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나 아가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귀띔했던 소식을 알게 됐던 건 정확히 한 달 전, 아무래도 이상해서 잠도 못 이루고 뒤척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테스트를 해봤다. 결과는…두둥.
9월 한 달 동안이 마치 세 달 동안의 일인 것만 같다. 나는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정도의 불안에 떨었고 -유튜브에 왜 그토록 많은 임신/육아에 대한 크리에이터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됐다- 나의 인간됨됨이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를 의심하고 불만족했다. 설레는 일에 가슴 뛰어하자마자 앞으로 일어날 모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끝 모를 걱정이 몰려왔다.
정말로, 일반적인 내 나이 또래에 여성보다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해 왔다. 엄마가 연로한 외할머니를 대신에 이모들의 산바라지 하는 것을 봐왔고 사촌동생들의 탄생을 다 기억하고 임산부를 위한 요가를 공부하고 수업한 경험이 수년간 쌓였다. 하지만 내 일이 된 다는 건 너무나 달랐다.
빠르게 변화하는 몸과 마음을 쫓아가기 바빴다. 더이상은 잘 안다 생각한 내 것이 아닌듯했고 내가 삼십여년을 공들여 가꿔온 내 몸의 생태계를 손톱만한 새생명이 완전히 바꿔놨다. 너무 피곤해서 까무룩 잠들었다 일어날때마다 지금 나는 너무나 아픈게 분명하다고, 감기몸살이 심하다고, 모든 남은 일정을 취소해야한다고 혹은 할수 밖에 없을 정도로 몸이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몇년만에 처음으로 음식을 허기에 시달리며 제한없이 먹어댔다. 울기도 흥분하기도 잘했다. 생리 기간에 흔하게 있다는 기분변화가 내게는 그동안 없어왔어서 딱히 이해못한 호르몬의 노예라는 말을 절실하게 실감했다.
예민하고 날 서 있다고, 조금 대하기 어렵다고 여긴 대다수의 임산부가 막상 내가 되고 나니 그동안의 모든 것이 서서히 그리고 온전히 이해되며 재경험되기 시작했다.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가진 여성이 내게 해주는 공감은 크고 따스한 것이었고 그렇지 못한, 아직 모르는 젊은 여성의 어떤 말들은 거칠었다.
아이는 짧고 강렬한 이개월을 보내고 멀리갔다. 존재를 알게된 일개월 동안 무지했던 것들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려줬고 새로운 세계를 살짝 열어젖혀 보여줬다. 유산에 대해, 남녀노소가 한사람 한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여다 보며 또 이런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위로해야하는지를 끝까지 배운다.
엄마가 된다는 생각으로 바라본 세상은 새로웠다. 원한다고 오는 아이도 없고 원하지 않는다고 오지 않는 아이도 없다. 이들 앞에서는 개인의 노력도 세운 계획도 다 무색하다. 인간의 영역 밖의 일이 존재한다고 믿게된다. 10개월 동안 모든 것이 무탈하다는 것이 사실은 너무나 소중한 기적이다. 비록 부모된 내가 어느 순간 잊을지라도 아이가 자라고 커가는 동안도 내내 아이의 모든 걸음 걸음은 기적이 된다.
모르긴 몰라도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엄마가 되지 못하는 세상도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다를 것이다. 이렇게보니 너무 많은 임산부들이 길에서 보이고 귀여운 아기들이 더 많이 보인다. 다른 의미로, 새로울 것이다. 다시 엄마가 될 기회를 얻는 다면 더 감사하고 더 가슴 뛰어 하면서, 겸허하게, 배우고 경험할 수 있음에 기뻐하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