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음. 어디서부터 어떻게 너에 대한 마음을 써야 할까. 너를 가졌을 때는 꽤 성가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신의 조화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음 눈으로 보고 안아든 순간부터 말도 안되는 크기의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루하루 크는 너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 말랑말랑한 너를 만지고 안고 냄새 맡을 수 있다는 것. 이 시간에만 주어진 너무나 큰 행복.
육아휴직 2년이 나중에 나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눈물 나도록 아리고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나날들일 것 같다.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사랑을 퍼부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울고 뒤집고 배밀이하다가 기어다니고 잡고서기를 반복하다가
손을 잡아주면 발걸음을 떼다가 옹알이를 하다가
마침내 혼자 걷다가 때로는 넘어졌다가
안기면 안심해서 울음을 그쳤다가 내 손을 놓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다가
활짝 웃으며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가
'아가는 누구꺼?' '엄마꺼!' 라는 대답을 듣고 나를 힘껏 껴안는 그 조그만 팔다리가
힘들었지만, 정말 힘들었지만
그 모든 순간들을 온전히 목격하고 만끽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지불할 수 있어."
먼 훗날 지금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는 예감.
부쩍 엄마에게 애착이 생겨 내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내게 몸을 꼭 붙여야만 안심하고 잠이 들며, 나에게 달려와 안길 때 더 밀착할 수 없을 정도로 꽈악 안긴다. 힘듦도 매일매일 갱신되지만 이런 장면들로 모든 게 보상된다.
내가 아이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너무 제한적이라 아쉬울 정도다. 손으로 쓰다듬고, 꽈악 안아주고, 뽀뽀를 퍼부어도 마음을 전하기에 부족하다. 그럴 땐 때로, 아주 가끔이지만 눈물이 핑 돈다.
내가 요즘 제일 많이 의지하는 대상은 나의 아이이다. 이 작은 아이에게 뭘 어떻게 의지한다는 걸까. 그러나 내가 불면으로 괴로워할 때 옆에서 곤히 자는 아이의 손을 가만히 잡으면 그게 그렇게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될 수가 없다. 이 세상에 아이와 나 단 둘뿐인 것처럼,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오은영 박사님이 육아의 최종목적은 독립이라고 했다.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때로는 아찔하다. (물론 그때쯤 되면 제발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할 수도 있다. ㅎ) 훗날 아이가 커서 스스로의 길을 가면, 내 품을 떠나 너른 세상으로 가면, 지금 이 순간을 많이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몸은 힘들지만 애착과 사랑으로 더없이 충만했던, 서른셋의 날들을.
엄마한테 너의 시간을 공유해줘서 고마워.
너의 곁에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자리하게 해줘서 고마워.
어떤 생명체에게도 가져본 적이 없는 마음을, 매일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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