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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dion Jun 29. 2021

더듬이

괴이한 꿈결

어제 어떤 꿈을 꿨냐?

나쁜 꿈을 꾸었어.

어떤 꿈이길래?

내가 또 하나 있었어.

도플갱어야?

몰라. 그냥 나랑 똑같은데 무서운 인간이 날 쫓아다녔어.

귀신이 변신한 거래?

글쎄.

대체 어떻게 행동하길래 무서웠던 거야?

그게 자꾸 내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면서 기분 나쁘게 웃었어.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어?

응.

어떻게 반응하던?

대부분은 그걸 못 보는 것 같았는데........ 골목으로 도망쳤을 때 마주친 꼬마 아이가 그것을 똑바로 쳐다보았어.

아이한테 물어봤어? 뭐가 보이냐고?

응.

뭐래?

아저씨들, 왜 머리에 더듬이가 나와있어?

푸흡.

왜 그래?

아니, 그냥 상상하니까 웃겨서. 더듬이 달린 네 모습이.

야! 난 무서웠다고.

그건 그렇고, 너 과제는 다 했어?

응. 너는?

마무리만 하면 돼. 근데 랩톱을 두고 왔다. 좀 빌려 줄 수 있냐?

그래  빌려줄게.


날씨가 어두운 날이었다. 진수는 우산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했다. 어머니 심부름을 나가야 할 때였다. 출근하기 전 아침에 어머니는 카드를 건네며 아버지 양말과 속옷을 사 오라고 부탁해놓은 참이었다. 속옷과 양말을 거의 헤지고 구멍이 날 때까지 그냥 입어버리는 탓에 어머니가 챙겨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진수는 마트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젯밤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늦게 일어났더니 머리가 무겁고 영 개운하지 못한 상태였다. 요 근래는 쭉 그랬다. 늦게 까지 잠이 들지 못하다가 새벽이 뿌옇게 밝아올 때가 되어서야 잠이 들고는 했다. 그리고는 꿈을 꿨다. 언제나 같은 꿈을.


진수는 길을 걸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해도 지끈 거리는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마트로 가는 길에는 상가가 늘어선 구획을 연달아 지나야 했다. 그는 길을 지나치며 흘긋흘긋 가게들을 곁눈질했다. 정오로부터 시간이 흐른 오후였지만 아직 음식점과 술집의 피크타임이 돌아오기까지는 멀었다. 진수의 시선과 발걸음이 멈춰 섰다. 인형 뽑기 가게에 있는 꿀벌 인형이었다. 만화 같은 눈을 달고 있는 꿀벌 캐릭터의 머리 위에는 더듬이가 달려 있었다.


진수는 시선의 초점을 바꿔 가게 창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얼굴과 꿀벌의 얼굴이 겹쳤다. 더듬이. 진수는 눈을 찌푸렸다. 얼마 전에 꾼 꿈이 떠올랐다.  불쾌한 기분이 밀려왔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진수는 이어폰을 주머니에서 끄집어내어 스마트 폰에 연결했다. 곧 그의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시끄러운 락 음악이 흘러나왔다.


마트에 도착하여 자동문 앞에 섰을 때였다. 막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어린아이와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보였다. 진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뭘까? 그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막 열린 문 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고개를 움직여 대각선 방향으로 다가오는 모자를 보았다. 그리고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어디서 봤더라. 맞아, 그 꿈! 눈이 번쩍 뜨인 진수는 고개를 돌려 아까의 아이 쪽을 보았다. 아이와 여성은 이미 저만치 가고 있는 뒷모습만 보였다.  


