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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Apr 12. 2024

나는 너를 믿지 않아 혼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 아니겠어?'


삼십 대 초입을 살고 있는 내가 요즘 많이 하는 생각 중 하나이다. 사람들에게 정은 주지만 곁을 주고 싶지는 않은 이상한 마음. 내 이런 마음을 내 주변 사람들이 안다면 날 안 좋게 생각할 것도 같다. 겉으로는 꽤나 잘 지내는 듯이 지내니까 말이다. 내게 정과 곁을 내준 이들은 어쩌면 배신감마저 들 수 있겠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남중 남고를 나왔다. 한 학년에는 열세 개의 반이 있었다. 한 반에는 사십 명 가까이 배정을 받았다. 한 학년이 끝나고 다음 학년이 되면 같이 올라가는 친구는 대략 한두 명 남짓. 나랑 친했던 친구들은 대개 다른 반이 된다.


나는 혼자 되는 것이 무서웠다. 학교생활에 적응 못 하는 아이로 친구들에게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다. 내게 학기 초는 앞으로 일 년을 어떤 친구와 함께 보낼지가 정해지는 어찌 보면 생존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친구들을 잘 사귀어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작년에 잘 지냈던 친구들이 다른 반이 된다면 그들과 교제하기를 포기했다.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기. 새로운 관계. 좁고도 커다란 교실에서 쪼매난 나는 꽤나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일 년이 지나면 내가 이들을 떠날 것이라는 걸. 그래서 깊은 관계보다 한없이 가벼운 관계를 맺어갔다. 잠시 잠깐 머무를 친구들이 내게는 필요했으니까.


조금 창피한 얘기를 하려 한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보통 내 주위로 친구들이 모였다. 우스꽝스러운 광대였던 나는 그들에게 웃음을 팔고 그들은 그 값으로 내 곁에 있어 주었다. 많은 이들이 나를 중심으로 모여있을 때면 나의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다. 나의 가치는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있는지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내 주위에 친구들이 모이지 않을 때면 나는 애써 자는 척을 했다. 나름의 명분을 만든 것이다. 너희들이 내 주위에 모이지 않는 이유는 내가 자고 있기 때문이야라는 비겁한 명분. 너희들이 내 곁에 오지 않는 게 내게는 상처지만 티를 내지 않을 거야. 그렇게 엎드린 채 속으로 괴로워 하기도 했단 말이지.


철저히 혼자가 되기를 선택한 건 이때부터였다. 매일 가는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생존방식이랄까. 나의 이런 마음을 얘기하면 친구들에게 괴로움만 줄뿐이라며 자위했다. 나를 따라준 친구들은 많았으나 정작 마음 터놓고 얘기할 사람은 만들지 않았던 나밖에 모르던 나. 그렇게 하나둘 떠나보낸 인연들에 나는 의연해야만 했다. 어차피 매년 새로운 관계들을 형성하며 그들로부터 얕은 치료를 받으면 됐으니까. 그때는 관계를 정돈하는 내 방식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한 번씩 이 때의 나를 불쑥 발견할 때가 있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으면 마음에 부담이 생긴다. 누군가 내게 눈물을 보이면 그 사람이 걱정되기보다 나에게 눈물을 보일 정도로 우리가 친한가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누군가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기가 싫다. 아니 관여하는 게 두렵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언젠가 떠날 사람이니까. 내 앞에서 흘린 그 눈물이 이 사람을 쉽게 떠나지 못하게 할 것 같으니까. 인간적으로 사랑하게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사랑하게 된 그 사람이 되려 날 떠날 수도 있으니까.


너가 날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으니 내가 먼저 버리겠다는 다짐. 인간적인 마음이라고 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되게 미운 내 모습. 나는 너를 믿지 못해 또다시 혼자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버린다는 비겁한 생존전략.


그래서 나는 틀어진 관계에 꽤나 무력해지나보다. 꺼져가는 관계의 불씨를 후후 불어가며 살리려 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불을 찾는 일이 내게는 익숙한 일이기에. 그렇게 발견한 새로운 불에 잠시 잠깐 머무르며 그 따뜻함에 위안을 받는다. 이 안온함이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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