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잡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아이와 평소보다 늦게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된 사정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통해 아마 말하게 될 것이다. 나는 매우 피곤했고, 조금은 지쳐 있었다. 아이와 남편과 나는 집에 돌아왔고 아이는 매우 졸리고 짜증스러운 상태였다. 나는 아이의 옷을 빨리 벗기고 씻기고 재우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아이의 옷을 벗기려는 나를 말리고 들어가라고 했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남편의 의도는 알고 있다. 아이 스스로 하게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하건 내가 해주건 빨리 상황을 종료시키고 싶었다. 아무튼, 나는 남편이 하라는 대로 물러났고 아이는 스스로 옷을 벗었다.
물을 틀고 아이를 씻기는 것까지는 수월했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짜증을 내면서 얼굴에 물이 닿았다느니 눈에 물이 들어갔다느니 하면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빨리 씻기고 나가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이의 머리를 감기고 있었는데 남편이 욕실 문을 열었다.
"머리를 젖히고 감겨."
남편은 보통 아이의 머리를 젖히고 감긴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숙이도록 한다. 평소 같으면 남편의 말을 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빨리 감겨야 했고, 그러려면 익숙한 방식으로 감겨야 했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감기는 것에 익숙한 나는 머리를 젖히고 감기다가는 귀에 물이 들어가게 할 수도 있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일단 나가 있어."
나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말했다. 이미 아이의 짜증 때문에 화가 난 상태였지만, 얼른 이 상황을 종식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 다시 말했다.
"머리 젖히고 감겨. 내가 시키는 대로 한 번만 해."
아이는 졸리다고 짜증을 내고 있었고, 나는 아이를 빨리 씻겨야 했다. 그런 와중에 왜, 내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머리를 감기라고 하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늘 나를 무시하고 자신의 말에 따르게 했던 '엄마'의 그림자가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
"개똥철학 말하지 마."
"엄마 말대로 해."
최근에 의사이자 영양제 사업으로 유명한 여에스더 씨가 유투브에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우울증으로 꽤 오래 고생을 했다던 그녀는 제 가정사를 이야기했는데, 집안이 매우 엄격해서 방석도 가운데만 앉아야 하는 등 지켜야 할 규율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그런 속에서 자란 끝에 오래 우울증을 앓았고, 오랜 치료도 받았다고 했다. 나 역시 따로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적은 없지만 내 의견이나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내 말대로 해"라면서 제 생각만 강요한 엄마의 방식 때문에 오래 자기 부정에 시달려야 했다. 누구 하나 나를 반대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 했다. 그것이 성격장애의 하나라는 것을 안 것도 최근이다.
하필 아이가 짜증을 내고 있을 때, 그리고 머리를 빨리 감기고 마무리를 해야 할 때에 남편은 계속 자신의 방식을 우기면서 나의 트라우마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머리가 멍해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으나 아이는 머리에 샴푸를 잔뜩 칠한 상태였다. 제발, 머리만 감기면 안 될까. 할 말이 있어도 다 씻기고 하면 안 될까. 나는 다시 한 번 사정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머리 젖히고 감기라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한 번만 해."
내가 말을 하면, 남편이 그 말을 튕겨냈고 남편이 말을 하면 내가 그 말을 튕겨냈다. 웬만하면 들어주고 싶었으나 그러다 아이의 귀에 물이 들어가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하고 힘든데, 내게 익숙한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감겨야 하는 것도 싫었다.
물론 남편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극도로 얼굴에 물이 닿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니 머리를 젖히고 머리를 감으면 얼굴에 물이 닿지 않아서 아이의 짜증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남편 나름으로는 조언을 한 셈이었으나 나에게는 그것이 '강요'로 들렸다. 그리고 겉잡을 수 없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거기에서 끝났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나는 화가 났으나 화를 내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으니까. 그런데 남편은 타겟을 아이에게 돌렸다.
"엄마한테 짜증내지 마."
지금 나를 진짜 화나게 하는 사람이 누군데, 남편은 아이에게 훈계를 하고 있었다. 더구나 졸려서 짜증을 내는 아이에게. 예상대로 아이는 남편에게 마구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빽빽 소리를 지르는 아이에게 남편은 다시 이야기했다.
"아빠한테 사과해."
저렇게 사람 기분을 못 읽을 수가 있을까. 머리에서 샴푸는 뚝뚝 떨어지고, 이제 나는 빨리 씻기자는 목표는 포기해야 했다. 아이는 사과는 커녕 소리를 더 크게 질렀다. 그리고 남편이 말했다.
"아빠한테 사과해."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미 나의 화는 내 통제력을 벗어나고 말았다. 나는 샤워기를 집어 던졌다.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았다.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방에 오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실감이 되었다. 나는 확실히, 아주 확실히 성격장애가 맞았다.
남편과 아이에게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잠시 후, 내게 온 남편은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소리 지르고 샤워기를 집어 던진 것을 사과하란다. 나는 도대체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은 왜, 사람의 감정을 모를까. 왜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만 할까. 모든 것이 어긋나 버렸는데, 남편은 왜 자꾸 계속 모든 것을 어긋나게만 만들까. 나는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 정말로 남편이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더불어 나도 죽여버리고 싶었다. 이 모든 상황을 끝낼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소설 속의 회귀가 진짜로 있다면,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과거로 돌아가 남편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실은 내 삶에서 이어져 온 것이다. 엄마 아빠의 다툼, 그리고 엄마의 통제와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그저 엄마의 뜻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강요했던 교육 방식, 그래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도 나를 죽이는 것에 익숙했던 나, 그런 내가 만난 남편, 꼭 엄마를 닮은 그 남편, 그 남편과 나는 엄마와 아빠가 했듯이 피터지게 싸우고 그 남편은 엄마가 내게 했듯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자기 말만 따르라고 한다. 물론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이유는 있다. 그러나 그는, 내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 역시 아이의 양육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내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다. 내 선택하지 않은 삶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으나 정서적으로 취약했다. 후에 나는 엄마가 내게 했던 것이 '정서적 학대'라는 것을 알았다. 정서적 학대와 방치 속에 자란 나는, 정서적으로 내 마음을 돌보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내 어린 날의 부모와 함께 어린 시절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때로부터 조금도 자라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나는, 이혼을 하고 홀로서야 하는가. 그러면 나는 좀 더 자유로워질까.