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아무 일도 없다고 하니 이런 일이 생기지
애초에 쓸 게 없다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쓸 게 없다고 글을 쓰자마자, 남편이 어떻게 알았는지 너무나도 무궁무진한 글감을 제공해 주었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안 쓸 수가 없다.
나는 여러 성격장애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성격장애적인 특성이라고 한 까닭은 내가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에게 정식으로 진단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격장애가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모른체할 수가 없다. 그중에 가장 뚜렷한 것은 '의존적 성격장애'이다. 의존적 성격장애는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주변 사람을 의지하는 장애이다. 나의 엄마는 불안도가 심하고 나는 몸이 약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 것도 엄마에게 다 맡겨야 했고 결국 '의존적 성격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주변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런 나에게 맞춤형 짝꿍이었다. 까닭은, 남편은 주변을 통제하며 자신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한창 사귈 때에 남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여러 부족한 것이 있다. 그것을 내가 고쳐줄 거다." 남편이 나를 대하는 입장이라는 건 그런 입장이었다.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니 가히 환상의 짝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남편과 결혼하면 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삶은 예측 가능하게 흐르지 않는다. 나는 최근에야 내가 성격장애가 있음을 깨달았고, 의존성 성격장애로 인해서 내가 상당히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주변에서 나를 거부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어떻게 해서든 다시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었다. 누군가와 의견 대립이 있을 때는 나를 희생해서라도 그 의견에 나를 맞추었었다. 그러니 내가 행복할 리가 없었다. 최근에야 나는 내 상태를 깨닫고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남편에게도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과 내 의견이 다른 것을 견디지 못했고, 내가 남편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큰 충돌이 있었다.
남편이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아이는 최근 며칠 동안, 약을 합쳐서 한 병에 담아 먹었다. 쓴 가루약을 단 물약에 섞어서 흔들어서 먹였다. 그런데 오늘 남편은, 가루약 따로 물약 따로 아이에게 먹이고 있었다. 아이는 약을 잘 먹는 편인데 가루약을 먹고는 대번에 "써!"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말했다. "약이 원래 쓰지!" 아이는 약이 쓰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 아니다. 약이 써서 내가 불쾌해! 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것을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여서 아이의 감정을 묵살했다. 보는 내가 불쾌해지려는 때에 남편이 이번에는 물약을 먹였다. 고개를 뒤로 홱 젖히고 아이 물약을 먹이는 모양이 퍽 아슬아슬했다. 아이는 그래도 물약을 잘 받아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물약을 먹이는 데서 터졌다.
아이는 불안도가 높다. 그래서 뭐든 예고를 해 주어야 한다. 특히 자신이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정확히 예고를 해주지 않으면 굉장히 싫어하고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어린이집 선생님도 잘 아시는 사실이라서 상담을 갔을 때 몇 번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내가 '아이가 이런 경우 잘 따라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하면 어린이집 선생님은 '저는 그럴 때 예고를 하는데요. 이러이러할 거라고 미리 예고를 하면 거부감이 줄어요.'라고 답을 해 주셨었다. 아이는 남편이 주는 두 번째 물약을 받아먹지 않았다. 그러고는 "아까 먹었는데 왜 또 먹어!"라고 소리쳤다. 나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는 한 번 먹으면 되는 것을, 가루약 한 번, 물약 한 번에 또 한 번 물약을 먹이려고 하니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아이의 이마를 밀어서 고개를 강제로 젖혔다.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남편에게 다가갔다.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가라고. 나는 그냥 돌아가려다가 남편의 이마를 쿡 밀면서 말했다. "이러니까 좋아?" 남편은 계속해서 가라고 했고, 나는 아이 앞에서 남편과 다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이는 계속 약을 거부했다. 남편은 아이가 먹던 과자를 빼앗았다. 아이는 성질을 내며 내게로 왔다. 나도 아이를 강압적으로만 대하는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으나, 그것을 티내지는 않았다. 아이는 나와 보드게임을 하자고 했고, 보드게임을 하고 난 후에는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남편은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나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이의 특성과, 그래서 약을 먹는 방법이 달라졌으면 미리 예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과, 당신이 예고를 하지 않았기에 아이가 약을 먹지 않았다고 카톡으로 말했다. 남편은 카톡을 보고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갔다.
