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신팀장 Feb 04. 2021

북한 사람 만나 보셨나요?

북한 아저씨의 초콜릿

   일 하면서, 아니 내 삶을 통틀어 경험한 수많은 만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2019년 7월의 어느 날 중국 훈춘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버스에서 만난 북한 아저씨와의 만남을 떠올릴 것이다.


   내가 중국에 가게 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의뢰 받은 한반도평화관광 연구 수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2019년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 그리고 그 전 해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회동으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가던 시절이었다. 타이밍만 잘 맞았어도 북한을 실제로 방문할 수도 있었겠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북중러 접경지역 답사 및 북한 전문가 인터뷰를 위해 중국으로 출장을 떠났다. 그리고 간 김에 중국에서 러시아로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해 보고 싶어 모든 출장 일정을 마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넘어가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표를 구해 버스 정류장에 이르렀는데 신기하게도 버스 정류장에는 중국으로 버스 여행을 온 한 무리의 러시아인들이 보였다.

‘선’ 만 넘으면 동양에서 서양으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마치 순간 이동처럼 다른 문명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던 순간이다.  


평소 여행해보고 싶었던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난다는 설렘을 가득 안고 러시아인, 중국인이 섞여있는 만원 버스에 올라탔다. 2명의 팀원은 오른쪽 자리에 같이, 나는 왼쪽 창가에 혼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러시아와 중국인 틈바구니에서 중국인보다는 우리나라 사람에 더 가까워 보이는 3명의 남성이 버스에 올라탔다. 게다가 그 중 한 명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일까? 남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럼 조선족인가?’ 계속해서 내 옆자리 그 남자의 국적은 어디인가를 생각하며 1~2시간을 가니 버스가 어느 창고 같은 곳 앞에 멈췄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바로 국경 검문소였다. 공항에서처럼 여권 검사, 짐 검사를 하며 꽤나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이것을 중국 영토에서 한 번, 러시아 영토에서 한 번 총 2번 해야했고 검문에만 2시간은 넘게 걸렸다!)

난 여기서도 내 옆자리 그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어디에서 왔을까?’를 되 뇌이며 그 남자 가까이에 검문을 위한 줄을 섰다. 여권을 꺼내는 순간 포착! 어? 그런데 중국 여권 색깔도 우리나라 여권 색깔도 아니다. 그의 국적이 99% 확실해졌다. 그 순간부터 심장 박동 급상승. 한반도 평화 관광 연구를 하며 정작 북한에도 못 가보고 북한 사람과 인터뷰도 못 해 본 것이 내내 너무 아쉬웠는데 내 옆자리 그 남자가 북한 사람이라니! 태어나서 결혼하고 아들 낳은 순간 다음으로 기쁜 순간이었다.


검문이 끝나고 다시 버스 안. 1시간 가량을 침묵 속에서 팀원들과 카톡을 주고받았다.

나: “북한 사람이 확실해”           팀원 1,2 : “대박 대박”   “꺄오”    

나: “어떻게 말 걸지? 말 걸고 싶어 죽겠어”

“oo아, 나한테 주던 그 박하 사탕 내 옆자리 아저씨한테 좀 드시라고 드려봐 봐”


사실 이 마지막 카톡은 농담 삼아 보냈는데 우리 막내 팀원 정말로 그 박하사탕을 드시라고 건넨다. 옆자리 북한 아저씨는 ‘어, 괜찮은데, 고맙습니다’ 라고 어색한 미소를 띄며 박하사탕을 입에 넣으신다. 아, 그런데 이 절호의 사탕 찬스를 살리지 못 했다. 입이 안 떨어진다. 그러다 어딘가를 지나는데 내가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팀원에게 “여기가 oo이라는 곳이라.” 라고 말하자마자 옆자리 아저씨 기다렸다는 듯이 “맞습니다. 여기가 oo입니다.” 라고 입을 여셨다. TV에서나 듣던 바로 그 북한 말투로! 오, 아저씨도 분명 우리랑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야.


그렇게 시작된 아저씨와의 대화는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할 때까지 장장 5~6시간동안 이어졌다. “북에서는 평양 맥주가 맛있다면서요?” “평양 근처 ooo이 요즘 인기가 많은 곳이라면 서요?” 등의 한반도 관광을 연구하며 축적한 정보를 활용한 질문을 하니 아저씨도 신이 나서 이야기 보따리를 푸신다. 자기는 평양에 사는데 딸은 평양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본인은 러시아와 북한 사이 무역을 하는 회사에 다닌다. 남쪽 음식은 어떤 게 맛있냐? 북에는 출산 휴가가 있는데 남에도 있냐? 등의 질문에 신이 나서 나는 대답을 하고 또 질문 하기를 여러 번. 러시아 영토의 간이 휴게소에 도착했다.


벌써 버스에 오른 지 5시간은 되었나 보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배도 고프고 휴게소에 들려서 초콜릿을 사려는데 우리가 가진 러시아 화폐가 너무 큰 단위여서 거슬러 줄 수가 없단다. 아풀싸!우리 배 고프다 고요! 그 때 옆자리 북한 아저씨, 정의의 사도처럼 나타나셔서 드라마 주인공보다도 더 멋있게 초콜릿을 사 주시는 게 아닌가? 아, 감동의 눈물. 눈물 젖은 빵이 아닌 눈물 젖은 초콜릿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어찌나 죄송스럽고 고마운지. 아저씨의 친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7시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내렸는데 러시아어 한 마디도 못 하는 세 여자는 숙소까지 어떻게 찾아가야 할 지가 막막하다. 그런데 우리 아저씨께서 택시를 잡아준다고 하신다.


아저씨와의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아 내 명함을 드렸다. 그리고 성함을 여쭤봤다. 수줍은 얼굴로 “김oo 입니다.” 라고 답해 주셨다. 아저씨께 마지막 인사로 “나중에 통일되면 꼭 연락주세요” 라며 진심을 다해 말씀드렸다. 아저씨와 헤어지는 순간 가슴 한 켠이 먹먹해 온다. 그 만남이 더 특별했던 것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한국에 돌아온 후 나의 자랑 1순위 멘트는 “나 북한 아저씨가 사 준 초콜릿 먹어본 여자야.” 가 되었다. 나의 자랑거리가 된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나려면 ‘통일’이 되어야 하는데 그 이후 남북 관계는 차갑기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북한 관광에 대한 관심으로 맡게 된 연구가 그 방대한 양 때문에 나중 가서는 애정과 원한이 뒤섞여 있는 한반도 평화 관광 보고서라는 결과로 집대성되었다. 이 보고서는 언제 그 빛을 발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보고서가 한반도 평화의 작은 불씨가 되고, 그래서 죽기 전에 통일이 되어 아저씨에게 남한 초콜릿을 선물하는 그 날이 오기를 꿈 꿔본다.



북한 사람을 만났을 때의 Tip 한 가지

북한, 남한은 대한민국의 ‘한’을 북과 남 뒤에 붙인 우리나라식의 표현으로 북한 사람은 북한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도 남조선이라고 불리는 게 어색하듯이요) ‘한’을 빼고 “북에서는 ooo, 남에서는 ooo” 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대화하면서 계속 북한, 남한이라는 말 대신 북, 남이라는 말을 쓰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무조건 팔아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