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YE Jun 19. 2019

05 :: 모닝 LATTE

다시만난 그곳

 2018년, 내 목표가 있었다.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이었다. 사실 이전까지 나는 커피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카페를 좋아했다. 카페 특유의 산산한 분위기에서 친구들과 함께 ‘카공’ 하는 것이 좋았고, 비 오는 날 카페에 앉아 창 너머로 내리는 빗소리를 BGM삼아 호젓하게 책을 읽는 시간에 호감이 갔던 것이다. 그러다 자연히 언젠가는 내가 사장인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걸 그저 허황된 꿈으로 두기보다는 조금 구체적으로 가 닿고 싶었다. 그래서 2018년,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이라는 목표를 두게 되면서 2급만 따려 했으나 하다 보니 욕심이 나던 탓에 1급까지 연 달아서 획득했다. 



 바리스타 매니저 자격도 얻어낸 만큼, 커피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는 아니더라도 커피 향기의 은은함과 꽤나 잘 어울리는 유럽 감성을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내 여행 둘째 날 아침, 첫 일정은 ‘커피 마시기’ 였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숙소와 가까운 브릭레인 쪽을 향해 걸어갔다. 



 아침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겨울 아침은 꽤나 늦게 시작되고 있었다. 골목골목마다 그래피티 벽화가 그려져 있어 눈요기 할 거리가 굉장히 많은 브릭레인이었으나 머리위로 드리워 져있던 어두운 런던 하늘 탓에 쫄보 감성 어디 버리지 못한 이방인 하지혜의 걸음은 자꾸만 큰길가로 찾게 되었다. 그래, 저 안 쪽 골목의 벽화들은 내일 선민이 오면 같이 보면 되지 그래. 



 신변 보호를 위한 걸음을 이고 향해 가는 런던의 길목은 여전히 축축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4년 전, 런던에 막 도착했을 때 역시 이 거리의 분위기와 꽤 비슷했는데. 한국보다는 확실히 덜 춥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포근하다고도 할 수 없는 스산한 날씨. 영국 사람들이 왜 우울증을 많이 앓고 있고, 다소 딱딱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을 법 한 글루미 한 날씨 말이다. 



하지만, 이 날씨들 틈에서 확실히 다른 것은 있었다. 오늘 이 순간만큼은 런던 날씨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를 좋아하고 있는 관광객이자 한때 런더너였던 하지혜의 마음 아니었을까. 4년 전 그때의 하지혜는 런던의 빌어먹을 엿 같은 날씨에 매일 빅 엿을 날리며 투덜댔으나 이제야 아침빛이 스멀스멀 비춰오고 있는 이토록 이른 시각, 브릭레인의 습한 거리를 홀로 걷고 있는 내 마음에는 오래도록 보지 못한 고등학교 동창을 보는 것 같은 편안한 설렘과 진한 그리움이 흠뻑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걸음걸음을 찔끔찔끔 옮길 때 마다 셔터를 마구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이 상태라면 런더너들 출근하고도 남을 시간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 정도로... 한 구역, 한 장면 모두 놓치기 아쉬워 최대한 길게 멈췄다가, 최대한 많은 양의 프레임을 내 시선에, 내 카메라에, 내 마음 한켠에 고이고이 저장했다. 


그리고 마침, 오늘 아침 나의 동행이 되어준 구글 맵 언니가 내가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알려주었다. 

 

런던 살 때, 브릭레인은 딱 한 번 왔었다. 브릭레인 가면 꼭 먹어야 한다던 베이글 먹으러 잠시 잠깐. 정말 그 목적 하나만 갖고 찾았던 곳이었다. 왜냐? 브릭레인은 런던 중에서 치안도 별로고 동양인 여자애 혼자 가기에는 무서운 동네라고 들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순진했고 좁은 시야만 갖고 있었다. 그 탓에 한국에 돌아갔던 내가 런던에서 못다 이룬 과업(?)들에 두고두고 후회했지. 



 내가 찾은 목적지는 Dum Dums Doughnut이라는 곳으로 Box Park에 존재하는 매장이었다. 규모는 꽤 작았고, 매장 내 테이블이라면 바 형식의 2인용 테이블뿐이었다. 오픈 타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 했었기에 망정이지 혹여나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아마 나는 그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여유 따윈 누려보지도 못했으리라. 

 

그곳의 도넛들은 아침 식사대용으로 하기엔 꽤나 단 것들 밖에 없었다. 물론 아침부터 마카롱도 먹고 초콜릿도 먹는데 전혀 부담 없는 위를 가졌지만 아침부터 다 디 단 도넛을 한 개 다 먹어 치우는 것은... 어, 가능하더라. 직원에게 그나마 덜 스윗한 제품을 추천해 달라 해서 구매한 도넛은 딱 봐도 가장 덜 달아 보이던 솔티 카라멜 도넛이었다. 



패스츄리 형태의 원형 도넛이었는데 식감이 쫄깃쫄깃하고 부드러워 크루아상을 먹는 듯했다. 곳곳에 발린 버터 향이 지금도 내 후각을 자극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거기에다 패스츄리 안에서 솔티 카라멜 크림이 흘러나오는데, 이것이 진정 내 시차적응을 위한 피로회복제이지 싶었다. 그 단맛이 조금 심하다 싶으면 함께 주문한 라테를 마셨는데, 내가 런던, 파리 여행하면서 마셔본 커피 중에 그날 마신 커피가 제일 최고였다. 



알바 생이 스팀을 제대로 잘 낸 것인지, 아니면 그날 내 몸 자체가 커피를 너무 원하고 있었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날의 커피는 세상 그 어떤 라테보다 부드러웠고 짙은 안온함이 깃들기에 충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04 :: 어쩌면 처음 보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