언제였는지를 떠올립니다. 숨김없이 사랑하고 그의 자부심이 또한 저의 자부심이 되던 날들을 떠올립니다. 그것이 일종의 기적이고 쉽사리 인생에 오지 않는 희귀한 순간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합니다. 제가 쌓아 올리고 무너뜨린 최선의 사랑의 기억과 닮은 영화라, 끝이야 어찌 됐든 도저히 슬프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무엇을 기록하든, 제 언어가 이 영화에 비해 너무 빈약하고 초라하기만 합니다.

차라리 이 영화는 마법이었습니다. 제가 기대하고 그렸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마법이었습니다.



+해파리씬에서 호흡을 지도할 때의 힌트를 얻었습니다. 제 언어에 영화의 언어가 깊이 침투한 셈이지요. 저는 기껍게, 즐거이 항복합니다.

+박해일과 탕웨이여서 할 수 있던 연기와 열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영화 밖에서도 서로 비슷한 사람들 이리라 감히 짐작해요. 이들을 짝지우고 이들에게 이런 언어를 건네준 작가와 감독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바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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