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사랑해
01.
아빠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딸아, 괜찮아. 실수할 때도 있지! 괜찮아!"
인생에서 중대한 날이 며칠 있다. 학창 시절의 중대한 날을 꼽으라면 둘도 생각할 것 없이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즉 수능날 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의 학업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인 동시에 학생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험이다. 나는 영어 점수에 남다른 자신이 있었기에 수능을 치자마자 집에 와서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로 영어 점수를 매겼다. 그런데 맙소사! 영어 듣기에서 답을 밀려 쓰는 바람에 생각지도 못한 낮은 점수가 나와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도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훔쳤다.
실의에 빠져있는 나에게 아빠는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하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괜찮다'는 말속엔 분명 괜찮지 않음이 존재했음에도 분명했다. 영어 점수가 낮게 나오면 내가 가고 싶어 하는 대학에 지원할 수 없는 괜찮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아빠는 '괜찮아'라는 말로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품어주셨다.
02.
25살. 나는 크나큰 방송작가의 꿈을 안고 방송계로 뛰어들었다. <인간극장>, <사람이 좋다>와 같은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는 휴먼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방송생활 10년 차만에 밤샘 작업, 비정규직의 불안함, 건강 악화 등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말았다.
교양 방송작가 10년 차면 메인작가를 달아야 하는 시기였지만, 나는 결국 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갖은 변명과 핑계 뒤에 숨은 채 방송계에서 도망쳐버렸다. 나는 스스로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실패한 방송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때 아빠의 단순한 위로가 내 마음에 큰 힘이 되었다.
"딸아, 괜찮아. 넌 실패한 게 아니야. 방송작가가 아니더라도 네가 잘하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야.
넌 실패하지 않았어. 비록 네가 실패했더라도 아빠는 늘 너를 응원해"
03.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우연히 책에서 한 구절을 마주쳤다.
"실패해도 사랑해"
아주 짧지만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구절이었다. 아빠가 나에게 매번 말했던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빠가 전했던 '괜찮아'라는 말속에서는 '사랑해'가 숨겨져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다.
지금의 나는 또 다른 작가로서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방송이 아닌 유튜브와 기업 방송으로 노선을 틀어서 방송보다는 더욱 안정되고 휴식이 있는 삶을 찾게 되었다. 물론, 방송작가 시절만큼 돈을 벌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방송작가 부심'도 없다. 주변에서 '이야~ 네가 이 프로그램을 해?'라는 부러움의 시선도 받지 못한다. 나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작가도, 그 유명한 넷플릭스 같은 OTT프로그램을 하는 작가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행복한 방법을 찾은 작가다.
누군가는 나를 '실패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주류에서 벗어나 비주류를 하고 있는 작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1등 뒤에는 2등, 3등이 있듯이 성공한 사람 뒤에는 덜 성공한 사람도 존재하는 법이다. 세상은 성공과 실패, 이분법적 사고로만 나뉘지 않는다. 성공 뒤에는 덜 성공한 사람, 덜 운이 좋은 사람 혹은 앞으로 더 잘될 사람, 성공을 꿈꾸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스스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아빠의 언어로 위로를 건네고 싶다
"실패해도 괜찮아
실패해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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