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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Nov 22. 2023

자유가 주는 선물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다. 아침 7시 20분까지 등교해서 저녁 10시까지 학교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스케줄. 지금 기억을 다 갖고 저 때로 돌아간다고 하면 다시는 저렇게 생활하지 못할 것 같다. 맨날 창밖 보면서 한숨이나 푹푹 쉬겠지 뭐.

 

저 당시에 좋았던 것들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매일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건 옷도 별로 없는 내게 도피처와도 같았다. 매일 사복을 입어야 했더라면 옷 고르느라 지각하기 일쑤였겠다. 그리고 점심과 저녁을 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내 삶을 꽤나 윤택하게 만들어줬다. 매번 맛있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잠깐의 일탈이라면 야간자율학습 시간 전에 석식을 학교 밖에서 먹는 정도. 그때는 그게 왜 이렇게 좋았는지. 하교 시간이 아닌 시간에 학교 밖을 나가는 일은 그 당시 내게 도파민을 쭉쭉 뿜어내게 했다. 학교 밖에서 먹는 주먹밥이 맛있다기보다는 도파민을 먹으러 가는 느낌이랄까.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하루의 모든 스케줄을 내가 정해서 내가 해야 하는 일. 눈치 줄 직장 상사도 눈치 볼 부하직원도 없는 온전히 나만 있는 직장. 월급도 내가 나한테 준다. 돈을 좀 올려달라 말하고 싶으면 일을 개처럼 하면 된다. 다만 이 수법은 일이 많을 때나 통한다.

 

광고 파트에 있는 내가 광고하면 영업파트에 있는 내가 고객과 상담하고 제작파트의 내가 일을 수행한다. 그렇게 받은 임금은 회계파트에 있는 내가 돈을 적절히 잘 분배해 내게 지급한다. 나는 제작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니 무슨 전공은 미디어 영상인데 별의별 일을 다 하고 있네.

 

처음에는 이런 삶이 꽤나 멋있었다. 내가 온전히 책임을 짊어진다는 거 멋있잖아! 괜히 어른이 된 거 같잖아! 모르는 것들은 직접 부딪히면서 배워가는 일들이 참 재밌었다. 작지만 나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며 하나의 기업체를 운영한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분비되는 도파민들. 낭만 있는 이십 대를 꿈꾸었기에 실패 또한 내게 중요했다. 그러니 모든 것들이 도전이었고 실험이었다.

 

이렇게 일 년, 이 년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무뎌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들을 꿈꾸기에는 지금 하는 일마저도 버거웠다. 새로운 시도? 도전? 아니, 지금 하는 일이나 잘하자. 어쩌면 오늘 하루 겨우 살아낸 것에 만족해하는 이전의 직장생활과 별다르지 않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직장생활은 출근과 퇴근의 개념이라도 있지 지금의 나는 출퇴근의 개념도 없다. 타의로 정해진 일정이 없다 보니 시간 관리의 개념은 무너지고 해야 할 일은 뒤로 밀린다. 갑작스럽게 생긴 예비군 소집은 나흘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예비군을 다녀오고 난 뒤 쌓여 있는 업무를 보며 잠시 잠깐 고개를 돌려 외면하기도 하는걸. 실제로 더 하기 싫어지는 건 나만 그런가.

 

미리미리 했더라면 조금은 마음 편히 할 수 있었을 텐데 마감 기한을 확인하고 나서야 내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서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이건 내가 꿈꿔왔던 모습이 아닌데.

 

 

*프리랜서 : 일정한 소속이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

 

 

자유 계약으로 일하니 더 잘할 줄 알았다. 내 인생을 내가 잘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허나 자유 상자의 리본을 풀고 보니 그 속에 게으름이 있더라. 그것도 빵끗 웃으며 나를 보고 있더라. 한 주먹 패준다. 꾸겨진 얼굴임에도 빵끗 웃는 게으름 덩어리. 질기다 질겨.

 

프리랜서로 살아보니 자유는 내가 정하는 자유가 아니었다. 남들이 정해준 자유였다.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안 하고 싶을 때 안 하는 게 아니었다. 일하고 싶어도 내가 팔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 일하기 싫다 하면 아예 찾지도 않는 곳. 조언을 구할 선배도 동료도 없기에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곳.

 

프리랜서의 삶은 출발함과 동시에 일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하얀 눈덩이가 눈길을 타고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비탈길을 둘둘둘 굴러갈 것이다. 내가 어떤 크기로 어디에 부딪힐지도 모른 채. 그렇게 위태롭고 불안한 삶이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꾸며진 게 아닐까.

 

역시 편한 자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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