"00이 과자 먹어도 돼?"
"약을 먹어야 먹지."
"내가 보낸 카톡 봤어?"
"응. 봤어. 근데 약 먹는 건 원래 그렇게 해야 해. 약은 먹어야 하는 거잖아."
"약은 먹어야 하는 거지만 한 번에 먹어도 되고 두 번에 먹어도 되는 거잖아. 그것을 미리 예고하라는 말이야."
"약은 먹어야지."
"먹어야지. 그런데 방법이 틀렸다는 거야."
남편은 끝끝내 약은 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고집했다. 만약 나하고만의 관계였다면 그냥 그러냐고 하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와 관계된 것이니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의 불안을 알고, 아이에게 미리 예고를 할 부분들은 예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가 이해하기를 바랐다.
"나 이거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께 이야기할게."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은, 상담 쪽으로 공부도 많이 하셔서 아이의 특성을 잘 아시는 분이었다. 아이를 대하는 것에 대한 의견 차이이니, 그분께 이야기해서 서로 옳은 것 그른 것을 가려보자고 말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얻는 게 뭔데?"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자잘못을 가려야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잖아. 아이는 아직 어려. 지금 제대로 알아서 대해야지 아이한테도 좋지."
"너 나 도발하는 거지? 왜 날 믿지를 않아?"
나는 화를 내지도,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는데 남편은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순간 너무 무서웠다. 이러면 아이를 데리고 나가겠다고 하자 남편이 제가 도리어 불쾌하다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왜 나를 오해를 해? 왜 이해를 하지를 않아?"
"이건 오해고 이해고 할 이야기가 아니야. 의견이 다른 것뿐이야."
"너 때문에 아이가 약 안 먹은 거잖아. 네가 아니었으면 먹었다고."
분명히 내가 가기 전에도 아이는 약을 거부했었는데,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남편이야말로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 상황을 왜곡시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남편과 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그저 나는 어린이집 원장님께 아이를 대하는 법에 대해서 더 잘 여쭈어 보자고 말을 한 것이었다. 부부싸움에 중재를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간 사람은 남편이었다. 아이는 아빠가 어디를 갔냐며 불안해했다. 나간 와중에도 남편은 내게 카톡을 보냈고, 자신이 다 잘 못했다고 하다가 또 아이 하원은 앞으로 내가 하라고 했다가(원래는 남편이 주로 했었다) 다시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가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는 이 사람이야말로 굉장히 심각한 성격장애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외로워졌다. 내가 의지했던 사람은 어디 갔단 말인가? 이렇게 형편 없는 사람을, 나는 좋아했고 결혼까지 했단 말인가?
전에는 나도 같이 소리질렀고 화를 냈다. 하지만 나는 오늘 화를 내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눈물만 조용히 흘렸다. 나는 남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맞다고 우기지도 않았다. 그저, 어린이집 원장님에게 여쭈어 보자고만 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의 나는 실수한 말도 없고 감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왜 어느 지점에서 꼭지가 돌았단 말인가?
가장 문제는 내가 변했다는 사실인 듯했다. 상호 의존 관계라면 누가 잘났고 잘못한 것이 없다. 서로 소리지르고 화를 내고 상처를 입혔으니 서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런 상황이면 남편도 지지 않는다. 저도 미안하지만 또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렇지만 내가 그를 의존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더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고 그를 의지하지도 않고 그저 화를 내는 그를 바라보고만 있다면 이제 그는 더는 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뭘 해도 지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순종했던 아내가 변해버리고, 의존했던 아내가 냉정해지니 더는 제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것일까.
그러니 나는 남편을 다시 죽여야 겠다. 칼로 찌르고 독을 먹여서 죽이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 속에서, 바오밥나무만큼이나 크게 자랐던, 그래서 그를 의존함으로써 내가 살아왔던 것을 이제는 반대로 해야 하겠다. 바오밥나무를 잘라버리고, 그에게는 어떤 감정 표출도 하지 않으며, 그가 화를 내고 제 감정을 못 이겨 길길이 뛰는 것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하겠다. 그가 경계성 성격장애인지 자기애성 성격장애인지 편집증적 성격장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같이 호응해서 지지 않아야 하겠다. 그러면 시간은 흐를 것이고 그 역시 저 알아서 살아갈 길을 찾아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