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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스 Mar 27. 2024

상세페이지는 길어야 한다는 착각

베니스펫 창업기 3#

브랜드 디렉터로 활동하며 늘 맞이하는 고민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도대체 상세페이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길어야 할까?


상세페이지. 제품 정보가 상세하게 나열된 페이지.

맞습니다. 우리는 이른바 인지->호감->질문->행동->옹호라는 5A이론에 입각한 구매 여정 과정에서 상세페이지를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여기고, 고객들이 제품을 보며 궁금해할 수많은 질문과 의문, 페인포인트를 끝도 없이 나열합니다.


마케터나 기획자들에게 있어서도 상세페이지 기획은 굉장히 중요한 과업 역량 중 하나로서 상세페이지 원고만 전문적으로 작성해 주는 서비스도 많고, 상세페이지 제작 관련 팁을 정리해 놓은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수 십 만회를 넘습니다. 아예 그 내용만 전문적으로 다룬 온라인 강의가 비싼 값에 판매되고 있기도 한데요.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수요가 있어서겠지만, 이렇게 끝도 없는 수 만 픽셀의 상세페이지 스타일은 유독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만 두드러지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향을 부추긴 데는 와디즈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죠. (와디즈에 대한 비난이나 폄하는 절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물론 펀딩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제품에 대한 투자금을 받는 것이니 길게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마땅히 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판매를 하고 있는 제품에 한해서 생각해 보면,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상품 상세페이지가 너무 길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비효율적이고, 요란하고, 소음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신뢰를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생각도 합니다.


어차피 안 읽어요. 리뷰로 바로 들어가지

제가 만나본 거의 모든 소비자들, 잠재 고객들, 업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었습니다. 주변미터라고 해도 되겠네요. 적어도 스무 분께 물어보면 스무 분 모두 저렇게 말씀하십니다. 대부분 이미 유튜브나 블로그,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 추천을 보고 제품 정보에 대한 인지와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서 상세를 보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들이 찾는 정보를 바로 찾을 수 없어 짜증이 난다는 말씀도 많이 들어봤습니다.

저는 이런 의견들을 들으며 제가 가진 문제 인식과 어딘가 천편일률적으로 바뀐 이 업계의 통념과 공식에 싫증을 느낀 게 아주 잘못된 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다시 필립 코틀러의 5A 이론을 적용해서 보면 이미 '인지'와 '호감' 단계는 충족된 상태로 방문하는 것이니 불필요한 정보 전달과 페인 포인트 유발, 반박 격파 같은 단계들은 생략을 고려해도 된다는 생각에 도달합니다.


감도 높은 곳들은 다 짧던데

물론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소위 감도가 높은 곳만 상세페이지가 짧은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어떤 풍토나 문화의 영향도 있는 것 같은데요, 꼭 세련되게 브랜딩이 잘 된 곳이 아니라고 해도, 예를 들어 아마존에 입점한 상품들은 상세가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리뷰 수가 만 개, 이 만 개를 넘어가죠. 국내에서 '상세페이지'가 중요하다며 그 안의 상업적 공식에 대해 목청껏 주장하고, 강의를 팔고 계시는 분들과의 의견과는 영 상반된 양상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제가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들의 상세를 들어가 보았습니다.


프라마
이솝

이솝도 길지 않고요.

룰루레몬

룰루레몬도 이게 답니다.


이들의 원재료와 기술력, 패키지가 어필할 내용이 적어서 상세가 짧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정도면 의도적으로 짧게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말 필요한 정보만 간결하게 압축해서 전달합니다. 아 물론 이들에겐 몇 가지 특징도 있습니다.


1. 이미 인지도와 단단한 팬덤이 있고

2. 온라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오프라인 접점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이들은 상세페이지의 용도를 해당 상품에 대한 모든 질문과 의문을 대답하는 용도가 아니라 '어느 정도 결정을 내린 이들에게 구매를 수월하게 하는 용도'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관점 자체가 다른 것이죠. 아마 이 즈음에서 이런 반박의 목소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정보가 많으면 신뢰도는 높아지지 않는가?


