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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태훈 Jun 03. 2022

감정과 자폐에 대한 에세이

 after rainman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는 스스로 감정에게 잡아먹힌다. 살인사건들과 자살. 동물임에도 도덕의 탈을 쓰고 태생의 한계를 초월해 신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이성적 능력은 폭주한 감정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스스로를 표현하기만 해도 인간은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말을 못 하고 사회적 체면 때문에 말을 못 해서 비비 꼬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삶은 꼬이기 시작한다. 현실적인 이유나 사회적인 욕망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건 불안이란 감정에 시달리는 사람에 비하면 양반 일지도 모른다.


 불안은 파충류로부터 물려받은 역사가 오래된 감정이다. 적당히 작동해서 좋게 작동하면 좋으리련만 진화의 사전엔 사려 깊은 배려는 없다. 만연한 불안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이를 감당하는 건 의식을 가지고 삶을 견뎌내는 인간의 몫이다. 신경증이 높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많이 정신병으로 고통받지만 또 여성들이 그 불안으로 인해 더 잘하는 일들도 있지 아니한가. 또 남자들은 불안감을 호소하는 여자들을 지켜주고 싶어 하는 순진한 마음에 결혼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는 현실을 일순간에는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기 때문에 이 세계에 있는 여러 가지 장점들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찾으면 될일이다.


 그런 관점에 힘을 주는 트렌드가 있는데 바로 신경 다양성이다. 이 운동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을 병으로 진단'하는 기존의 정신의학의 관행에 반대하고 인간 정신 형질의 극단적인 면도 인간성의 한 측면으로 수용하려는 관점인데 실제로 현실이 그렇게 동작하기 때문에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질이 극단적이다. 이런 표현 보다도 더 나아가간 사람들도 있다. 바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자폐인들이다. 신경 다양성 이론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면 우리의 성질 중 정상의 범주에 속한다 하더라도 어느 측면에서는 자폐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만 그것이 순간적인지, 그 정도가 아주 미미한 건지 본인 스스로가 그것을 참고 지낼 수 있는지, 리스크는 있지만 아직 문제가 되지 않았는지, 또는 사회가 그 사람의 어노잉을 용납해주느냐의 차이가 있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어느정도의 자폐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특별히 자폐인이라 도장은 받은 사람들은 그 다방면에서 존재하는 넓은 분포의 끝단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세계관은 타인의 반응으로 만들어진다. 넓은 분포의 끝단에서 독특한 지능(프로그램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터페이스)을 가진 자폐인들은 주변인들로부터 적절한 반응을 받을 수 없고 결국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나 불안들을 자신들만의 모습의 스티밍(몸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행위)으로 해결한다고 한다.



 여기까지 오면 조금 괴롭다.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잘 표현하는 게 이 세계에서 잘 적응하고 스스로도 괴롭지 않게 살아가는 만고의 불변의 비법인데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태어나기를 감정이 격렬하고 민감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느끼는 능력이 또 표현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고통을 당하다니. 오늘 영화 레인맨과 자폐 부모들의 인터뷰를 보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난 그 영상에서 자폐인들이 외부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사실에 너무나 큰 슬픔을 느꼈다. 외부의 부모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그렇게도 듣고 싶어 하는데... 가장 슬픈 짝사랑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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