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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Nov 26. 2024

나는 '효도할게요'를 입에 달고 살던 딸이었다



#나는 '효도할게요'를 입에 달고 살던 딸이었다

나는 부모님에게 무심한 딸이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가시나의 표본이었고 부모님에게 '사랑해요'라는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고향을 떠났다. 타지에 있는 대학교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방학 때만 집에 내려가고 연락도 자주 하지 않았다.


나 홀로 떠나는 해외여행에 재미가 들려서 스무 살 초반, 혼자 겁 없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학기 중에는 부모님에게 휴학을 통보하고 나 홀로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하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거 내 마음대로 하고 살았고 심지어는 부모님에게는 말도 안 하고 손목에 타투를 새겨서 집안을 발칵 뒤집은 일도 있었다. 


그만큼 나는 '내 멋대로' 사는 딸이었다. 여기저기 사고치고 다니는 골칫덩이 딸은 아니지만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딸' 임은 분명했다. 매해 어버이날에는 편지를 썼다. '올해부터는 효도할게요', '앞으로 돈 많이 벌어서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해 드릴게요' 하지만 나의 결심은 스무 살 후반까지 지켜지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서른이 넘고, 나의 삶이 안정되어 가자 조금씩 부모님이 보였다. 그리고선 내가 늘 다짐했던 '효도'를 그제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엔 일하느라 바빠서 못 내려가고, 여름휴가 때도 일하느라 바빠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마음가짐은 '효녀'가 되기로 했지만, 먹고사는 일이 바빠서 쉬이 하지 못했다. 



#전화 한 통으로 '효도'를 이뤘다

그러다 내가 진정한 '효녀'가 된 순간이 있다. 참 슬프게도 아빠가 암에 걸렸을 때였다. 아빠가 췌장암 4기로 암투병을 할 때 나는 작은 습관을 하나 만들었다.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하기 


언뜻 들으면 별 거 아닌 것 같고, 언뜻 들으면 부모님이 귀찮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생각해 보면 같이 사는 가족은 매일 얼굴을 보고 살지 않는가? 그러니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해서 목소리를 듣는 건, 어떻게 보면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나는 아빠가 암 투병을 했던 1년 9개월 간의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전화를 했다. 전화해서 하는 말은 늘 똑같다. "오늘 하루 어땠어요?", "식사는 뭐 드셨어요?", "컨디션은 어때요?" 그렇게 전화를 하다 보면 우리 부부의 사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내가 다니는 회사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어쩌다 전화를 늦게 하는 날이면 아빠가 먼저 나를 찾는다. "오늘은 바쁘니?"라고 말이다. 


핸드폰을 열고 아빠의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건다. 아빠한테 안부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오늘 하루 일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시간은 고작 1~2분 밖에 되지 않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자 이것은 곧 아빠와 나와의 '습관'이 되었고 '생활'이 되었다. 그리고 훗날 지금 이 순간에 '추억'이 되었다. 나는 아빠를 추억할 때 늘 떠올린다. 내가 전화를 했을 때 반갑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불러주던 아빠의 목소리를 말이다. 


가족이 암에 걸리면 추억을 많이 쌓으라고들 한다. 여행을 가거나 평소 일상을 영상으로 찍거나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하루에 한 번씩 인사하고, 대화하세요"라고 말이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인데 그 기억이 쌓이고 쌓이면 하나의 형상이 된다. 굳이 영상을 보지 않아도, 녹음 파일을 듣지 않아도 아빠가 하나의 형상이 되어 내 안에서 자리한다. 아빠는 시시때때로 나에게 말을 걸고 나에게 웃어준다.  


그래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 효도라는 건 진짜 별거 없구나. 함께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구나' 라고 말이다. 비싼 차를 사주고 집을 사주고 용돈을 주는 것도 좋은 효도이지만, 다정한 말 한마디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쌓이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효도'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효도라는 건, 지금 당장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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