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_ 아빠, 아빠는 사랑을 했지

어쩌면 소설

by 이윤서

아이는 사랑에 쉽게 빠졌다. 쉽게 마음을 열었고 쉽게 진실됐다. 작은 친절에도 기뻐하고 감사했다. 자신의 것을 챙기는 법을 몰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했다. 이런 성심은 아이의 아빠에게서 왔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엄마는 기억이 나지 않음으로 그냥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린 날이 떠오른다. 아이는 작은 손으로 고구마 껍질을 깠다. 손톱에 고구마가 끼었지만 붉그스름한 그 껍질을 까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고구마 하나 까는 일에 그 커다란 집중을 하는 아이를 아빠는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웃었다. 머리에 뽀뽀를 했다. 아이는 아빠의 뽀뽀보다 고구마가 더 중요했다. 그럼에도 훗날 그날의 아빠 웃음을 떠올릴 땐 아빠가 딸을 사랑했다는 증거가 되었다. 아이의 아빠는 모든 퇴직금과 있는 돈을 다 아줌마에게 주었다. 순대 국밥집을 차렸고 그 가게도 아줌마 명의였다. 아이는 그런 아빠가 답답했지만 아빠가 그래도 가장 오래 만난 여자이기에 이번에는 아빠가 안정되기를 바랐다. 더 이상 누군가의 품이 그리워 떠돌지 않기를 바랐다. 서툴었던 아이의 사랑만큼 아빠의 사랑도 서툴었겠지. 부녀관계라는 사실을 어디서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둘의 사랑은 비슷했다. 마음만큼 전하지 못해서 늘 스스로를 애처로이 바라보며 고독한 방으로 숨어 들어간 그 습성도 닮았지. 아이의 아빠는 외로움을 못 견뎌했고 혼자 있는 밤을 무서워했다. 초록병들이 쌓어야 잠이 들 수 있고 그조차도 두세 시간 뒤에 출근을 위해 쪽잠을 잤다. 마음이 허하면 몸을 괴롭힌다. 몸이 망가지는 것을 보면 정신이 마음이 망가지는 일은 더디 보인다. 그렇게 외로운 밤들을 오래오래 견디다 만난 사람에게 아빠는 아빠의 최선을 보였을 테다. 아이는 사랑이 뭔지는 몰랐지만 아빠가 외로운 사람이고 아빠의 옆에 여자들이 없다면 아빠의 몸이 더 빨리 망가질 거란 걸 알았다. 빈털터리로 돌아온 아빠는 그제야 자신의 자식들을 찾았다. 아이는 그렇게 아빠가 돌아와 기뻐했는지도 모른다. 아빠랑 다시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고, 술 한 잔을 나누는 그날들을 기뻐했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의 섣부른 사랑에 그렇게 망가진 두 부녀가 마주 앉은 식탁은 나름 웃음이 돌았다. 아빠는 술이 취하면 모든 아픔을 자꾸만 아이의 탓으로 돌리기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그 지겨운 대화가 이어졌지만 취하기 전까지의 식탁은 멀리서 보면 평범한 가족의 식탁이었다. 상처로 얼룩진 사람들이 서투른 사랑을 보이며 그래도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밥을 먹는 식구가 된다. 오래가지 않았지만 아이는 언제든 아빠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아이의 아빠는 아이가 돌아오길 기다리겠지. 오래 참고 견디는 사랑이 서로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미룰 수 있는 만큼 그 서툰 사랑을 미루겠지. 사랑이 많은 그들은 결국 다시 둘러앉아 식사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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