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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미 Nov 26. 2023

남편이 진짜로 미워

관계의 변화(1)

아이를 낳기 전, 그러니까 가족 구성원이 나와 남편 단둘이었을 때를 떠올려본다. 남편이 취직을 한 후로는 줄곧 바빴기 때문에 평일에 무언가를 함께 한 추억은 많지 않지만, 주말마다 인근 공원을 산책하거나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곤 했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날들이었고, 우리는 손을 잡고 길을 걸었으며 자주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긴 했지만 아이를 낳기 전 우리는 아직 연애를 하는 기분으로 일상을 꾸려갔다. 



아이를 뱃속에 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찾아왔음을 알았을 때의 설레고 들뜨는 감정은 아이를 낳기 전날까지 쭉 지속되었다. 남편은 몸이 무거운 나를 항상 배려했고, 먹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말에 두말하지 않고 먼저 나서서 나를 기쁘게 했다. 물론 임신 후의 호르몬 변화 때문에 별것 아닌 것에도 서운하곤 했지만, 대개 사소한 일이었고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니까 그런 줄로만 알았다.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될 아이에게만 관심이 쏠려서, 남편에 대한 감정이 변할 것이라고는, 그러니까 우리의 관계에 변화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이를 안고 조리원에서 퇴소해 집에 돌아온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도, 분유를 타 주거나 이유식을 먹일 때도, 가득히 쌓인 설거지를 할 때도, 허겁지겁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에 겨우 들를 때도, 우는 아이를 안고 땀을 흘리며 달래줄 때도 남편은 내 곁에 없었다. 아이를 열 달 뱃속에 품으며 고생한 것도 나, 낳느라고 죽을 뻔한 것도 나, 돌보느라고 힘든 것도 전부 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왜 신은 남자에게 젖(!)을 주지 않았는지, 젖과 자궁 중 하나는 남자에게 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지, 낳고 기르는 것이 왜 모두 여자의 영역이 되도록 했는가를 소리높여 원망했다. 



부부는 하나의 ‘육아 공동체’가 되어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전투에 뛰어든 전우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육아전우가 없었다. 친정과 시댁도 모두 멀어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아이를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였다. 나는 남편에게 자주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내가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남편이 나를 이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만 같았다. 남편도 나름대로 생활전선에서 고생하느라 힘들어했다.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토닥여도 부족할 시간에 화를 내고 싸웠다. 가장 사랑하던 사람을 가장 원망하게 되면서 사랑이 분노로 변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감정으로 살아가던 날들이었다. 



나에게 제일 중요한 자리를 아이가 차지하면서 남편은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늦은 시각, 남편이 녹초가 되어 돌아와 회사에서 있던 힘든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그에게 똥기저귀가 든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오라고 대꾸했다. 나는 남편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싶어하면서 정작 그의 감정은 쉽게 무시했다. 불행의 중심에 내가 서 있었고, 남의 아픔은 보이지 않았다. 나도 외로웠지만 그 역시 마음이 허한 날들이었으리라고 짐작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이의 어린 시절을 마음껏 보지 못한 남편이 얼마나 딱하고 안쓰러운지. 눈 맞추고 방긋 웃고 나에게 달려오던 아이의 귀하고 빛나는 순간들을 오래오래 보지 못한 남편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원망에서 연민으로 감정이 변하자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미처 몰랐던 사실이 지나고 나니 보인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나날들에서 나는 가장 행복했다. 사랑스러운 순간을 만끽할 수 있어서. 그때의 아이를 충분히 안아주고 사랑할 수 있어서.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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