잘못 본 것 아닐까? 진수는 아까의 기시감이 잠자는 주기가 무너지는 바람에 뇌가 영향을 받은 탓일지 모른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는 일부로 고개를 빳빳이 들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하고 발걸음을 경보 선수처럼 빨리했다. 매장 안은 한산 했다. 고개를 움직이며 내의 매대를 찾는 동안 귓가에 마트의 로고 송이 흘러들었다. 그 노래는 경쾌하게 짧은 가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드디어 진수는 의류코너 한 구석에 내의가 진열된 섹션을 발견했다. 그리로 다가서기 위해 진수는 한 발을 떼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시야가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뿐만 아니라 전신이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귓가에 울려 퍼지던 마트 로고송이 마치 늘어진 카세트 테이프처럼 느려졌다. 진수가 프레임 수가 줄어든 저속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한가운데 던져진 걸까. 그는 애써 눈꺼풀이라도 움직여 보려고 노력했다. 찰나지만 영원같이 눈꺼풀과 씨름한  끝에 그는 가까스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모든 것은 정상이었다. 드문드문 쇼핑객들이 물건을 고르며 움직였다. 귓가에 들리던 마트 로고송도 원래의 속도로 경쾌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지체 없이 몸은 움직여졌다. 긴장이 풀리며 진수는 숨을 크게 내뱉었다. 내가 잠깐 어지러웠나 보다. 그는 머리를 흔들어 아까의 이상한 감각을 털어버렸다. 영양 불균형 탓인지 수면주기 탓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진수는 내의 매대로 걸어갔다.


그는 손에 짚이는 대로 양말과 속옷을 장바구니에 집어던졌다. 대충 사이즈만 맞으면 될 터였다. 이상현상의 원인에 대해 영양 불균형 쪽으로 생각이 기운  진수는 나가는 길에 약국에서 종합 영양제를 사야 할지 고민했다. 그렇게 장바구니를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데 왼편 매대에 쌓여  있는  모기퇴치용품이 보였다. 전자 모기향  약과 스프레이 살충제가 잔뜩 쌓여 있었다. 여름이 다 끝나도록 팔리지  않은 재고들을 전부 꺼내 놓은 듯싶었다.


모기약 특유의 휘발성이 강해 더 독한 인공향이  떠오르자 진수는 자기도  모르게 코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 이어폰을 빼고 계산대에 선 줄 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여자의 찢어질듯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계산원과 쇼핑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매장 입구 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휜머리가듬성듬성 섞인  머리를 늘어뜨린 중년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여자는 바닥에 떨어뜨린 장우산을 집어 들고 앞을 가리키며  공포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외쳤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어리둥절해진  사람들은 여자의 우산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여자는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쪽 계산대를 보고 있었다. 거기에 줄은 선 사람들은 황당한  얼굴로 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여자의 시선이 정확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미친 사람인가 봐. 잠시 난데없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느라 굳어져 있던 마트 직원이 정신을 차리고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고객님?""

"저거, 저것 좀 오지 못하게  해 줘요."

"무얼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거 안 보여요  아가씨? 저기!"

"진정하시고........."


진수는 이쯤 듣다가 귀에 다시 이어폰을 꽂았다. 다른 사람들도 여자가 미쳤다는 결론을 끝으로 자기  일에 관심을 돌리고 있었다. 진수는 자기 차례가 오자  계산원이 바코드를 찍는 동안 모니터에 차곡차곡  쌓이는 물품 몰록과 금액을  체크했다.  바코드 센서를 물건들이  통과했을   그는 이어폰을 빼지 않고 계산원의  입모양만 보고는 카드를 건넸다. 카드를 돌려받고 내의가  쇼핑백을 흔들며 진수는 무빙워크로 가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흘긋 아까의 여자 쪽을 보았다. 여자는 마트 직원과 뒤엉켜 여전히 두려움을 호소 중이었다. 여자의 고개가 돌아갔다.


여자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진수의 시선과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여자가 의식을 잃고 마트 직원의 팔 안에서 축 늘어졌다. 진수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빙워크로 향했다. 진수는 방금 전의 소동에 대해 곱씹었다. 아까 그 아줌마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었나? 환시라고 하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보인다는 건 어떤 걸까? 진수는 궁금해졌다. 깨어있는 채로 꿈을 꾸는 것과 같을까? 꿈. 그는 어제의 괴이한 꿈을 떠올렸다. 기분이 순식간에 불쾌함으로 물들었다. 그는 머리를 흔들어서 그 느낌을 털어냈다.진수는 공원이 가까운 블록 쪽으로 붙어서 가기로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멈춰다. 때마침 그가 멈추자마자 신호가 바뀌었다. 진수는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횡단보도 중간쯤 왔을까?


"풉! 푸하하하-."


맞은편에서 오던 젊은 젊은 여자 하나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이 커지더니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나란히 걸어오던 젊은 남자의 팔을 툭 치더니 고갯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러자 남자도 눈이 커지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까. 진수는 뭔가 뒤틀린 듯 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번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를 애써 무시하며 돌아보지 않고 맞은편 보도의 연석 위에 발을 올렸다.


