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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E Jun 21. 2019

11 :: 횡단 보도 건너편에는

다시만난 그곳


 선민이가 런던으로 오기 전날 사건이 터졌다. 



선민이와 내 여행 전 벌어진 사건은 한국에서부터 꽤 여러 가지였다. 일단 첫 번째 주요 사건은 ‘주객전도 사건’이다. 토트넘 직관에만 미쳐 우리 여행의 가장 주목적이었던 런던 카운트다운 티켓을 사지 못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데, 토트넘 직관 티켓팅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바보 둘은 카운트다운 티켓팅에서 광탈해도 쌌다. 사실 광탈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웠던 건... 티켓팅 날짜를 잘 못 알고 뒷북을 쳤다는 것이 그 사건의 주요 요지다. 우리가 티켓 판매 사이트에 들어갔을 땐 이미 ‘솔드아웃’이라는 글자만 잔인하게도 빽빽이 들어차 있었기에. 그래, 광탈보단 ‘그냥 애초부터 탈락’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래 불꽃은 어차피 하늘에서 보이는 거니까 템즈 강변 가까운 어디서건 하늘 쳐다보면 불꽃 볼 수 있겠지” 하고 쿨 하게 사건을 일단락 하며 넘겼다. 



 카운트다운 티켓 탈락 사건을 그냥 웃으며 넘기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곧 두 번째 사건이 터진다. 이름하야 머리 두 개가 다 쓸모없는 사건, ‘토트넘경기 날짜 착각 사건’이다. 인터넷으로 우리가 직관 할 경기 시간을 찾아 봤을 때, 토트넘과 울버햄튼의 경기시간은 분명 12월 31일 0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 시간을 기준으로 한 경기 시각이니 그럼 현지에서 12월 30일 오후 15시에 킥 오프 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경기 시간을 기준으로 나를 만나기 전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잠시 기거 할 예정이던 선민이의 저가 항공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었다. 그렇게 비행기 티켓부터 구매하고 경기 티켓팅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냥 심심풀이로 토트넘 웹사이트에 들어갔던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 날짜가 현지 시간으로 12월 29일 오후 15시로 ‘변경’되어 있었던 것이다. 분명! 분명 나도 선민이도 12월 31일 00시로 보았고! 그렇게 되면 현지에서는 12월 30일 15시에 경기가 시작되어야 함이 옳은데! 왜!! 대체 왜?!?!? 홈페이지에는 12월 29일 15시 경기로 올라와 있단 말인가?! 설마, 설마 해서 런던에서 기거 할 예정이었던 한인민박 사장님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정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12월 29일 경기 말씀이시죠?’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젠장!!!!!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내 머리와 선민이의 머리는 텅 빈 것처럼 아찔해졌다. 당장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런던 가는 비행기 티켓이 있을까? 가격은? 우리 가난한 대학생도 아닌 그냥 백순데... 우리 토트넘 포기해야하는 거야? 어떡하지? 우리 이번 여행 일정, 그러니까 우리가 만날 때 마다 작성한, 그러니까 근 4개월가량 작성했던 우리 여행 일정은 모두 12월 30일 경기를 기점으로 이뤄진 일정들인데... 우리 대체 무슨 뻘 짓을 한 거야? 하며 그저 너털웃음만 나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던 끝에 결국 선민이는 비슷한 가격의 저가 항공을 겟 하는 방향으로 선택지를 돌렸다. 그래, 토트넘 직관은 포기 할 수 없었다. 아니, 토트넘 직관이라기보다는 손흥민을 가까이서 보는 걸 포기 할 수 없었다고 해야 옳다. 



 꽤 많았던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우리는 이제 드디어 런던에서 보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만나기 전날 까지 문제가 도진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 나와 런던에서 조우하기 전까지 선민이는 프랑크푸르트에 머무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런던 스탠 스테드 공항으로 도착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나도 몰랐고 당사자인 선민이도 몰랐고,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꽤 오래 기거한 한인민박집 사장님조차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공항이 두 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름조차 생소한 공항이었기에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이름 모를 공항이 선민이가 출국할 때 이용해야 할 공항이었는데 문제는 해당 공항은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조차 잘 사용하지 않는 공항이었던 탓에 시내에서 공항으로 가는 이동편이 많이, 아니 거의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른 새벽 비행기를 탑승해야했는데, 새벽에 그 공항으로 가는 교통수단은 전무후무했다는 사실... 진짜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일 수 있구나... 하는 게 우리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 소식을 전해들을 때 나는 트라팔가 광장에 앉아 나 혼자만의 런던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런던 하늘을 붉게 적시는 노을을 바라보다 보니 감성에 흠뻑 젖어 들었던 나는 사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트라팔가 광장을 아득히 채우던 팝송의흥에 취해 영혼 없는 ‘어떡해’만 연발했다. 나중에 선민이가 말해줬는데 내가 걱정하다 말고 “야, 여기 분위기 진짜 미쳤다.” 하는 소리를 했다고... 아무래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의 진짜 마음의 소리가 울려 퍼졌었나 보다. 나는 진심으로 걱정했었는데. 그때 내 마음은 진심 아닌 게 없었는데 말이다. 



 각설하고, 옛 말에 모로 가든 제대로만 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모든 방향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굴곡을 넘고 유럽 대륙의 고공을 날아 선민이는 런던에 무사히 도착했고! 나는 이제 달뜬 걸음으로 선민이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런던에서 드디어 내 오랜 친구, 선민이와 만나다니! 내 인생에서도 선민이 인생에서도 모두 처음 있는 일이라 굉장한 낯설음이 진동하면서도 처음 느끼는 이 설렘이 그저 좋았다. 평생 이 기분만 느끼고 살라고 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까에 대한 기대보다는 지금 현재만을 계속 즐기겠다는 깊은 행복함만 가득했다. 그리고 드디어 저기 저편. 짧은 횡단보도 건너편에 작지만 단단하고 믿음직한 내 편안한 동양인 메이트가 웃으면서 나를 활짝 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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