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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책임:도망치기보다 버티기로 했습니다

상상 그 이상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by 세림


'아... 내가 미쳤다고 여길 왔을까?!!!"


잘 다니던 파견 회사를 그만두고 커리어를 쌓겠다며 회계 사무소로 이직했다. 비록 몸은 고단해도 2~3년 후를 봤을 때 결단코 후회 없을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나의 확신이 배신으로 변하는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역시 인생이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길이 가시밭길이 될 수도 꽃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또 느꼈다. 인생의 경험이 쌓여 선택에 큰 실수는 하지 않을 거라 자만했는데 역시 인간이란 망각에 동물이라 쉽게 잊고 또 쉽게 당하고 말아 버린다.


나는 감정 중시 F성향이 강한 편이다. 이 섣부른 감성과 감정은 이성을 취하게 만들어 가끔은 나를 상상하지 못한 순간에 떨어트려 놓게 된다. 이미 자각했을 땐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의 판도라 상자가 활짝 펼쳐진 것이라 도망칠 수도 없다. 이번 이직에 따른 결과 역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다. 너무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돈 관리하는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 마음먹었음에도 당장 취업 가능하다는 것에 현혹된 내 탓이다. 어쩌겠는가! '그래! 피할 수 없다면 이겨내수밖에'. 주어진 상황이 즐길 수 없는 어려움의 연속이었기에 '이겨내자'는 굳은 결심까지 필요했다. 지금까지 어떤 상황도 호락호락한 순간은 없었기에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고 1년만! 딱 1년만 버텨보자 마음먹었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어서 내가 이런 글까지 쓰게 되었나 생각해 보면...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의 치유를 하고 싶어 연재를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다. 1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앞으로의 1년은 어떤 마음과 의지로 버텨야 할지 글로 정리해 마음을 비워내고 다시 정화할 시간이 필요할 정도니까.




20대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3월 제조 및 판매 겸업 중소기업의 비서로 취업했다. 그곳에서의 3년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취업 후 1년 만에 비서에서 인사팀으로 전환배치 되어 짧은 인수인계를 받고 2년을 버텼다. 월급날이 익월 5일이라 그때 당시 전산화가 완벽하지 않았기에 엑셀로 정규, 계약, 일용 직군을 나눠 대략 300명의 급여(수당 정산 등)와 연차, 퇴직금까지 수기로 계산하고 결재까지 올리려면 초반 2일은 철야 작업을 해야만 해야만 했다. 하지만 몸은 힘들어도 성취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때 만난 동갑내기 동료는 20년 가까이 나의 절친으로 남아있다.


그다음 회사는 IT 기업으로 인사, 총무 업무를 도맡아 하며 남초 회사에서 유일한 여직원으로 일했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끝낸 후에도 회사의 대표는 나의 처지를 이해해 주고 재택근무와 탄력적 근무를 병행할 수 있게 배려했다. 비록 회사가 경영악화로 폐업을 하기까지 월급도 제때 못 받고 퇴직금도 포기해야 했지만 일말의 아쉬움도 없었다. 가족 같은 기업이 있다고 믿도록 해준 고마운 회사였기에 나 또한 해줄 수 있는 모든 배려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내가 경험한 회사들은 '개인의 이익'을 먼저 따지기 보다 '공동체 의식'을 갖고 회사가 더 나은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곳이었다.


곳의 회사 이외에도 이 한 몸 거쳐간 회사들 모두 끝까지 좋은 마무리를 지어왔다. 그래서 내 머릿속엔 기본적인 회사 구조가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이게 아마 신입과 경력의 괴리감이지 않을까.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이 있듯 아예 경험이 없는 '신입'이었다면 어땠을까?! 이직한 회사는 내가 그동안 경험한 회사 경험을 무색하게 만들었고 경력은 바람처럼 사라지게 만들었다.


모든 게 새롭게 시작되었다. 나는 경력자가 아닌 진정한 신입으로 태어나야만 했다.


회계사무실은 세무서의 신고기간과 맞물려 돌아간다. 12월 입사하고 보니 전임자는 이미 퇴사 후 자리에 없었고 일반 회사처럼 인수인계서 역시 없었다. 인수인계서가 왜 없는지 물어보니 업종의 특성상 만들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12월 입사해 한 달은 전임자가 해놓지 않은 파일 정리와 회사 파악부터 시작해야 했다. 무엇을 집중해서 봐야 하고 어떤 걸 조심해야 하며 반드시 놓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없었다. 내가 알아서 지난 서류를 분석하고 낯선 더존이라는 프로그램을 클릭해 가며 혼자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나보다 몇 개월 먼저 입사한 동갑내기 동료 A 역시 깊은 대화를 하기는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곳은 각자 맡은 거래처를 담장자가 알아서 신고하고 마무리 짓는 각자가 '개인 사업자'를 낸 느낌의 단순한 공동 사무실 셰어 파트너 수준이랄까. 모두가 굳게 방어벽을 쳐 신입이 들어갈 틈의 여지가 없었다. 다가가려는 마음 하나하나 튕겨져 나갔고 경험했던 회사의 기본적인 공동체 의식과 협력은 일찍이 버려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입사 후 한 달이 지나 자멸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경력자에겐 누워서 떡먹기일 원천세 신고와 부가세 확정 신고. 거기에 근로소득 지급조서 제출 마감일까지 있는 달이었다. 아무리 회사 경험이 풍부해도 난 최저임금을 받고 근무를 시작한 신입 사원에 불과하다. 그동안 일한건 다 잊고 새롭게 배우는 마음으로 임하라고 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전 직장에선 역으로 내가 세무대리인에게 일을 맡겨봐 왔지 직접 세무 신고를 해본 경험은 없었기에 더존을 다루는 방법부터 홈텍스에서 세금을 신고하는 일까지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웠다. 거기에 회사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입사하자마자 내가 맡은 회사는 법인과 개인 합쳐 수십 개가 넘었다. 여기에 성실 사업장과 면세 사업장까지 합치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한 번의 실수로 가산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인수인계도 없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유튜브로 더존 사용법을 배우고 익혀야 했다. 일 하다 모르는 걸 물어보면 돌아오는 말은 '퇴근 후에 공부하세요. 이 업종은 스스로 공부해야 성장하는 곳이에요'. 아니 기본 베이스는 어느 정도 알려줘야 뭘 공부해야 하는지 알 텐데 어디서부터 공부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 상황에서 맡은 거래처는 수십 군데. 안 그래도 불안도가 높은 나는 불면증이 다시 시작됐다. 매일 내 영혼은 죽고 또 죽어 점점 폐허가 되어가기 시작했고 회사에서는 말 문을 서서히 닫게 되었다. 고작 출근 한 달 만에 시작된 악몽의 나날들이었다.