진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는 기분이 나아질만한 이야기를 떠올리려 애썼다. 코가 연 분홍 빛인 귀여운 아기 고양이와 귀가 쫑긋한 토끼, 작은 발들을 발발 움직이는 햄스터. 그는 지금까지 보아온 그들의 이미지를 되살려내려고 머리를 쥐어짰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지며 어깨의 긴장이 풀리는 듯싶었다. 자연히 그의 조급하던 걸음도 느려졌다. 그는 그네와 정글짐이 있는 아이들 놀이터 근처로 진입했다. 달그락. 덜컹. 보도블록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에 진수는 고개를 돌렸다.


칠순은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떨어뜨린 채 서있었다. 할아버지의 눈은 휘둥그레 떠져 있었고. 입은 듬성듬성 이가 빠진 틈이 다 보일 정도로 벌어져 닫힐 줄을 몰랐다. 그 모습에 진수 역시 놀라서 눈이 커졌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에는 진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가? 진수는 그런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할아버지를 보았다. 설마. 진수는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자 반사적으로 할아버지 근처를 벗어나기 위해 급히 몸을 틀었다.


다시 진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진수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점점 무거워지는 알 수 없는 기운에 그리 멀리 가지 못한 채 정글짐 근처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두려움은 뒤를 돌아보라고 함과 동시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 끝에 그는 겨우 작게 고개를 움직여 뒤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이미 저만치 있었다. 할아버지의 뒷모습에 보다 젊어 보이는 남자가 부축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심호흡을 했다.


" 아저씨?"


불쑥 들려온 부름에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낮추니 한 남자아이가 그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이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까 마트 입구에서  마주쳤던 아이 같았다.


"왜?"
"아저씨, 그거 진짜예요?"

"뭐가?"
"그거요."


아이는 손가락으로 진수를 가리켰다.


"그게 뭔데?"

" 아이 참, 이거요."


아이는 주먹 쥔 양 손에서 집게손가락만을 펴더니 둔 손을 머리 위에 올렸다. 진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그 동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이와 똑같이 집게손가락을 편 두 주먹을 머리 위에 올렸다.


"네. 그거요."

" 이게 왜?"
"되게 신기해요."
"이게?"
"네."


진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서서 아이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거울 앞으로 가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몸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는 아이에게 해줄 적당한 말이라도 지껄여야겠다는 생각만을 되뇌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별안간 그런 그의 마비 상태를 깨는 외침이 날아들었다.


" 당장 우리애한테서 떨어져!"


아이의 엄마인 듯한 아줌마가 바람처럼 달려와서 아이를 뒤에서 끌어당겼다. 아줌마는 아이를 당겨서 자신의 뒤로 보내고는 경계하는 눈길을 떼지 않으며 서서히 멀어져 갔다. 아이는 엄마와 다르게 너무나 천진한 표정으로 진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 모자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진수는 그냥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 집까지 돌아왔는지 모르게 그는 집에 도착해 있었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아버지의 내의가 담긴 쇼핑백을 현관에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새하얗고 밝은 형광등 아래서 그는 커다란 거울 앞에 섰다.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거울 속에서 헤매었다.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지쳐서 축 늘어져서야 거울을 뒤로하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자기 방문을 힘없이 열었다. 문을 열자 그의 발 밑으로 원통형의 물체가 데구루루 굴러왔다. 그는 그것을 주워 들었다. 살충제 스프레이였다. 초가을에 뒤늦게 기승을 부리는 모기 때문에 꺼네둔 것이었다.


진수는 스프레이의 버튼 위에 집게손가락을 올렸다. 누르기만 하면 살충제가 뿜어져 나올  터였다. 그는 통을 흔들었다. 내용물은 아직 반 가까이 차있었다. 그는 가만히 살충제를 돌렸다. 노즐이 그의 앞으로 향했다. 그는 집게손가락 끝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힘을 줄들 말듯 근육이 떨렸다. 그는 이를 악 물었다. 그러나 이내 팔에 힘이 빠지더니 살충제를 쥔 손이 떨궈졌다.  그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뜨거운 무언가가 뺨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괴이한 꿈속에서 빠져나가야 했지만 그의 몸은 더 이상 끌어낼 기운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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