네, 뭐 그 말씀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가능한 많은 변수를 대응하기 위해 많은 내용을 싣고 싶어 하고, '안전장치'를 많이 걸어두고 싶은 마음 십분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 또 묻고 싶습니다.  정말 그 방법밖엔 없는 걸까요?

우리는 정말 이런 과시적인 내용과 돈 몇 백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소비자만족 대상 1위' 같은 타이틀을 믿고 구매하고 있을까요? 저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이런 마케팅 노이즈를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때때로 우리는 고객들을 마치 가상의 인격처럼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온갖 성과 추적 툴로 그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그 데이터 안에서 가능한 많은 단서와 인사이트를 얻고 싶어 혈안이지만, 저는 그럴 때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본인이 쇼핑할 때 어떻게 하시는지 곰곰이 관찰해 보시라고'

우리의 인지 체계와 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판단하고, 때로는 어림짐작 하며 합리적 편향성을 띕니다. 이것을 심리학 용어로 '휴리스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 휴리스틱을 건드릴 수 있는 어떠한 장치만 제대로 가동한다면 상세페이지는 그렇게 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프로덕트, 그래픽을 모두 포함한)을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로 본다면 우수한 상품 디자인과 이를 제대로 표현한 근사한 사진이면 제품에 대한 여러 의심을 쉽게 잠재울 수 있고, 고객들을 진심으로 감동케 해 얻은 수 백 개의 리뷰면(수 십 개여도 됩니다.) 팔만대장경 상세페이지를 충분히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고객들과의 접점에서 제품을 설명하고 소구 할 수 있는 정말 많은 방법들이 있을 것입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현재 준비하고 있는 베니스펫이 속한 '반려견 영양제' 시장도 한 번 살펴봤습니다.

네, 역시 깁니다. 끝이 없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전문 용어를 웅장하고 화려하게 나열합니다. 물론 무작정 이런 경향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마냥 옳은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래서 저는 어떻게 만들고 있냐고요?


베니스펫 상세는 그렇게 길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휠 2~3번이면 끝날 분량일 거예요. 다만 여기엔 분명한 원칙이 가동됩니다.


1. 말의 값을 회복할 것

2. 요란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을 것

3. 그러나 불친절하지는 않을 것

론칭 예정인 '베니스펫 포스트바이오틱스' 상세 페이지 중 일부


저는 말의 값을 다시 회복하고 싶습니다. 정직하게 표현하고 싶고,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 내용을 담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급해하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언젠가 발견해 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관된 목소리만 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불편하게 만들려는 것은 아닙니다. 고객들이 찾는 필요한 정보는 다 제대로 설명이 돼 있어야겠죠. 뒤집어 말하자면 오히려 더 편의성을 고려한 구성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당신이 봐야 할 내용은 이거면 됐으니 불필요한 동선을 만들지 말라는 의미기도 하죠. 끝으로 마케터들의 마케터 세스 고딘이 했던 말을 인용하고 마무리하려고 하는데요.


앞으로 마케터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신뢰를 회복하는 겁니다. 지금 사람들은 마케팅을 의심해요. 스팸 문자를 보내며 자신들을 속이는 일로 여깁니다. 그간 너무나 관심을 빼앗고, 감시했던 결과예요. 사람들에게 뾰족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부족 Tribe 같은 브랜드가 되세요.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물론 시간이 걸리겠죠. 부족을 이끄는 리더가 되기 싫다면? 저렴한 브랜드가 되는 수밖에요. 하지만 싸게 팔기 위한 경쟁은 끝이 없습니다. 아실 거예요.

- 세스 고딘


그렇습니다. '신뢰를 회복하는 것.' 이게 제가 브랜드 디렉터로서 해야 할 일종의 직업적 사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https://www.instagram.com/bennys_pet/

https://www.bennysp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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