모르는 건 죄인이라 질문 하나 할라치면 수십 분 혹은 몇 시간을 고민하고 질문해했다. 분명 모르는 건 물어보라 하였고, 신입은 실수하며 배운다고 이야기했음에도 실무에서는 각자가 자기가 맡은 업무를 처리하기 바빠서 신입의 감정이나 기분을 배려할 틈 따위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신입의 시선에서 날 선 말 한마디 눈빛 한 번에 죄인처럼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정확히 1월부터 넘치는 일에 신고 마감시간을 지키려고 야근이 시작되었고 주말 근무는 덤으로 따라왔다. 더 큰 문제는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1월에 있었다는 사실. 연차도 없는 회사에서 입사 한 달 만에 하루를 쉰다고 말하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여초 회사에 기혼자는 나 혼자였다. 공감을 얻는 것은 사치다. 하지만 외동딸의 졸업. 지나가면 다시없을 졸업식에 나는 가야 한다.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돌아온 말.


"졸업 식 끝나고 출근하세요..."


연차 휴가가 있었다면 당당히 휴가계를 제출하고 마음 편히 아이 졸업식에 참여했다가 가족과 밥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낼 나였다. 눈치가 보였지만 이 단 하루만큼은 회사 걱정 없이 가족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도 입사 전 스케줄을 인정받아 무사히 넘어갔다. 진짜 그런 줄 알았다. 그 일이 터기지 전까지는. 동료 A는 내가 출근하지 않은 그날 아침 갑자기 아프다는 이유로 당일 결근을 해버렸다. 동료 A는 내가 출근하기 전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이때부터 그녀와의 경쟁인 듯 경쟁 아닌 대립 구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경쟁의식, 무시하는 태도들은 업무의 벽에 부닥쳐 매일 전쟁을 치르던 내게 또 하나의 장벽처럼 느껴졌고 더욱 퇴사를 갈구하게 만들었다.


이십 대 이팔청춘도 아니고 나이 마흔 넘어서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으며 여기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내 발등 내가 찍었다.' 누굴 탓할 것인가! 마흔이 넘은 인생을 살면서 무언가를 이토록 쉽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최단기간에 퇴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는... 더 바빠지기 전에 퇴사하고 싶었다. 확신이 없는 업무와 공감은 일도 없는 적대적 동료 관계는 나의 영혼을 파괴시킬 것이 뻔했다. 하지만 짧은 기간 근무하고 쉽게 퇴사를 결정한 적은 여태껏 없었기에 '내 마인드가 문제인가?', '그동안 너무 편한 회사에서만 일을 했었나?"라는 생각으로 내 탓을 하며 퇴사하고 싶은 나의 결심을 의심했다. 목숨을 넘나드는 출산을 하고, 인내심을 최단기간 끌어올릴 수 있는 육아를 해온 나였는데 고작 한 달 만에 퇴사 생각이라니. 버텨보고 싶었다. 매일 지옥 같은 출근이었지만 그만둘 땐 그만두더라도 이 바쁜 신고기간은 버티고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바쁜 시기에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할 배짱도 없었다. 어쩌겠는가 마음먹었다면 버텨야 한다. 도망칠 수 없다면 이겨내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도망치고 싶은 그 마음을 역으로 이용해 흘러가는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기로 다짐했다.




<상황을 바꾸는 마인드셋>

아니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 내 탓이 아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뿐이다.

내가 이렇게 모자란 사람인가? - 부족한 걸 채우는 게 삶이다

도망칠까... 사라지고 싶다... - 도망칠 마음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자! 사라질 마음으로 세상과 맞짱 뜨자!


매번 마인드셋 하며 마음을 새로고침 한다고 해서 바로 인생이 바뀌거나 회사에서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이런 마인드셋을 함으로써 자신을 오로지 바라보며 위로가 격려를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격려와 위로도 분명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받아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다시 곱게 펴고 꼬메는 방법은 단 하나 자기 회복 탄력성을 키워내는 자기 사랑이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지금 회사에서 학교에서 타인에 의해 괴롭고 힘든 상황이라면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지 말고 거울에 비친 자신과 더욱 많이 대화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꼭 갖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매일 애쓰고 있잖아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우린 알잖아요. 매일 얼마나 스스로 애쓰고 노력하는지. 오늘도 너무 많이 애쓰셨습니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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