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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Nov 12. 2024

쓸 게 없다

이번주는 아무런 쓸 게 없다

브런치 공모전에 나가려고 글을 모았다. 공모전을 나가려면 브런치북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브런치북을 만들려면 일주일에 한 번은 적어도 글을 내야 한다. 나는 <남편을 죽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라는 제목의 브런치북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죽이고 싶은 날이 있겠지 싶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이 뭔가, 일주일에 서너번은 그런 날이 있었기에 글을 쓰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왠걸,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꾸준한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날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나의 정신건강에는 유익한 일이지만 글감이 없어지는 것은 좀 아쉬운 일이다. 이 글은, 그러므로 어제 썼어야 할 글을 쓰지 못한 변명 같은 글이다.


지난 주에 나는 참 힘든 일을 겪었다. 남편의 말에 너무 화가 나서 아이를 씻기던 샤워기를 집어 던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문을 쾅 닫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당시에는 내 행동이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태도에 비하면 나는 매우매우 참고 참다가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고 내가 내 감정에 너무 빠져서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일이 있고 난 하루 후에 남편은 슬슬 내 눈치를 보면서 괜히 나를 안아주곤 했다. 그리고 아이 앞에서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야."라고 말했다. 아이가 조금 컸다면, "그럼 아빠는 평소에는 엄마 안 사랑해?"라고 물었을 거였다. 원래는 절대 먼저 안아주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가 그러는 것이 징그러워서 저리 가라고 했으나 그는 굴하지 않고 그런 짓(?)을 해댔고 덕분에 하루만에 내 화는 풀렸다.


하지만 그 화는 실상 남편을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나를 향한 것이었다. 아이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인 것이 용서하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그러지 말자고 수차례 다짐을 했건만, 왜 또 그런 행동을 보였을까 생각을 하자 눈물만 나고 마음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화풀이 겸으로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리고 나서는 그 글도 읽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 글은 아직도 읽을 수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부끄럽지만 한 편으로는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제 공교롭게 성격장애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에 대해서 알려고 읽은 책이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 내가 나와 있었다. 내가 의존성 성격장애가 있는 것은 알았는데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의존성 성격장애는, 어릴 때부터 부모가 아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 하기 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다 해줬을 때 발생하는 성격장애이다. 의존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며,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한다. 만약 자신의 의견이 타인과 달라도 그것을 말하지 못하고 타인의 말에 따른다. 나의 엄마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한 나를 불쌍히 여겼고, 어느 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자라서도 스스로 하는 것에 대해서 불신하게 되었다. 나이 서른 살에 직장을 그만둘 때도 스스로 하지 못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을 맡아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내가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의존성 성격장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오냐오냐 키우다 보니 자기애성 성격장애도 있었는데, 나르시시트라고도 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세상에 자신만 제일이고 자신만 추앙받아야 한다고 믿는 성격장애이다. 나는 남들에게 뻐기거나 자랑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오히려 나의 불행을 자랑함으로써 남들의 시선을 끌려고 했었다. 이런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내현적 나르시시즘이라고 하는데, 이런 성격은 남편에게 특히나 잘 드러났다. 나는 남편이 무언가 고치라고 할 때나 조언을 할 때 늘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으며 '아파서 그랬어.' '그렇게 명령을 하면 안 돼.'라고 대꾸했다. 그리고 남편이 어느 조직에서 주목을 받을 때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집에 오면 남편을 한없이 깎아내렸다. 함께 활동하는 어린이집에서도, 엄마들에게 남편을 공공연하게 험담했다.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것은 나의 열등감의 표현이었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은 겉으로는 겸손하고 착해 보이지만 실상은 낮은 자존감으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그들을 은밀하게 괴롭힌다. 


경계성 성격장애는 극도의 불안으로 인해서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그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에 지나친 행동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성격장애를 말한다. 남편을 한창 남자친구로 사귀었을 때, 그리고 결혼을 한 후에도 나는 종종 남편에게 자살을 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유서를 쓴다고 할 때가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아이가 아이 친구의 집에 놀러갔는데 그 아이를 집에 데려오기 위해서는 내가 밤길에 초행길을 운전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3년째 초보 운전자로서 밤길 초행길을 가장 무서워했는데, 그래서 남편이 가서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러기 힘들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나는, "그럼 내가 데리고 가다가 교통사고 나서 죽으면 되겠네."라고 대꾸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남편을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편으로 그 관계를 자살이니 뭐니 하는 협박으로 움직이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내가 많이 불안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러한 성격장애를 검사해 보지는 않았으므로 진짜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런 성향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러한 성격장애의 핵심은 불안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결여, 그리고 타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다. 그러니 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서도 안 되고, 어딜 가나 추앙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런 나와 사는 남편은 어땠을까. 내가 보기엔 남편도 과히 마음이 건강하지는 않은 사람이지만 내 생각에는 내가 좀 더 심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나와 살아주는 남편에게 고맙고 더 잘해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남편에게 내가 그날 엄청 화를 냈던 것도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숨어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 감정들과 생각들을 잘 찾아내고 고치는 것이 앞으로 살아갈 나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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